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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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건의 데뷔 소설집을 세번째 키건으로 읽는다. 이이가 이렇게 시작했구나.

  이 책을 출간한 것이 서른한 살 때. 키건은 열일곱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건너가 로욜라 대학에서 공부했다. 젊은 시절에 6~7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첫 소설집 《남극》에 실린 작품의 절반 정도는 아일랜드, 절반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1960년대생 아일랜드 여성의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즉 거의 모든 남성은 찌질하거나 폭력적이고, 세상의 여자들은 그들에 의하여 고통을 당해 분노하지만 견딘다. 아일랜드, 바람이 많이 불고 유사이래 기근이 많이 들어 늘 궁핍했던 섬나라.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잉글랜드 옆에 있어 늘 침략당하고 땅을 빼앗기며 굶주림에 허덕였던 곳.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래서 폭력도 혀용 또는 묵인해야 했을 터이고, 이런 땅에서 여성은 늘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 굶주림과 전쟁이 있는 곳에서 여성은 없다. 폭력 때문이다. 폭력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까. 클레어 키건의 아일랜드는 21세기, 세계 1위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가장 부유한 나라 아일랜드가 아니라 여전히 척박한 토양 위에서 궁상에 전, 삭아버린 땅이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아일랜드. 그리하여 날씨에도 딱 맞게 키건의 소설들은 그로테스크하다. 간결하면서도 서늘한 문장이라서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클레어 키건, 하면 나는 제일 먼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연상한다. 앞에서 말했듯 1960년대생 아일랜드 여성이라면 정말로 그런 아버지를 겪었을 수 있다. 비록 키건의 다른 책에서 나오는 개썅노무 아버지처럼 친 딸을 성폭행하는 개자식들부터 시작해 동네의 온갖 똥개새끼들 같은 아저씨들, 심지어 상습적으로 동네 소녀들을 성폭행하는 가톨릭 사제 새끼까지 밀림의 왕국이나 세렝게티-마사이마라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거기에 속수무책 당하고 마는 여성들.

  키건을 읽으며 불편했던 것은, 폭력/완력 빼고 형편없는 남성들의 등장이 그랬듯이,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그냥 감당하고 마는 아일랜드 여성들의 수동성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남극》의 <자매>에 등장하는 둘째 딸 루이자처럼 십대 후반, 적어도 이십대 초반 정도라면 더블린에서 잉글랜드행 배를 타고 떠나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지.

  떠나지 않더라도 왜 기어오르지 못했을까? 가부장적 아버지/남편 그리고 폭력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반란을 꾸미지 않으면 언제나, 영원히 그 올가미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걸?


  <남자와 여자>에서는 기어오른다. 아내가 남편한테. 그것도 절대 남성우월주의자이자 더 할 나위 없는 가부장적인 남편임에도.

  아빠는 여간해 움직이지 않는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집의 여자들, 그러니까 아내와 딸 한테는 운전도 하지 못하게 한다. 어딜 여자가 차를 운전해? 그냥 옆에 타고 있다가 차가 나갈 때 집 문을 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내/딸이 무도회용 드레스를 입었건 청바지를 입었건 간에, 문을 열고, 차가 나간 다음 다시 문을 닫고, 다녀와서는, 역순으로, 다시 문을 열고 차가 들어온 다음에 다시 닫아야 마땅하다. 대문과 집까지 거리가 있으니 다시 남편의 옆자리에 타, 남편이 운전하는, 운전해주는 차에 타고 와야 한다.

  오빠도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차 안에 흘린 염소똥과 양똥도 치워야 하고, 외양간의 허드레 일도 해야 하는데 공부 잘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생 구라인 오빠는 자기 방에서 숙제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딴 짓만 하고 있다. 저녁밥을 차려놓고, “오빠한테 나와서 밥 먹으라고 해라” 엄마가 말하면 여동생이 가서 “내려가서 먹어. 이 망할 게으름뱅이 새끼야.” 하고 말한다.

  이 가족이 송년 춤파티에 갔다. 아버지는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를 안고 신나게 뺑뺑이를 돌지만 엄마는 한 구석에서 완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게다가 마지막 순서인 경품 뽑기에서 실수도 해 이웃들한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집에 올 때 차 안에서 아빠가 엄마한테 이 말을 하며 비웃기도 하고 약 올리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자기도 덩달아 창피를 당한 거 같아 열받은 게 틀림없다. 집에 왔다. 엄마더러 내려서 대문을 열라고 한다. 엄마는 차에서 안 내린다. 그냥 버티고 앉아있다. 뒤에 남매가 쳐다보고 있으니 아빠도 답답하겠지. 분명 잔뜩 화가 나서 자기가 궂은 날씨에 내려 직접 문을 여는 순간, 재빨리 운전석으로 넘어간 엄마가 차를 운전해 집까지 부웅, 아빠더러 비오는 진흙탕 길을 걸어오라는 듯이 출발해버렸다. 엄마는 TV에서 유심히 운전 교습하는 방송을 보아왔던 거였다.


  겨우 이것 가지고 가정 속 반란이야? 라고 하지 말라. 태풍도 찻잔 속의 작은 흔들림으로 시작하는 거다. 한 편 더 있다. 어떤 작품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책 뒤표지에 “나는 너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내 세대에서 끝이다.”라는 카피가 쓰여 있다. 위안? 아일랜드 남자들은 여자한테 위안 받기를 원했던 모양이지? 그리고 여성들은 그런 찌질하고도 후지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남자들한테 기꺼이 위안을 주었던 모양이고. 이게 168페이지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카피 가운데 “나는 남자를 아이처럼 보살피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가 빠져 있다. 이 문장의 전제는 남자 또는 아일랜드 또는 키건이 바라보는 세계의 남성들이 모두 자신을 아이처럼 보살펴달라고 요구했다는 거다. 안 그랬는데도 여자가 자진해서 보살펴주었으면 스스로 자초한 일일 것이다. 세상의 남자들이 정말 나 좀 보살펴줘, 이렇게 졸랐을까?

  지금 읽고 있는 발자크의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1> 79쪽에도 비슷한 광경이 나온다. 주인공 쥘리앵을 사랑하는 (글자를 쓸 줄도 모르지만 천사처럼 아름다운)에스테르 앞에 스페인 사제가 나타나 쥘리앵과 떨어져 수녀원으로 가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으라고 한다. 그랬더니 에스테르가 신부한테 말하기를,

  “그러면 누가 그를 위로해주나요?”

  신부가 대답하기를, “그가 어떻다고 당신이 그를 위로해야 하지?”

  남자가 여자한테 위안/위로 받기를 원한다고? 좀 웃기다. 합의한 섹스를 원하기는 하지. 물론 “모든” 남자가 아닌 “대부분의 남자”를 일컫는 거다.


  그런데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앞의 단편 <남자와 여자>에 주인공 화자 ‘나’가 이렇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다른 집 아빠들이 아내의 외투를 들어주고, 문을 잡아주고, 가게에서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고, 필요 없다고 해도 초콜릿과 잘 익은 배를 사 오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군. 하필이면 우리집 아빠 새끼만 저 지랄이고 다른 집 아빠 님들은 안 그렇단다. 주인공이 하는 얘기니까 당연히 맞는 말일 듯. 키건의 소설을 읽고 개썅노무 아빠 두어 새끼들을 아일랜드 또는 세상 전체 아빠로 생각하면 오산이겠군. 당연하지. 아주 선량하거나 악마 같아야 소설의 주인공 자격이 있을 터이니. 그러니 사실 별 일도 아니다. 아무래도 현대 소설에서 이왕이면 주인공이 천사보다 악마인 것이 훨씬 잘 팔리겠지. 그러면 같은 값이면 악마를 캐스팅하지 뭐. 그건 좋은데 가끔 순진한 독자들은 그걸 일반화시킨다는 말이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반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당신 의견이 옳다. 다수의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은 사실 주인공으로 고려할 만하지 않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차라리 눈비오는 진흙길에 아빠를 놔두고 떠난 엄마처럼 반란을 획책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괜히 표제작 <남극>의 첫 문장처럼 허튼 짓 해서 코 깨지지 말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대단한 거 있어? 여자나 남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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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6-15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나 좀 보살펴줘, 라고 말하진 않지만 위안을 얻고자 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미디어 같은데서 세뇌된 것인지도 모르지만요.

성폭력같은 중대한 범죄에 저항하는 것도 힘들지만, <남자와 여자> 처럼 딱히 죄는 아닌데 짜증나게 하는 경우에는 그냥 좀 참으면서 사는 사람들도 많죠. 약간의 반란은 있을지언정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80-90년대 한국에 그런 가정도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속한 가정도 그랬고.

Falstaff 2026-06-15 20:37   좋아요 1 | URL
댓글 달기가 쉽지 않네요. 남자가 보살펴 줘, 라고 말하기 전에 보살피려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그걸 핑계로 더 달라 붙으려 할지. 그걸 당하는 입장에서도 좋지 않을 수도 있고요.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 세상 사는 일 가운데 쉬운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냥 끝없이 말, 대화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하는 겁니다.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아마 제가 형광등인 거 같습니다.

건수하 2026-06-16 00:08   좋아요 1 | URL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더 현명한 것 같고, 미디어나 문학작품의 분위기가 바뀐 것도 그들의 인식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