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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56
김경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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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서울에서 나서 이대 독문과와 대학원 독어교육과를 거쳐 명지대에서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는데, 내 가방끈이 짧아 이게 박사학위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98년, 스물일곱 살에 시인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 반성하자. 그런 시인의 시집을 왜 이제야 처음 읽는지. 이 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는 2021년, 시인이 쉰 살 부근에 냈는데 여전히 그립고,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고독하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시인이 펜을 놓을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화두, 시란 무엇일까, 시인은 또 무엇일까, 하는 결코 풀리지 않는 매듭도 또다른 시의 주제로 놓여 있다.
먼저 그리움 또는 뒤돌아봄에 관하여. 시집의 제일 앞에 실린 시는 제목 자체가 <뒤>이다.
한밤의 택시 안, 어디쯤일까, 핸드폰을 본다, 우주정거장이 방금 내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이건 너무 큰 그림, 어디지, 거기가 바로 여기네, 이 말을 자주 하던 사람의 그림자 사진, 핸드폰을 본다, 이번엔 너무 지난 그림, 그는 그늘, 여기는, 신호 없음, 연결 상태를 확인해주세요, 빨간 신호마다 과속으로 지나친 여기, 어디지,
해 질 녘마다, 거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나는 그의 그림자를 담요처럼 끌고 갔다, 끌려갔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기를 여기처럼, 그늘을 그림처럼, 저 멀리 그네처럼,
우주정거장은 밤의 지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 그는 그늘, 다시, 우주정거장은 돌고, 어떤 사랑이 지구에 있었는지, 보이지 않고,
한밤의 택시, 내린 후, 여기일까, 뒤돌아본다, (전문. p.9)
나는 이 시가 생전 처음 읽는 김경후였다. 아후, 근사한 걸? 한밤중에 택시 타서 핸드폰을 보는데, 핸드폰이라는 게 위성으로 너와 내가 통신하는 거라서 내 머리 위를 지나는 우주정거장을 연상하는 거부터, 후,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이랬다. 휴대폰 속의 많은 사진과 통신 기록, 그리고 연결상태. 별의 별 정보,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무수하게 넘치는 정보. 이미 지나버린 것들, 그래서 휴대폰을 보는 시인은 결국 뒤돌아볼 수 밖에.
이런 느낌이 하나였고, 다음은 쉼표의 연속. 시인이 시 속에 쉼표를 썼으면, 독자는 쉼표가 마치 악보의 지시표인 듯, 쉼표가 나올 때마다 한 박자씩 한숨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고 좋다. 비단 시뿐 만 아니라 산문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시의 경우,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낭송하거나 속으로 암송하거나를 막론하고 탁탁 박자, 리듬감을 훨씬 더 얻을 수 있다. 김경후의 시에서 이런 쉼표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착한 독자. 시인이 쉬라고 콤마를 탁, 찍어줄 때마다 나는 헛, 꼬박꼬박 한 박자씩 쉬면서 읽었다. 이 정도면 착한 독자, 맞지?
이렇게 ‘뒤돌아봄’의 주제와 많은 쉼표를 사용하는 재미있는 시가 또 하나 있다. 물론 여러 수가 있지만 특히 이 시를 재미있게 읽었다.
넙치
그래, 나 바닥이다, 울툭불툭, 넙치, 시장 바닥에 누워 있다, 뭘 보고 있나, 그것, 진창 바닥보다 넓적하게, 바닥의 바닥이 되면서, 대체 뭘 보고 있나, 가끔, 이게 아냐, 울컥, 찌끄레기를 게운다, 뒤척인다, 하지만 다시, 눌어붙어, 바닥이 되지, 바닥, 뭘 볼 수 있나, 게슴츠레, 흰 눈자위로, 울컥, 찢어진 노을, 키득대든 웃음, 흐르고, 슬리퍼 끄는 소리, 지날 때마다, 울컥, 소리친다, 그래, 나, 바닥이다, 그것, 더욱 맹렬히 바닥이 되기로 맹세한다, 끌로도 끝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바닥, 더 바닥, 더, 더 바닥이 되기로, 울컥,
지금 넙치가 나올 철인가, 뭐, 그렇지, 이 바닥이나, 저 바닥이나, 다 그렇지, 사내 둘, 바닥 끝 지나 골목 끝, 횟집 문을 연다, (전문. p.13)
독후감의 초두에서 김경후의 시는 그리워 뒤돌아보거나, 여전히 고독하다고 했다. 이번엔 고독에 관하여 한 방 꽝. 고독. 우리말로 외로움. 먹고 사는데 가장 외로운 장소 가운데 하나가 어디? 화장실? 거기 말고. 비슷하지 않지만 화장실에 버금가게 고독한 곳. 나는 거기 살아본 적 없어서 사실 잘 모르지만, 원룸. 그것도 혼자 사는 원룸. 김경후는 <원룸 전사>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시를 올렸다. 이 가운데 앞에 나온 <원룸 전사>. 원룸에 사는 전사warrior인지, 원룸에서 전쟁처럼 살다가 죽는 전사fall in battle인지 궁금하시지? 일행 시이긴 한데 읽어보자.
밤마다 막차다, 아무도 없어도, 나는 몰고 돌아가는, 밤, 막차다, 배차 간격, 없음, 인센티브, 없음, 유급휴가, 없음, 직업, 없음, 내가 탈 차, 없음, 기다릴 차, 없음, 막차에서 막차 사이는, 폐터널이지, 밤마다, 막차다, 출가하지 않아도, 밤새 흐르는 수도, 물방울 독경 소리, 면벽으로, 먼 산 먼 숲 조망 가능, 이러다 심안으로 동쪽에 창을 낼, 내가, 막차다,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밤마다, 창 없이 창살 없이, 막차, 필요 없는 거, 없음, 둘 데 없음, 아무도, 울 수, 없는 밤마다, 나는, 막차다, (전문. p.18)
쉼표가 휘날린다. 쉽표가 찍힌 곳마다 따박따박 쉬어 주기만 하면 훨씬 공감이 가는 시. 설마 밤마다 막차일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인센티브와 유급휴가가 없는 무직자. 설마 무직자겠어? 하다못해 시라도 (넙치처럼) “찌끄리겠지.” 창문이 있어 그나마 창문을 열면 다른 원룸 건물의 벽을 맞바라보는 면벽. 그것도 시인의 눈으로 보면 심안으로 동쪽으로 창을 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먼 산과 먼 숲을 조망할 수 있다니, 거 참, 시인이 아니라 신선이로세. 진짜로 신선이겠어, 그렇게 알고 지내는 것이겠지.
근데 왠지 그럴 듯해 보이지? 고독. 또는 외로움. 하지만 너무 감동받지 말 것. 세상에 안 외로운 사람 있으면 두 명만 이름 대봐. 자기 인생 다 저마다 외로운 거다. 다만 우리 같은 종자들은 시인처럼 나 외로운 걸 리듬 타면서 말할 수 없을 뿐. 뭐 그렇게 사는 거지.
외로움은 뭘 기다리게 만든다. 그걸 시인은 <젓가락 행진곡>이라는 유쾌할 뻔한 시에서 재미있게 노래했는데, 지면상 이 시집의 22~23쪽에 실렸다는 것만 알려드리고,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시 한 수 소개한다. 외롭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혼자 있을 때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 툭. 뭔가 허파 아래 옆으로 횡단하는 막이 하나 분질러지는 듯한 기분이 나는 소리, ‘툭’에 관하여.
툭
그건 젖은 나무 문이 주저앉을 때
그건 가슴뼈를 움츠릴 때
그건 할 말이 없을 때
나는 소리
툭
슬픔이 무릎을 건드릴 때
그래도 설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소리
마음의 고무줄 삭아 끊어질 때
나는 소리
툭
툭
밤의 송곳니가 부러지는 소리
그때 우리도 함께 부러지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서로 돌아서는 소리
툭
홀로가 아니라 스스로 내가 되는 소리
툭
내가 나를 뚫어지게 보라고
진흙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젖지 않은 나무 문은 내지 못할 소리
툭 (전문. p.30~31)
시인 또는 시는 무엇일까? 숱한 시인들이 고민했고, 고민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민할 거리. 괜히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할 수 없는 천형의 벌 또는 엄살. 김경후도 예외는 아니다. 쉰 살에도 아직 그리움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인한테 시는 무엇일까?
말미고개
말은 연탄 수레를 끌었다, 난 말을 배웠다, 말미고개, 그곳, 절뚝거리며, 난 시인이 되고 싶었다, 뭐가 되고 싶었을까 말은, 끙끙거렸다, 난 받아쓰기 시험, 말은, 연탄 배달, 컴컴했다, 절뚝, 절뚝거렸다, 눈가리개 하고 수레 끌던 말, 시험지 받은 날, 말미고개, 높고 좁은, 끝난 것 같지 않은, 말미, 끝의 끝, 말의 끝, 씩씩거렸다, 뜨겁게 콧김을 뿜던 말,
시커멓게, 절뚝절뚝,
말이 미쳤다고 했다, 난 말을 배울수록, 말을 믿지 않았다, 미친 말, 말미고개, 넘고 넘어, 연탄을 날랐다, 어떻게 하면, 끝나나, 가파른, 말미고개, 끝은 어떻게 시작될까, 엎드렸다, 말미고개 끝, 거품 물고, 그러나 말은, 일어나, 절뚝거렸다, 달렸다, 절뚝거리다, 다시, 엎드렸다, 다시, 쓰러졌다, 이제 나는, 술자리에서 말거품만 뱉는 오십대, 그러나 아직, 말미고개, 미치고 싶은, 말들,
시커멓게, 절뚝거린다, 절뚝, (전문. p.61)
이 시에서 연탄 끄는 말이 진짜 말, 영어로 horse라고 믿는 독자는 설마 없겠지. 말미고개가 진짜 지명에서 따왔는지는 몰라도 말미, 말의 꼬랑지일 수도 있고, 일로 말미암아 생긴 시간 틈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인한테 ‘말미’는 말, 문자 또는 언어의 틈바구니 정도로 감안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리하여 시에서 말은 연탄 끄는 견마가 아니라 가파른 고개를 말, 언어나 문자로 넘어가야 하는 시인 자신을 일컫는 것이겠지. 나이 오십을 먹어도 아직 오를 길이 어려워 절뚝거리고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자신의 아픔과 힘듦을 포르테, 너무 심하게 노래한다. 세상에 안 힘든 시인 있어? 아니지. 세상 살이 편하게 사는 사람, 있어? 편한 말미고개, 살림고개 넘는 팔자 좋은 사람, 혹시 있으면 거수 바람. 없지? 그래, 편하면 인생이 아닌 걸.
시인이 더 젊었을 때 이이의 시집을 안 읽어본 게 아쉽다. 이제는 기다림, 외로움을 조금 벗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시인의 영역이니 독자가 간여할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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