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1 세계문학의 숲 38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진호 옮김 / 시공사 / 201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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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제럴드 소설의 백미. <위대한 게츠비>로 대박을 한 번 쳤지만 사실 거의 평생동안 중단편을 연재하는 걸로 먹고 살았던 피츠제럴드가 마지막으로 썼다는(완성했다는) 장편소설. 핏제럴드 자신이 알콜 의존증에 따른 심장마비로 만 44세에 죽음을 맞은 인간인만큼 많은 소설 속에 알콜의존증 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밤은 부드러워>도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사람을 혹, 끌리게 만드는 영원한 주제. 불륜 드라마이기도 하다.

 주인공 딕 다이버. 있는 건 돈하고 시간밖에 없는 미국 출신 부르주아. 지금은 남불의 지중해지역 칸과 니스 인근의 휴양지에 놀러와 한도 없고 끝도 없이 탱탱 놀고 있다. 당시 미국이 만든 무성영화에 여주인공으로 등장해 단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 거기다가 20세기 초반 유럽인의 로망, 숫처녀 여배우 로즈마리가 부부 딕과 니콜 다이버 부부와 한 호텔에 머물렀으니 어찌 빛나는 염문의 촉발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딕 다이버가 비록 무지 속물이긴 하지만 전형적으로 돈도 많고 미남인 바에야. 얼마나 속물인가 하면 첫눈에 반하기로 작정한 로즈마리가 엄마하고 상의한 바, 자신의 성적 첫경험은 임신가능성의 유무와 아무 상관없이 근사하게 생긴 딕 다이버하고 하면 원이 없겠다고 작정을 해서 그냥 달려드는 상황에 처했는데, 딕은 가벼운 키스 한 번으로 넘쳐넘치다가 터져버릴 거 같은 욕망을 억지로 억제하고 로즈마리의 호텔방을 나왔던 거디다. 그런 남자가 성인聖人이면 성인이지 어떻게 속물이냐고? 책을 읽어보시라. 딕이 성인이면 난 천상의 하느님이다.

 책은 전적으로 딕을 위주로 쓰여 있다. 1934년에 출간했으나 7년 전인 1927년에 쓰기 시작한 이 작품엔 1차 대전 이후 전쟁이란 거대한 힘에 의하여 갑자기, 타의에 의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왕창 무더져버린 질서 속을 헤매던 잃어버린 세대, 이 유약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세대의 선두주자 프랜시스 스콧 핏제럴드답게 책은 전반적으로 황량하고 우울하고 뭐 그런 분위기인데, 나 이런 분위기 무지 좋아한다. 그러나 이 책이 내게 준 쓸쓸함에 관하여 지금 별로 특징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 읽으면서도 읽기를 당장 때려치울까, 망설이기도 했다.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는 거였다. 그리하여 내가 이 책에 줄 수 있는 평가로의 별점은 열개 만점에 별 하나. 이건 전적으로 번역한 인간 공진호 때문이다.

 공.진.호.

 내가 영어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 인간을 이렇게 타박할 수 있겠는가. 난 영어 원문의 오역 여부와 관계없이 이 작자가 개판이라고 말하는 중이다. 어차피 독자한텐 타당한 번역을 선택하는 일 자체가 복불복이다. 오역시비가 없는 책을 선택할 경우, 시비가 있더라도 해당 정보를 미리 보지 못한 경우엔 완벽하게 그렇다. 이럴 때 독자가 선택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출판사를 보는 일. 명색이 메이저 출판사에서 번역을 함부로 맡겼겠어? 돈만 많은 출판산데 지들 얼굴이 있지 후진 번역가한테 일을 줬겠어? 내가 읽은 책은 출판사 '시공사'에서 만든 거다. 다들 아시다시피 천하의 깡패인간의 아들이 사장으로 있는 덴데 아빠 얼굴이 있지, 설마 책이나마 후지게 만들겠어? 사실 그랬다. 시공사에서 만든 세계문학 시리즈 '세계문학의 숲'은 레퍼토리마저 엄선한 듯 상당한 수준의 책들만, 쌈박한 디자인에, 교정도 비교적 깔끔하게 만들어 은근히 선호하던 시리즈인데, 이거야말로 진짜, 진짜, 아 썅, 진짜, 똥밟았다.

 문제는, 공진호가 번역해 놓은 한국의 언어, 나도 백퍼 동의하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으로 만든 문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읽다가 이런 문장 나오면, 거짓말 안 하고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 위해 대여섯 번, 심지어 열 번도 넘게 다시 읽어보길 수다하게 했는데 그러고나면 여태까지 이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무슨 분위기였는지, 무엇보다도! 연애의 육체적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는데 심각함이 생긴다. 공진호 이 인간이 뉴욕시립대학에서 영문학과 창작을 전공하고 '현재 한국에 거주하면서 번역 및 출판기획을 하고' 있다는 걸 봐서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뭐 아니면 말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외국인이거나 한국인이거나, 아니면 둘 다면서 대한민국의 군역을 기피한 인물이거나를 막론하고 부탁하노니 이제 다시는 번역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쩐지 이 인간이 번역한 문학동네 책 <소리와 분노>도 첫 장章에선 진도가 무지 안 나갔던 것이 이제 이해가 간다.

 도대체 어떤 정도이기에 이리 거품을 무냐고? 한 번 보시라. 내가 참고 참고 또 참고 한 번 더 참다가 더 이상은 도무지 참지 못하겠어서 노트에 메모해왔다. 두 문장만. 근데 이게 대표적으로 후진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거. 그냥 보통의 헷갈리는 수준임에도 더 이상 참지 못해서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 책의 야만성을 까발리기 위해 써온 거 뿐이란 점. 감안하시라.


 "그녀가 다시 그를 바라보며 미소했다. 그것은 육욕을 제공하는 중에도 그것을 부인하는, 그가 이해하는 유혹의 미소였다." 2권 119쪽

 (첫번째 '그것'은 그녀의 미소. 두번째 '그것'은 '육욕'. 우리말로 쉽게 다시 쓰면 혹시 이런 뜻? 로즈마리의 미소는 딕을 꼴리게 하면서도 결코 허용하지 않을, 딕이 그러리라 이해하는 유혹의 미소였다.)


 "니콜과 로즈메리에 대한 사랑, 애이브 노스와의 우정, 종전(終戰)의 부서진 세상 속에서 사는 토미 바르방과의 우정 - 그런 관계 속에서 인격들은 그가 인격 자체가 될만치 가까이 그에게 미락한 것 같았다." 2권 159쪽.

(인격? 미락? 아 니미럴 거, 도무지 뭔 뜻인지 모르겠다. '미락'은 내 20년 단골 횟집 이름이다)


 


 '한 줄 평'을 쓰자면 이렇다.

 "핏제럴드의 인생 과업을 공진호가 단 칼에 조졌다."

 


 


 

* 애써서 먼저 독자 서평을 쓰신 분께 괜히 미안하다. 그분의 서평을 읽어봤으면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인데.

* "핏제럴드의 인생 과업"이란 말은 진심이다. 읽어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단, 다른 출판사, 다른 역자가 편 책을 선택하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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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07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작품을 읽을 무렵에는 시공사 버전이 없었고 ‘현대문화센터‘에서 나온 <밤은 부드러워>만 있었거든요. 전 그걸로 읽었는데, 그것도 딱히 번역이 좋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두 사람이 공역함;;; - 근데! 지금 인용하신 두 문장만 읽어도 차라리 그 번역본이 낫군요. 아니 대체 저게 무슨 말이랍니까????!!! 이 작품은 다른 출판사에서 좀 유려한 번역으로 다시 나오면 좋겠습니다. 분명 괜찮은 작품인데, 지금 시중에 나온 번역본으로는 그 참맛을 도무지 느낄 수 없을 것 같군요.....

Falstaff 2017-04-07 12:36   좋아요 0 | URL
백퍼 공감입니다.
위 독후감은 원작의 20%도 소개하지 않았습지요.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하나....
제 생각엔 참 대단한 소설이고 진짜 핏제럴드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수록 개판 번역은 징역이라도 살려야 한다! 주장하고 싶다니까요. ㅠㅠ

잠자냥 2017-04-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찾아보니, 게다가 시공사는 이 책을 1, 2권으로 분권해서 출판했군요. 굳이 그럴 이유야...... 돈 때문이겠지 -_-

Falstaff 2017-04-07 12:39   좋아요 0 | URL
분량을 합하면 650쪽 가량인데 지금 울나라 출판사 가운데 이걸 한 권으로 해줄 수 있는 덴 문학과지성, 을유문화사, 말씀하신대로 현대문화센터(전 이 회사 책은 한 권도 없어서 ^^;)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거 같습니다.
게다가 시공사 문학의 숲 시리즈는 종이가 두꺼운 편에 들어 단권 출판은 애초부터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당연히 돈 문제가 걸려 있지 않다면 어떻게든 한 권으로 내놓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