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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즐거움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97
나카가미 겐지 지음, 이정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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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미 겐지. 1946년에 일본 와카야마 현에 있는 피차별 주거지, 옛날 우리 말로 하자면 향, 소, 부곡 같은 곳, 카스트적 게토를 일컫는 ‘로지’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친부도 다른 지역의 카스트 게토, 부락 출신으로 주로 암시장에서 기생하는 깡패, 폭력배 비슷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나카가미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거야 뭐 우리가 알 필요 없지.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아이를 건설업자한테 데려가 양아들로 입적시켰는데, 이 양아버지가 부락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해 벌인 사업이 성공, 덕분에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괜찮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락(위키피디아 용어), 즉 로지(부락의 부분 네트워크) 학생을 위해 중등교육 인센티브를 주었는데 이 인센티브를 제대로 활용한 첫번째 로지 아이였다고 한다.
와카야마 현의 부락에 자신의 이복형제가 많이 살고 있는 조상 대대로 천대를 받던 곳이라 그곳 소년들은 너무 일찍부터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이어서 외면받을 짓을 골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도 없고, 그래봤자 학생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받을 터이니 기껏해야 글을 읽고 쓰는 수준에 머물렀겠지. 작품을 읽어봐도 열다섯 살 정도가 되면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댐 건설 막일을 하거나 벌목공을 하거나, 도둑질 혹은 지역 깡패로 장사하는 소상공인으로부터 소위 보호비를 뜯어 술과 여성을 사고, 근근이 먹고 산다.
소설집 《천년의 즐거움》의 ‘천년’은 당연히 정확하게 1,000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카스트적 게토인 피차별 지역 ‘부락’이 생긴 것이 천년 정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향과 부곡이 삼국시대에, 소가 고려시대에 생겨 조선 초기까지 유지되었다. 향, 소, 부곡이 일본으로 넘어가 부락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기억이 아니라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주로 소가죽 무두질과 가죽 신발을 만들어 파는 (우리말로)갖바치, 그리고 고리버들 작업을 하는 (역시 우리말로)고리백정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부락은 메이지 유신 당시 차별을 법적으로 철폐하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메이지 일왕도 몰랐을 것이다. 차별 철폐에 열을 잔뜩 받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걸. 바로 보통의 농민들. 이들이 칼과 낫, 그리고 죽창을 들고 부락에 침입해 중인환시리에 부락 사람들의 배를 꿰어 죽이는 일이 전국에서 벌어질 것은. 부락 사람들은 그리하여 더 깊은 곳을 찾아 움막을 짓고 살게 되었는데, 이렇게 사건을 피해 작은 움막이 모은 골목을 ‘로지’라고 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향, 소, 부곡이 조선시대 초기에 없어졌다지만, 아마도 임진왜란을 겪으며 사라진 것으로 추리하는 바, 그럼에도 짐승을 잡고 짐승의 머리와 발, 내장 등 부속물을 얻어 그것을 일반 농민들에게 팔아먹고 사는 백정, 백정에게 가죽을 얻어 가죽신을 만드는 갖바치, 나무껍질로 광주리를 만들어 파는 고리백정들은 큰 마을의 변두리 지역에서 옹기종기 움막을 짓고 그들끼리 따로 살았으니 그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명희가 쓴 미완성 명작 <혼불>에 잘 나와 있다.
이 로지에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부부가 있으니 레이조와 오류. 작품은 전부 전쟁이 끝난 후인 194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때 부부는 벌써 늙을 만큼 늙은 상태이다. 아마도 메이지 유신 당시 농민들이 저지른 학살을 피해 이 로지로 피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1세대나 2세대의 후손 정도 되는 듯싶다. 남편 레이조가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로 먹고 살았다. 그러다 세 돌까지 키운 아들이 차에 쌀을 넣고 팔팔 끓인 죽粥, 자가유를 머리부터 뒤집어쓰는 바람에 크게 화상을 입고 죽는 모습을 보고, 다음해 교토의 절로 중이 되기 위해 수행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스물세살의 오류는 동네의 유일한 산파를 하고 살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로지의 거의 모든 아이를 받았다.
로지에서는 생식 능력을 잃은 완숙한 여성을 ‘오바’라고 칭했지만, 유일하게 아이를 받는 오류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건만 탄생에 관계하는 일종의 삼신할매 역을 해서 그랬는지 오류에게도 오바의 칭호를 붙여 “오류노 오바”라 부르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쿄토에서 수행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 레이조는, 로지로 돌아와 게보즈, 정식 중은 아니지만 절과 중이 없는 지역에서 중을 대신해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제사를 바치는 대리 중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아내는 거의 모든 로지 사람들의 탄생에 직접 간여하고, 남편은 모든 로지 사람의 죽음에 관여하니, 원래부터 터줏대감 부부의 로지 내 신망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이야기를 주로 오류노 오바를 중심으로 이 로지에서 가장 오랜 가문인 나카모토 집안 출신의 남자들을 기억하는 이야기로 전개한다.
나카모토 남자들은 원래부터 씨가 좀 남달랐다. 키가 크든지 몸이 단단하다. 피부가 맑다. 로지 출신만 아니라면, 그래서 더 잘 배웠더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는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다고 오류노 오바는 생각한다. 그렇게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 고귀한 핏줄 속에 또한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고 있으니, 여자를 가리지 않고, 악한 일도 가리지 않는 것. 사실은 여자를 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살면서 주위를 보니까, 꽃이 아름다우면 벌과 나비가 꿰는 법인 것처럼, 벌 나비가 아름다우면 꽃도 꿰는 게 인생살이라서, 여성들이 잘 생긴 나카모토 남자만 보면 눈알이 커지고 콧구멍이 넓어지며 아랫배에서 찌르르르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거다. 하다못해 오류노 오바마저 자기가 직접 받은 다쓰오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놈의 전류가 짜릿짜릿하게 흘러 직접 다쓰오를 자빠뜨린 적이 있었다는 거 아니냐. 동정인 줄 알았더니 오류 아줌마가 세번째 여자였다고 해서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고귀한 피와 엉겨 흐르는 더러운 피는, 먹고 사는 일에도 영향을 주어, 폭력과 살인, 도둑질, 주로 히로뽕인데 마약복용까지 망라한다. 오류노 오바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일을 하는 사람 답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이든 기형이든, 아니면 지체장애든, 범죄자가 될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아야 좋은 것이고 씨를 더 많이 퍼뜨리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는 믿음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카모토 집안의 남자들이 이런 일을 하고 다니니 제 명에 죽는 사람이 드물거나 없다. 그래 거의 전부 2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을 하는데, 그때마다 오류노 오바는 고귀하고 더러운 피가 스러졌음을 기념하는 것으로 연작 단편들의 결말을 장식한다.
부락과 로지라는 특수한 장소. 특수한 사람들이 특별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 작업이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문제가 있다.
나카모토 남자들은 성적으로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아무래도 DNA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다. 손끝만 대도 여자들은 곧바로 엑스터시의 황홀경으로 빨려간다. 소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픽션이고 조금의 과장일 터이니 웬만하면 독자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도 나카가미 겐지의 성애 장면은 과하다. 나카모토 남자들의 방중 광경은, 표현의 노골성은 다음으로 하고 지독한 가학/피학이 넘쳐 변태 포르노의 혐의를 받아 마땅하다. 여성/남성을 끈으로 묶고 애무나 삽입을 하거나, 여성의 전신을 바늘 쌈지로 찔러 온몸에 흐르는 피를 탐하다가, 비록 여성이 그렇게 해달라고 피학적 성애를 원했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장면 같은 것, 시신을 자신이 어렸을 때 산속 정령을 목격한 소나무 밑에 땅을 파고 유기하며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환상문학 장면과 비슷하게 처리하려는 거, 이건 뭥미? 에로티시즘과 포르노의 경계를 슬쩍 넘어버리고 시침 뚝 떼는 듯해서 눈살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 지고 말았다. 에로틱한 장면, 야한 묘사 좋아하는 나도 그럴 정도이니 점잖은 독자들이야 어땠겠느냐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 문장이 좀 서걱거린다는 거. 역자 이정미는 2022년에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이 책을 번역했다. 이때 같이 선정된 작가들이 엘리자베스 캐스켈의 <메리 바튼>을 번역한 김정연, 그라치아 델레다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번역한 김효정이었다. 이 정도면 믿고 읽을 수 있는 역자라고 생각했건만, 놓친 것이 하나 있다. 이정미의 역서를 보니까 이 책을 포함해 모두 스물세 권인데, 《천년의 즐거움》이 유일한 문학 책이다. 즉 이정미는 《천년의 즐거움》으로 문학 번역 데뷔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주식, 스포츠, 자기계발서 등등. 처음 번역하는 텍스트로 만연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길고 긴 문장의 작가를 고른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이를 지원대상자로 선정한 인천대 남상욱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하라고 했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고. 나는 번역도 습작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 독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어순은 비슷하지만 같은 문장 속에 우리말 단어를 어떻게 배치할까, 하는 것을 조금 더 신경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자주 들었다. 단어 배치까지 일본어 순서를 따른 것처럼 읽힌다. 내가 뭘 아나, 그렇게 우리말 문장이 서걱거리니까 혹시 그런 거 아닐까 짐작해보는 것이지.
결론. 과한 베드씬 묘사와 서걱거리는 우리말 문장. 이것들 때문에 나름 독특한, 독특해도 많이 독특한 작품이 좀 바랬다. 그래도 외면할 필요 까지는 없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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