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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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네루다. 공산당 소속의 칠레 민족시인.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외교관.

 1970년 공산당 대통령 후보 지명. 좌파 연합으로 통합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 지원, 당선. 프랑스 대사 임명. 대사직 수행 중 노벨 문학상 수상. 지병으로 자택이 있고, 이 책의 무대가 되는 이슬라 네그라로 이주.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 쿠데타 군에 의하여 아옌데 대통령, 관저에서 총격전 중 사망. 지병 악화 및 쿠데타 후 기타 사유로 산티아고 소재 병원으로 이송, 9월 23일 사망.

 네루다의 생전 모습. 저 위 책 표지가 생전에 찍은 것. 책 내용으로 미루어 1952년과 70년 사이 짱박혀 활발하게 시를 쓰던 이슬라 네그라 자택인 것이 분명함.

 마리오 히메네스. 어부의 아들. 뺸질뺀질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음. 대를 이은 어부로 살기가 죽기보다 싫음. 돈을 벌어야겠고 뭐 편하게 할 거 읎으까? 눈알을 뒹굴뒹굴 굴리다 공산당원 우체국장, 우체국장이라기 보다 동네에 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네루다 씨 말고는 거의 없는 관계로 진짜 할 일 없는 동네 아저씨에게 접근, 우체부로 취직. 단 한 명, 네루다 씨를 위한 우체부가 됨. 전임자들이 계속 바뀐 건 고객이 오직 한 명이라는 거 때문. 느므느므 심심해서. 때마침 동네 유일의 카페 여사장의 고명따님 베아트리스가 눈에 띔. 소설 목적상 당연히 한 방에 눈이 돌아감. 카페 여사장은 마리오에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일갈함. 궁리궁리하다가 네루다 씨에게 고민을 풀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함.

 "선생님, 부탁이 있는데요."

 "뭔가?"

 "저 아래 주막 있잖아요? 거기 베아트리스란 쥔집 딸이 있거든요."

 "아, 그 아가씨한테 뻑 갔군 그래?"

 "어떻게 아셨대요?"

 "목소리와 얼굴 색과 눈동자의 떨림에 다 써 있어. 근데 왜?"

 "어떻게 고백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시 하나 써주세요."

 "시?"

 "예, 시."

 "아이 씨!"

 "씨 말고 시요, 시. 시인이 시 하나 얼른 못 써주셔요?"

 "자네 시가 뭔줄 아나?"

 "알면 쇤네가 지금 이 지랄을 할까요? 그게 뭔데요?"

 "메타포야."

 "메타포요? 100 그램에 얼마나 줘야 사는 거예요?"

 "안 팔아. 왜냐하면 세상 도처에 있거든. 그것만 발견하면 다 시인이 되는 거지"

 "그럼 어디 있는데요?"

 "네 마음 속에. 예를 들어 이런 노래 들어봤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염병을 한다고 울어제꼈나 보다.'"

 (마음 속으로)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런 대화가 시인, 우체부 사이에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지고 다시 이루어지면서 그들 사이엔 잔잔하고 따뜻하다가 드디어 슬그머니 물결치는 우정이 싹튼다.

 이 책에서 당시 칠레의 시대적 배경과 비극적 현대사와 정의의 종말 같은 것들을 얘기한 서평이나 책소개 같은 건 무지 많다. 난 그거 빼고 얘기한다.

 몇년 후 노벨상을 받을 칠레의 국민시인이자 사랑의 시인이자 민중시인, 저항시인이면서 당대 가장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계관을 쓸 거구의 60대 노인과, 구원의 여신 베아트리스와 사이에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던 순박한 청년이 서로의 우정을 잊지 않으며 함께 세월을 보내는, 아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맺음. 정말로 따뜻하고 독자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인간 간의 사랑. 이 하나만 찾아 읽어도 진정으로 충만한 독서를 했다고, 만족할 수 있다. 무지렁이 어부의 아들을 시인으로 만든 대시인의 자연을 닮은 가르침.

 건조한 세상을 살아가는,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인류에게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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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때문에 왠지 읽어보지도 않고 읽은 느낌이라 ㅋㅋ 아직 안 읽어봤는데 이 글 보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Falstaff 2017-06-07 14:42   좋아요 0 | URL
명작 혹은 걸작의 반열이 아니라 그냥 ‘좋은 책‘이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참 잔잔하게 웃음짓게 하는 글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