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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경찰관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7
플랜 오브라이언 지음, 이정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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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 오브라이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것 같다. 완성한 소설은 다섯 편 밖에 안 되는 과작 작가인데도 그렇다.
1911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영국 관세청 공무원 아버지와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의 12남매 가운데 (아마도) 둘째 아들 ‘브라이언 오놀란’으로 태어나 더블린에서 학교를 마쳤다. 당시 남학교는 거의 비슷했던 모양이라, 폭력과 체벌이 상습적으로 벌어지던 청소년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냈지만 평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했는지 더블린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도 쓰면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나머지 평생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이이가 멀쩡한 본명을 두고 여러가지 필명을 사용한 건, 당시 아일랜드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이 필수사항이라 가끔 신문에 기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이어 소설도 몇몇 다른 이름으로 발표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은 내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이이 작품인 줄 알았다고. 자기가 공무원이면서 공무원 사회를 우스갯거리로 삼고 그랬다나.
알코올 중독자는 끝이 좋지 못하다. 술 많이 마시면 작건 크건 반드시 사고를 치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술을 마셨다 하면 주로 주둥이에 발동이 걸려 높은 양반들과 조직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업무처리 능력을 보였다니, 그것 참 별일일세. 인후두암에 걸린 오브라이언은 그러나 1966년 만우절날 심장마비로 갔다. 이이의 아빠가 열두 아이들을 남겨놓고 일찍 죽는 바람에 소설 쓰는 형하고 열 명의 동생을 먹여 살리는데도 애썼다는 좋은 형, 오빠였다. 동생들 가운데 잘 큰 아이들도 많다. 위키피디아에 다 나온다. 요즘엔 검색만 하면 안 나오는 게 없어.
<세 번째 경찰관>을 뭐라고 해야 할까? 포스트모던인데 이렇게만 말하면 아쉽다. 이거나 저거나 다 포스트모던이다, 하면 될 정도로 범위가 너무 넓어서 탈이라. 성인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을 타고 땅속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 검은 금고를 찾아 저택의 비좁고 깊은 창문을 뚫고 들어가는 ‘나’가 일단 땅속 나라로 들어가거나 창문을 뚫고 들어가 검은 금고를 찾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험도 모험 나름이지, <세 번째 경찰관>은 아이들 읽는 책이 아니라서 별의 별 말도 안 되는 발명품도 나오고, 희한한 이론도 등장하고, 결국 이름 없는 ‘나’는 재판 없이 교수형을 선고받아 목 매달리려던 순간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해피엔드일 거 같지? 안 알려드린다.
왜 ‘나’가 자기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는 지 알아보자. 놀랍게도 이 일은 살인 사건과 관련 있다.
‘나’는 그렇게 젊지 않다. 오래 전에 태어났다고만 나오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확실하게 젊지 않다. 아버지는 진정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손님이 별로 많이 찾지 않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제법 부유한 농장을 꾸리고 있었고, 형편도 넉넉했으며, 세 가족은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아버지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해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양치기개가 순서대로 죽었다.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됐고, ‘나’는 어른들에 의하여 곧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오브라이언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폭력과 체벌의 난장판인 남자 기숙학교로. 근데 책에서는 기숙학교에서 고생하는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열여섯 살이 되던 3월 7일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학교에서 마지막 두 페이지가 없는 드 셀비의 책 <금빛 시간> 초판을 발견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부터 남은 평생을 드 셀비를 연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결국 ‘나’가 저지른 치명적인 범죄도 드 셀비를 위하여 벌인 짓일 수 있다. ‘나’가 학교에 있는 동안 농장과 술집은 ‘존 디브니’라는 남자가 맡았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이 고용해서 농장과 술집을 경영하고 대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이이의 급료는 아버지가 사망 전에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이미 지불한 총 자금에서 나온다.
20세에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집에 가는 대신 몇 달 동안 드 셀비의 저서 같은 것도 더 구할 겸 견문을 넓히려 여행 중에 큰 사고를 당한 ‘나’는 왼쪽 다리 대신 나무 의족을 단 채 집에 돌아왔다. 근데 존 디브니는 말로만 곧 그만두고 집에 갈 거라고 하더니 끝내 그럴 마음이 없이 뭉개버린다. ‘나’가 서른 살이 될 무렵 디브니와 ‘나’는 좋은 친구로 이름을 내기 시작해 동네 사람들이 “아일랜드를 통틀어 제일 가는 두 크리스천”이라는 평판을 받을 만큼 겉 보기에 좋은 친구였지만 세상의 어떤 두 사람도 사실 이 두 사람만큼 서로를 격렬히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수지간이었다.
농사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나’는 드디어 “드 셀비 색인”의 원고를 다 썼다. 이때 디브니가 살살 꼬이기 시작한다. 책을 내라고. ‘나’ 수준의 향토 연구자가 책을 내려면 자가 출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디브니는 50년 동안 가축거래 사업을 하다가 은퇴를 했으나 여전히 대리인을 통해 사업을 하고 있는 이웃 매더스 노인에게 돈을 빌리라고 설득한다. 3천 파운드 이상의 현금은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거라나.
그리하여 어느날 밤, 존 디브니와 ‘나’는 속이 빈 쇠막대로 직접 만든 자전거 펌프(디브니)와 삽(‘나’)을 가지고 매더스 노인 집 근처로 갔는데, 노인과 딱 마주치자마자 먼저 디브니가 노인의 뒷목을 힘차게 가격해 거의 목숨을 끊어 놓았고, 이어서 ‘나’더러, 끝장을 내, 나지막하게 말했고, ‘나’는 삽날로 매더스 노인의 턱을 한 번, 두 번, 세 번… n번 찍어 완전히 보내 버린 후, 미리 파놓은 땅 속에 파묻어 버렸다. 노인을 정신없이 찍는 동안 디브니는 노인의 집에 들어가 검은 금고를 어디다 숨겨 놓았다. 이런 세상에.
몇 년 후, 디브니가 금고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어 ‘나’는 그것을 찾으러 노인의 집에 다시 들어갔는데, 에그머니, 한 방에서 의자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매더스 노인과 맞닥뜨리고 만다. 그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금고를 찾으러 집 밖에 나가 노인이 일러준 곳의 경찰서로 가는데, 거기에 경찰관 세 명이 있으니, 첫째가 플렉 경사요, 둘째가 순경 맥크루스킨이고, 셋째가 순경 폭스가 된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 “세 번째 경찰관”은 순경 폭스라는 말씀.
그런데 여기까지, 즉 ‘나’가 경찰들을 만나는 순간, 본격적인 책읽기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모르시지? 이제부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초판 표지
예를 들어 첨부한 아일랜드 원서의 표지처럼 한 사람이 거울을 들고 더 큰 거울 앞에 서 있으면 n개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기 모습을 보는 행위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울과 거울 사이라면 빛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아주아주, 아주아주 짧지만 일정 시간이 필요하니까 거울 속에 n번 반사되어 아주 작은 ‘나’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 좀 젊은 ‘나’의 모습일 거란 것.
빛의 속도? 초속 30만킬로미터. 거울과 거울 사이가 1미터라면 왔다 갔다 하는 거리는 2미터. 빛이 2미터를 왕복하는 시간은 2/300,000,000 초. 혹시 이 시간을 zero 0이 아닌 건 확실하니까 거울 속 나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실 분 있나? 그럼 이 책을 읽지 마시라. 3억 분의 2초는 zero 0이다. 그래서 이걸 주장하는 맥크루스킨의 말은 틀렸다.
이 허들을 넘어가도 여전히 골 좀 썩일 일이 쌔고 쌨다. 나 같은 경우엔 각주 보는 일이 너무 힘들다. 드 셀비의 주장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 내용에 대해 오브라이언이 주석을 많이 첨부했고, 주석의 글씨가 너무 작아, 나는 주석 읽기를 포기했다. 이제 눈이 전 같지 않다. 그걸 읽어야 지금 ‘나’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될 터인 것을 알고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독자는 다른 이유로 헤맬 것이다.
하여간 재미있는 책이란 건 확실하다. 읽는 일이 좀 고되서 그렇지. 힘내서 한 번 도전해볼 만한데 다만 읽은 다음에, 아니면 읽는 중에라도 내 욕은 하지 마시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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