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목마르다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3
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지혜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세계적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아나톨 프랑스에 굉장히 박하다. 그의 책이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이 책 <신들은 목마르다>를 빼고 이이의 단행본은 전부 품절이고, 소위 말하는 메이저 출판사에선 한 권도 책을 내지 않았다. 우리나라 출판사가 유난히 좋아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데도. 책 뒤에 아나톨 프랑스에 관해 약간 써놓은 걸 보면 다작의 작가였으며 에밀 졸라와 함께 드레퓌스 사건에 적극 참여한 경험을 계기로 그의 문학관이 사회참여적으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드레퓌스 사건 무렵을 배경으로 한 소설책에선 아나톨 프랑스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기회가 있으면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을 겪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던 거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스콧 핏제럴드의 단편집에서도 단편 <바다로 간 해적>의 여주인공 아디타가 읽고 있는 책이 아나톨 프랑스가 쓴 소설 <천사의 반란>이다(<천사의 반란>도 번역본이 없다). 서양소설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중 등장인물이 프랑스의 책을 생각보다 많이 읽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대화 중에 이름이 등장하던지. 오래 전에 얘기했듯이 난 책 중 등장인물이 거론하는 작품에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인종이라 애초부터 이이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데, 도무지 책, 우리말 번역본을 구할 수 있어야지. 그러다가 드디어 한 풀었다.

 책 표지를 보면 세로무늬 긴 바지(상퀼로트)에 조끼와 블라우스(카르마뇰), 붉은 모자를 썼던 거 같은 머리의 발목 잘린 인민의 조각상이 왼팔에 삼색기를 들고 있다. 그럼 당연히 1789년 시작한 프랑스 혁명 시기가 소설의 배경이란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터. 원래 조각상은 오른 팔엔 착검한 소총을 들었지만 상의 손목이 부러져나가 땅바닥에 그냥 널브러져 있다. 서준환이 쓴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에 앞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었는데 그건 두 작품이 거의 동시대고, 등장인물도 많이 비슷해서이기 때문이다. 아나톨 프랑스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서준환이 이 책을 참고했을까? 아닐까? 좀 궁금했다. 많이는 아니고. 이 책이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서 나온 시점이 2011년, 서준환이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낸 것이 2013년. 그러면 적극적을 참고하기엔 시간이 좀 부족했을 거 같고, 그렇다고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그런 수준. 확실한 건, <로베스피에르...>의 클라이막스, 파리 코뮌의 명령을 받고 파리 시청에 모인 국민공회 위원, 그리하여 기꺼이 생쥐스트, 로베스피에르와 더불어 단두대에 오르게 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신들은 목마르다>의 주인공 가믈랭이다.

 신들은 목이 말랐다. 때는 1794년. 이미 많은 인류들은 아직도 신은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뭐에? 신들은 아직도 피에 목이 마르다. 원제 Les Dieux ont Soif. 확실히 신을 복수로 표기한다. 따라서 '신들'인데 복수형인 것을 보면 기독교나 이슬람, 그리고 유대교의 유일신은 아니다. 18세기 유럽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다신多神이 설마 힌두나 도교의 다신이겠는가. 이교도라고 칭하던 그리스의 다신이겠지. 그것도 아니면? 혁명으로 신권이 벌써 인간에게 허여된 것인가? 에잇,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신들, 혹은 신처럼 전능한 인간들은 혁명이 진전될수록 더 많은 피를 요구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일찌기 마오가 그랬잖여?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총구는 권력에서 나온다. 무슨 뜻인가 하면, 권력을 갖고 있는 자가 혁명의 순결함을 지키고 위대한 공화국을 만들기 위하여 무차별로 총구를 사용하게 된다는 말씀. 백퍼 내 말이니 어디가서 쓰지 마시라. 개망신 당해도 책임 안 진다. 이런 인간형의 특징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학살과 변론없는 사형판결과 집행 같은 것은 혁명 혹은 혁명이라고 자신이 믿는 행위의 순결함과 지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불가피하게 벌어져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이상주의자 화가 가믈랭이 우연한 기회에 혁명공회의 배심원으로 임명되어 졸지에 코뮌의 핵심멤버, 진짜 핵심은 아니지만 적어도 재판에 회부된 피고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핵심멤버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수직이동시킨다. 가뜩이나 이상주의자 적인 성향의 가믈랭은 날이 갈수록 더욱 이상적인 혁명과 인민의 나라, 순결한 공화국의 완성을 위해 공화국의 적들을 단두대 아래로 밀어넣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이젠 좌우로 아는 사람도 없고 절친도 없고, 친척, 애인, 심지어 부모형제도 없는 인간, 즉 괴물이 되버리고 마는 과정. 이게 이 책의 모든 것이다.

 지미럴 변증법. 정반합? 혁명의 피로가 과중하게 인민들을 끝까지 밀어부친 순간, 날을 숨긴 온건주의자들이 반혁명적이라고 볼 수 있을 반동을 저지르고, 그리하여 등장하는 이가 프랑스혁명을 종식시켰다고도 볼 수 있는 키 작은 사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아닌가. 이게 역사고 인생이다. 죽 쒀서 개주는 일. 아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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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7-2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를 아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무희 타이스를 구원하고 말겠다는 당찬(!) 포부로 악전고투하는 수도원장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 작품은 근데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누가 다시 안 내주나 모르겠습니다. 워낙 아나톨 프랑스 작품이 번역되어 나온 게 없어서 좀 팔릴 거 같은데.. 흠.

Falstaff 2017-07-26 11:13   좋아요 0 | URL
진짜 미스테리예요. 아나톨 프랑스가 유독 대한민국에서 이리 박대를 당하는 것이.
저도 어제 읽었는데, 아나톨 프랑스가 에밀 졸라 장례식에서 한 연설, 정말 기가 막힌 명문장이더라고요.
프랑스 정부가 졸라의 레지옹 도뇌르 서훈자격을 박탈하자 이미 훈장을 받은 아나톨이 다른 훈장도 아닌 최고급 레지옹 도뇌르를 반납해버리는 장면도 압권이고요.
이런 전력을 보면 창비나 실천문학사, 한길사 같은데선 기꺼이 내줄 만한데 참.
우리나라에서 아나톨 프랑스를 전공했거나 연구한 사람이 적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