만두 빚는 여자
은미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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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보시라. 중간 아래 오른쪽에 뭐라 써있느냐 하면, "은미희 소설". 나, 장편소설인줄 알았다. 맞지? 그냥 '소설'이라고만 써 있으니까. 350쪽 가량의 장편소설. 근데 단편소설집이다. 좀 정확하게 써 놓으면 안 되나? 아, 단편도 재미있게 읽는다. 근데 장편인줄 알았다가 단편을 읽게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는 얘기다.

 소싯적엔 단편을 훨 좋아했다가 이젠 유장한 장편이 더 좋다. 단편은 짧은 분량 안에 작가가 한 방에 쇼부를 치고 싶어하는 (죄송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단어를 써서) 경향이 있어, 정말 제대로 쇼부를 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엔 '조금 무리', 일본말을 첨가해 말하자면 '조또 무리'한 경우를 왕왕 보게된다는 말씀.


 1. 그리하여 등장인물들은 다분히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설정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첫번째 작품 <다시 나는 새>의 등장인물인 여자와 '이다'. 여자는 열살 연하의 애인과 헤어지고, 인근 고아원에서 이다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 자기 집에 있는 피아노를 치게 허락하고, 이다는 여자가 지겨워하는 줄 분명히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자고 요구한다. 고아원에 주민등록 초본 상 주소를 둔 똑똑한 여자애 이다가 하는 말과 행동과 집요함 등은, 열살은커녕 한 서른 댓 먹은, 미저리 성향이 다분한 여자처럼 보인다. 물론 소설에서 열살 먹은 아이가 서른 다섯 먹은 미저리와 달라야하는 건 아니지만 이 경우, 왜 하필이면 고아원 소녀를 택해 이런 대사와 행동을 시켜야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평론가들은 일반독자와는 달리 이런 것에 관하여 깔끔하게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지만 그럼 독자는 책 한 권 읽는 거 가지고 모자라서 평론가들이 이 책을 해석한 책을 또 읽으라고? 만일 소녀 이다에 관한 깊은 철학이나 논점이, 있다면 이는 독자에게 과하게 어려운 작품일 것이고, 없다면 설정 자체가 위에서 말한 '조또 무리' 아니겠느냐, 하는 것. 이건 물론 완전 아마추어 독자의 얘기이니 크게 신경쓰지 마실 것.

 2. 두번째 작품이 책의 표제작 <만두 빚는 여자>인데, 앞 작품 <다시 나는 새>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주인공의 체내에 사정을 하고 아무 책임없이 그냥 떠나가는 것뿐이다. 물론 이 두 작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찌질하고 무능력하고, 가끔가다간 사기꾼 기질만 충분한 세상의 모든 잡놈을 남성성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당신 주변에서 그래도 몇 명 볼 수 있는 긍정적 남성의 모습은 희한도 하지, 단 한 놈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란 건 일찌감치 바람나 처자식 다 모른 체 딴살림 차려 아예 따로 살고, 난 오글조글한 형제들과 함께 모진 고생을 하는 어머니의 무릎 아래서 고생고생하며 자라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유년시대를 형제와 공유하는데, 아 썅노무 것, 딸인 나는 남자형제들에게 집중하는 어머니의 헌신에 속수무책이었을 뿐아니라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삶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키운 아들새끼는 여전히 엄마한테 의존하기도 하고 안면 까고 불효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책 읽으면 이 땅에서 그냥 보통남자로 살기도 매우 팍팍해졌다는 걸 금방 알게 되는 교훈적 이야기들. 이런 얘기하는 것도 어째 좀 오싹한 건, 너도 예전에 그렇게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당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탄이 무서워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여전히 발견하는 처녀막 증후군. 책의 100쪽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보면 이런 묘사가 나온다. "초겨울 녘, 섬진강은 어느 때보다도 유순했다. 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 산줄기의 아랫도리를 그대로 품은 채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어느 모로 보나 숫처녀를 닮았다. 모래톱마저 여자의 속살처럼 하얗고, 강 안쪽을 할퀴며 휘돌아 나가지 않는 성정 또한 숫처녀의 그것처럼 은근하고 깊었다."  정말 섬진강이 숫처녀를 닮아서 이런 묘사를 했을까? 산줄기의 (하필이면) 아랫도리를 그대로 품은 채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게 숫처녀의 어디와 닮은 것일까? 숫처녀의 허벅지가 누구의 아랫도리를 '그대로' 품은 채 완만하게 곡선을 만들었을까? 이런 표현은, 섬진강을 처음부터 숫처녀에 비유하기로 결심을 하고 글을 썼기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모래톱마저 여자 속살처럼 하얗고 강의 안쪽을 할퀴며 휘돌아 나가지 않는 성정'이라니. 이거 혹시 남자가 숫처녀에게 경도하여 왜곡된 묘사를 한 경우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이해가 가겠는데, 나만 그런가? 왜 하필이면 숫처녀라고 딱 꼬집어 말했을까? 한 스무살 가량의 남성 독자가 읽었더라면 혹시 깊게 감명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역시 '조또 무리'.


 4. 같은 작품,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의 109쪽 보면, 대단한 여인의 능력이 나온다. "그러나 은숙은 그들을 사는 대신 싸구려 호프집에 들러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오천 시시의 생맥주를 조갈 들린 듯 마셨다." 이거, 95 퍼센트의 확률을 갖고 말하는데, 구라다. 작가 은미희가 한 자리에 앉아서 조갈 들린 듯 오천 시시의 생맥주를 마셔보지 않아서 이런 묘사를 한 거다. 흔히들 얘기할 줄 모르겠다, 배불러서, 또는 오줌 마려워서 한 방에 오천 시시의 생맥주는 못마신다고. 웃기지마라. '조갈들린 듯' 마신다는 가정이면 오천 시시를 한 방에 다 마시고는 취해서 걸음도 걷지 못한다. 맥주 알기를 우습게 아는데 내가 계산해드리지. 맥주는 알콜 함량이 4%. 5,000 * 4% = 200 그램의 순수 알콜. 소주를 걍 20도라고 하면 한 병이 360 cc니까, 소주 한 병에 360 * 0.2 = 72 그램의 순수 알콜이 들어 있다. 그럼 200 그램은 약 세병의 소주와 같은데 그걸 "조갈 들린 듯", 그것도 상대적으로 몸무게가 안 나가고 간 내 알콜 분해효소가 남성보다 적은 여자가 벌컥벌컥 마셔? 그게 사람야? 경험해보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는 거 역시 '조또 무리'.


 5. 173쪽 <편린, 그 무늬들>에선 참 대단한 첫 문장이 나온다. 단편 소설의 경우에 유독히 강렬한 묘사로 글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이 작품에선 이렇다. "나선형의 홈이 파인 드릴로 양쪽 관자놀이 부근을 뚫는 듯한 통증에 성모는 눈을 떴다." 이 문장만 딱 읽는다고 가정하면 <편린...>의 편린은 앞으로 벌어질 엽기 공포, 잔혹극의 시작이어야 하리라. 어젯밤에 1차 끝나고 2차 노래방가서 끝없이 주는대로 퍼마셔 간 속에서 알콜을 전부 다 분해하지 못해 아세트 알데히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는 장면이다. 술꾼의 한 명으로 충분하게 이해되는 장면. 이럴 경우 아침에 눈을 뜨면 농담 아니라 정말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거 같은 기분, 이러다가 내가 진짜로 죽는 거지,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바로 그 장면이다. 암만해도 그렇지, 그렇다고 드릴로 관자놀이를 뚫어버릴 거 같다니 이거 '조또 무리' 아냐? 물론 나도 농담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한다. "철조망 있지? 그걸 왼편 관자놀이로 넣어서 오른쪽으로 뽑는 거야. 그리고 나서 그걸 양끝을 두 손으로 잡고 돌리는 거 같아." "도무지 고개를 수그리지 못하겠어. 눈알 쏟아질 거 같아서." 근데 이건 다 농담 비슷하게 하는 '말'이잖아.


 6. 같은 작품 198쪽에 보면, 앞의 5에서 나한테 술을 그렇게 먹인 친구새끼들이 왜 모였느냐 하면, 여행사해서 돈 좀 번 친구가 위암에 걸려 위를 들어낸 수술을 하고나서, 아, 세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친구들도 만나고, 맛난 것도 먹고 하여간 인생을 즐기려 특별하게 친한 동무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문제는 "'자, 자 건배하자, 건배.' 여행사를 하는 녀석이 잔을 치켜들었다." 역시 은미희의 가까운 친지들 가운데 위암으로 수술한 병력이 있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그리 친하진 않은 거 같다. 위를 들어낸 사람이 술을 마신다? 알콜은 100% 위에서 흡수되는 물질인데 문제는 위가 없다는 거. 위 한쪽을 잘라낸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 번에 맥주 한 잔 이상을 초과해 마실 수 없다. 그것도 아주 느린 속도로.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말씀이다.


 더 써야 해? 에이. 사실은 이 정도에서 메모하는 걸 포기했다.

 그렇다고 은미희의 작품들이 후지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다만 나하고 별로 맞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이 2006년에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는 카피가 책 위에 붙어 있는 걸로 봐서 평단의 평가는 내 기호와 차이가 많은 거 같다. 그리고 난 평단의 평가를 내 의견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데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이건 내가 쓰는 내 독후감. 평단과 나 아닌 다른 독자의 책에 대한 평가보다 내 의견이 당연히 더욱 중요하다. 아주 전형적인 단편소설의 구조, 이런 걸 평론가들은 탄탄한 구성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거의 완벽한 교과서적인 구성 위에서 난 그냥 전에 많이 본 듯한 작품들을 읽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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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7-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cc도 아니고 5000cc를 조갈 들린 듯이 마신다구요? 저도 한 술 하기는 하지만 ㅋㅋ 500cc 원샷하는 거, 소싯적에도 힘들던데요. ㅎ 작가가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가 봅니다.

Falstaff 2017-07-31 15:06   좋아요 1 | URL
예, 틀림없이 원 셧 해본 경험이... 의심스러워요.
지난 시절의 에피소드. 서른 한 살 때던가 그런데 1,000cc를 얼마나 빨리 마실 수 있는지 다섯명이 토론을 하다가 드디어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24초 안에 마실 수 있느냐 없느냐, 당시 돈 5만원에 상당하는 재화를 거는 겁니다. 내가 이기면 각자한테 하나 씩이니까 20만원 버는 거고, 못 마시면 20만원 버리는 겁니다. 작가의 말대로 조갈이 난 듯 들이켜고 1,000cc 조끼를 탁자에 딱 내리치는 순간 스톱워치가 멈췄는데, ㅎㅎㅎ 7초 8 이었습니다. 내기는 약속한대로 이루어졌고요. 아, 먼 먼 시절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