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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 기담집 - 기기괴괴한 열한 가지 이야기 ㅣ 글항아리 기담 시리즈 3
모옌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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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모옌의 책을 읽었다.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우치다 햣켄, 나쓰메 소세키에 이어 세번째로 출간한 기담집이 《모옌 기담집》이다. 아직 우치다 햣켄과 나쓰메 소세키의 기담집은 안 읽어봤다. 우치다는 모르겠고, 나쓰메 소세키는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모옌과 나쓰메, 시대는 다르지만 동양 문학의 두 거장의 기담집이라. 모옌은 그의 전작을 감안하면 기담,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옛 이야기를 스스로 지은 것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번에 모옌의 기담집을 읽으면서 떠오른 나쓰메 소세키가 쓴 기담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조밀조밀한 인간의 내면의 묘사를 주특기로 하는 나쓰메 선생이 엽기발랄하고 간혹 참혹, 잔인하기도 한 기담을 어떻게 썼을 지 궁금해졌다. 그만큼 모옌의 기담 적 입담 읽기가 즐거웠다는 뜻이다. 하긴 모옌의 입담을 따라갈 소설가가 세상에서 몇 명이나 있겠어?
모옌이 어린 시절, 배고픔과 외로움을 빼고 자신한테 제일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바로 두려움이었다고 서문 격으로 쓴 “두려움과 희망” 첫 머리에서 밝혔다. 모옌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산둥성 가오미시 둥베이향에서 나서 스물한 살까지 산 농촌 출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기는 산과병원에서 났지만 도시의 어둔 골목 안의 집에서 산 내 정서와 많이 닮았다. 희망은 모르겠고, 두려움이. 물과 산과 평야가 두루 펼쳐진 둥베이향과 오직 도로와 어둔 골목뿐인 서울의 고만고만한 동네라는 차이가 모옌에게는 희망이라는 깊은 인상을 갖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일 수 있고.
모옌과 내가 자란 (전쟁 끝나고 10년도 되지 않았던)시절, 특히 유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 건 책도, TV도 아닌 이야기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그리하여 쟤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그걸 빌미로 네가 옳으니, 내가 맞느니 어린 마음에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모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주로 다른 생명체, 범, 곰, 여우, 늑대, 닭, 멧돼지, 지네 등 다양한 벌레, 거북이, 남생이, 자라, 잉어, 붕어를 비롯한 수생동물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어둠이 내려와 지평 위에 깔리면, 사람살이의 경계를 넘어 들어와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고, 심지어 악행을 벌여, 인간의 여성을 임신시켜 자신의 후손은 남기기도 하고, 몸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외연을 가지고 사는 일도 있고, 우습게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하는 등, 별의 별 내용이 다 있는데, 이게 또 아이의 귀를 통해 대뇌에 입력이 되면, 들은 아이들마다 다시 머리속에서 이야기가 재생산되어 다양한 버전으로 이화, 다툼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야기의 핵심은 어둠과 다른 생명체의 인간으로의 갖가지 변용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이었다.
농촌에서 스물한 살까지 산 모옌은 이런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도시에서 자란 내 경우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던가, 이모의 손을 잡고 무심코 극장에서 본 우리나라 불멸의 고전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병풍 앞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도금봉 여사의 머리 위에서 길고 괴기스러워서 끔찍한 검정 손이 내려와 여사의 쪽진 머리를 왈칵 움켜잡는 장면이 얼마나 경악스러웠든지,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무서움으로 남아 있다. 이후 점점 더 자라면서 <드라큘라(1958년작 “괴인 드라큐라”)>. <엑소시스트>, <오멘> 같은 공포물도 마찬가지. 이런 영화를 보고 동무들과 영화관 옆의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과 물만두에 빼갈 한 도꾸리씩 마시고 (그땐 중고딩들이 술 달라고 해도 한 번 째려볼 뿐 얼마든지 가져다주던 시절이었다.) 집에 돌아갈 때도, 짙은 어둠만 깔린 외등 없는 골목에서 머리통이 180도 회전하는 악마의 변신이나, 악마의 현현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스러움에 등골에서부터 척추를 따고 오소소 소름이 돋던 기억이 있다. 아마 지금도 거리가 어둡고 골목에서 산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 늙은 지금도 말이다. 이런 것이 기억이고, 추억이고, 어린 시절의 각인이라서.
모옌도 이런 두려움을 서문에서 이야기하기에, 이 책은, 모옌이 어린 시절에 듣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중국 산둥성 지역의 기담 가운데 몇 편을 골라 실었거나, 옛 기담에 자기가 가필을 조금 한 것이겠구나 싶었지만, 아니다. 1번으로 실린 <보물지도>와 2번 <살구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늑대>까지는 작가가 고른 옛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내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했으나, 3번 이후로 넘어가면, 아이쿠, 아니구나, 이 책의 기담은 옛이야기 스타일로 모옌 스스로 새롭게 쓴 현대식 기담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린다. 그럼 모옌은 왜, 21세기에는 이미 그 효용을 TV나 SNS, 휴대폰, 게임에 넘겨준 옛 이야기 방식을 가져왔을까?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에 밥상 머리에 앉아 할머니한테 들은 요정과 귀신 이야기, 가장 대중적이며 효용이 크기도 한 즐기는 방법인 이야기가 더 이상 아래 세대로 전승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다가, 이제는 이야기의 시대가 아니기도 하고, 자기 원래 이름 관모예管謨業를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莫言” 즉 글로만 말한다는 의미의 모옌으로 고친 사람답게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 쓰기에 이른 거다.
모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지금 일흔한 살인데, 여전히 귀신 이야기와 동화 속 변용을 연상하면 두려움을 멈출 수 없다고 하며, 이런 요정과 변신 이야기 속의 두려움은 어둠 속의 불빛처럼 앞길을 비추고, 두려움과 싸울 용기를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전해지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전승이 거의 끊긴 지금, 모옌은 자기나마 새로운 기담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설마 호랑이 고기 자셔본 분 안 계시지? <보물 지도>에는 다싱안링 산맥에서 백두산 수컷 호랑이를 잡아먹은 사람의 허풍이 나온다. 고기는 먹고 발라낸 수호랑이의 성기 길이가 1미터는 넘었는데, 말린 뒤에도 80센티미터나 됐고, 그걸 가지고 술을 담가 먹으면, 비아그라를 꽈배기라고 하면 그 창바이산(장백산, 백두산) 호랑이의 성기는 쇠몽둥이라면서 말이야, 호랑이고기 만두를 의지가 약한 남자가 먹으면 백이면 백 사고를 치게 돼 있어. 난 사고는 안 쳤지만 온몸이 증기기관처럼 달아올라 할 수 없이 친구가 하라는 대로 헤이룽 강의 1미터 두께 얼음을 깨고 그 속에 알몸으로 뛰어들었어. 강 위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서 운운. (p.23)
모옌의 입담은 경악 수준이다. 이게 두어 페이지 분량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인용한 것만 슬쩍 읽으면 진짜 입담의 맛을 알 수 없어 아쉽다. 두번째 작품 <살구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늑대>에서는 늑대 고기의 효용을 소개한다. 부위를 두루두루 소개하지만 여기선 내장 부분만 조금 옮겨본다.
“늑대 소장은 부추랑 같이 볶으면 오장육부를 싹 청소해주고요, 시멘트 공장 노동자들이 그걸 한 그릇 먹고 싼 똥은 바람만 쐬면 돌덩어리처럼 굳어서 망치로 쳐도 안 깨진다니까요. 그리고 늑대 항문은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황주에 타서 먹으면 치질에 끝장입니다. 밖에 난 치질이든 안에 난 치질이든 아주 뿌리까지 치료해서 절대 재발하지 않아요. 늑대 방광은 또 어떻고요? 거기에 연밥을 넣고 고아서 먹으면 아무리 고질적인 요실금이라도 단박에 낫는답니다.” (p.108~109)
이것도 이렇게 짧게 인용하면 진짜배기 맛의 1할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그저 바라노니, 만일 모옌의 끝판까지 가는 입심을 제대로 즐기시려면, 그냥 팍 읽어버리시라. 세상에 둘도 없는 입심일 터이니. 물론 1번과 2번 작품이 재미로 치면 제일이지만, 이후 작품이야말로 모옌이 시도한 현대식, 도시형 기담이라서 오히려 앞의 작품보다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만일 이런 기담이 모옌이 서문에서 주장한대로 아직도 효용이 있다면. 그건 더 생각해볼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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