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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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오에 겐자부로. 이 사람 아직도 살아 있다며? 노벨상도 받았다며? 노벨상이야 아무나 받는 거지만(펄 S 벅도 받았고, 처칠도 받았고, 밥 딜런도 받았고 하다못해 크누트 함순도 받은 문학상이잖아) 왜 내 옆에는 사람이 없어 이 나이 먹도록 반핵운동가이자 양심적 소설가로만 알았던 오에의 작품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지 못했을까? 하긴 '눈을 까뒤집고' 찾아봐도 내 주위의 삼차원적 세상에선 책 읽는 사람, 증말 한 명도 없다.

 책을 읽어나가며 조금은 엉뚱하게도 오에보다 한 10년 늦게 노벨상을 받은 페르시아 태생의 소설가 도리스 레싱이 쓴 <다섯째 아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에의 <개인적인 체험>이 결국엔 제발 해피 엔드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읽는 순간엔 나름대로 간절해지는 심정 다 이해들 하시지? 그런 간절한 심정이 풍풍 솟구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다섯째 아이>를 읽을 땐 도리스 레싱, 이 작가가 독자에게 즐거운 마지막 페이지를 결코 선사하지 않을 것이란 걸, 비극적 전망을 계속 보여준 바 있어 그걸 통해 눈치를 챌 수 있어 참담한 마음을 읽는 내내 어찌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에선? 궁금하시지? 천만의 말씀. 절대 가르쳐드리지 않는다.

 책에는 '버드' 즉 '새'라는 별명을 지닌 신혼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경사스럽게 첫 아이의 출산을 목전에 둔 상태. 버드에게도 멈추지 못하는 로망이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 탐험이다. 그는 아내가 산과 병원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책방에 들러 비싸고 비싼 아프리카의 상세 지도를 기꺼이 사고 보는 인종. 물론 아프리카로의 탐험 자금으로 아내 몰래 꿍쳐둔 돈도 3만 엔 가량 되고. 이 인간에겐 아프리카 탐험이나, 거금 3만 엔의 비자금, 하다못해 비싼 아프리카 지도를 사는 일마저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박봉에 시달리는 학원 강사로 호구를 이어가는데, 영문학을 공부하여 학사를 거쳐 석사의 위를 향해 대학원에서 열라 공부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물론 이유가 있기는 있었겠지만 자기 머리로는 왜 자신이 그랬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난데없이 몇 달을 위스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해 공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의 지도교수이자 학과장의 딸을 인터셉트하여 결혼에 성공한 댓가로 장인이 학원 강사 자리나마 알선을 해준 터였다.

 소도시에 살던 어린 시절엔 그야말로 껌 좀 씹던 몸이 도쿄에서 정착을 하자마자 시새푸새 하루하루 몸에 근육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이젠 20대 젊은이이긴 하지만 도무지 기력이 없는, 이런 인간, 짐작하시겠지, 맞다 바로 당신이 짐작하는 헐렁뱅이 젊은이를 떠올리면 딱 맞는다. 아니나달라? 젊고 어여쁜 아내는 분만대 위에서 기력을 다해 힘을 쓰고 있는 와중에, 20대 후반의 이 청년, 공중전화 걸려고 들어갔던 시내 지하실 사격장에 '어린' 건달들한테 걸려, 비 쏟아지는 진흙 위에서 와장창 두드려 맞아 이가 하나 부러지는 참경을 겪는다.

 (이가 부러진 버드. 이가 부러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그래서 네이버에 "이 부러지면 아픈가요?" 검색해봤더니, "이빨도 뼈인데 부러졌는데 그럼 안 아프겠냐", ""개아픔 채택ㄱㄱ", "이빨도 부서지면 아플 거예요 물론 100%요"의 대답이 나와 내 생각을 만족시켰다. 소설은 이후 약 1주일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근데 버드의 성격에 네이버 답변과 같이 '개아픔'을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어떻게 한 번도 호소하지 않았을까? 무지 아팠는데 참았을까? 진짜로 무진장 아팠지만 작가가 생각하기에 그건 이 책에선 아픔도 아니라서 오에 겐자부로가 일부러 모른 척했을까? 난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간 젊은 아빠가 온갖 역경을 겪은 다음에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는, 부의사, 정의사 말고 부의사副醫師의 전화를 받았으나 어째 전화 속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아이가 나오긴 나왔지만, 머리뼈에 이상이 생겨 뇌헤르니아 상태라서 아이의 머리통이 수박만 하다는 거다. 헤르니아, 라면 탈장을 얘기하는 거고, 뇌헤르니아라면 뇌가 머리뼈의 빈 곳을 통해 두개골 밖으로 누출 되었다는 얘긴데, 그게 수박만 하다면 뇌의 거의 전부가 흘러나왔다고 봐야 하는 것이고, 진짜로 산부인과의 정,부의사는 뇌헤르니아로 진단하여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옮기자는 말을 하기 위해 버드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갓난 아이의 두개골을 열고 뇌를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수술. 수술이 극적으로 성공해도 살아날 가능성 별로 없고, 살아났다 하더라도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지내야 할 확률이 거의 95%.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어 식물인간이 아니라 지체장애로 살아야 할 확률이 나머지 5%. 그러느니 차라리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부모한테도, 아이한테도 훨씬 나은, 효과적인, 바람직한, 심지어 자비로운 일이 아닐까. 부모가 아이보다 먼저 생을 뜨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럴 경우 정말로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어 지체장애가 된 성인 자녀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큰 아들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난 더 이상 단 한 마디도 보태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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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의 수필 <말의 정의>를 보면 아들 히카리와의 담담한 일상이 잘 그려져 있어요. 아들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서, 오에 겐자부로는 글을 쓰고 아들은 그 옆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가, 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Falstaff 2017-05-02 10: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가끔 울나라 뉴스에 나와서 하는 거 보면 일본에선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란 거 말고는 오에를 전혀 몰랐습니다. 조만간에 한 권 더 읽을 거고요, 올 하반기에 한 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