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신지영 옮김 / 알마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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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알마 인코그니타 시리즈에서 나온 <끈이론>으로 처음 이름을 들은 후에 알마 보다 먼저 이이의 에세이집을 펴낸 바다출판사 표지로 얼굴을 익혔다. 면도를 하지 않아 고슴도치 털이 솟은 뺨과 턱, 그리고 이마를 넓은 스카프로 가린 안경 쓴 남자. 에세이스트인 줄 알고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갔다. 그러다가 새삼스레 이이의 작품을 뒤져 《오블리비언》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집이라는 걸 발견해 득달같이 읽은 것. 왜 이 시점에 월리스를 검색해보았느냐 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엄마를 둔 유대계 미국 작가 개브리얼 제빈이 쓴 재미있는 책 <섬에 있는 서점>에서 인도 출신 주인공이자 책 가게 주인인 A.J.가 한 출판사 영업사원 하비 로스가 죽기 전까지 하비와 더불어 책에 대한 깊은 대화를 많이 했는데 하비만큼 A.J.와 뜻이 같은 독자가 없었다는 거였다. 딱 한 명의 작품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쓴 <끝없는 농담Infinite Jest>만 빼고. A.J. 역시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건 하도 어렵고 길기까지 해서 일주일에 걸쳐 다 읽은 다음에 <끝없는 농담>이 후진 작품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일주일을 날려버렸다고 자백하는 꼴 밖에는 안 되는 셈이라 그렇단다. 반면에 하비 로스는 그냥 최고의 작품이라고 거품을 물었다나? 그래서 나도 <끝없는 농담>을 읽으려고 검색을 해봤더니, <끈이론>을 쓴 에세이스트 그 월리스가 이 월리스였다는 거 아냐?

  책 읽는 것도 이렇게 꼬리를 문다.

  어느 광고에서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21세기 좋은 책 100권 안에 든다는 얘기를 듣고 책을 읽다가 그게 재미있어서 개브리얼 제빈의 다른 책 <섬에 있는 서점>을 읽었는데, 이번엔 책 속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입에 침을 튀며 입씨름을 하는 작품을 검색해보고, 그 책이 없으니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을 꿩 대신 닭인 셈치고 골라 읽는 연쇄 책살인마?


  우리식으로 말하면 빠른 1962년생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가운데 이름 포스터는 외갓집의 성씨를 가져온 거다. 나기는 뉴욕 북부에서 나고, 어린 시절은 엄마 아빠가 교수를 해서 먹고 사는 일리노이주 샴페인-어배너에서 자랐다. 거기가 어딘가 하면,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한 네댓 시간 운전하면 나올 듯싶다. 아빠가 일리노이 대학 샴페인-어배나 캠퍼스 철학교수, 엄마는 파크랜드 칼리지 영어교수. 괜찮은 집에서 자란 월리스는 청소년 시절에 지역 챔피언급 청소년 테니스 선수를 지낼 정도로 스포츠에 조예가 깊은 공부 잘 하는 학생이었던 듯. 대학에서는 영어와 철학을 전공해, 워낙 공부를 잘 하니까 철학 교수들은 월리스가 철학자가 될 줄 알았고, 영어 교수들은 소설가가 될 줄 알았는데 결국 문학을 택한 우울증 환자. 공부 잘하면 뭐하니, 운동 잘 하면 뭐하고. 그냥 좀 찌질해도 우울증 같은 거 모르고 그저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마음으로 늘 웃고 사는 게 장땡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그리하여 이이는 평생 죽음, 특히 자살의 방법에 관해 뇌를 쓰다가 결국 2008년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바와 같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종결시켰다. 세상에 우울증 증세가 없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나도 우울증 증세가 좀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딱 죽기를 결심하지 않을 수준 정도인 거 같다. 죽고는 싶은데 적극적으로 죽을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 상태. 우울증이라고 다 죽어버리면 세상 인구 절반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여간 월리스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도 좀 오래 살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은 그래서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제일 앞에 실린 <미스터 스퀴시>가 그렇다. 명색이 단편소설인데 순분량純分量이 104쪽에 이르고, 당신이 펴는 페이지에는 온통 한 가득 활자만 빽빽하게 들어차 여백 구경을 하기도 힘든다. 숱하게 쏟아지는 영어 알파벳 약자들의 파도에 한 번 휩쓸렸다 하면 하다못해 몸을 의지해 떠내려가고 싶은 판자때기도 한 조각 발견하기 쉽지 않은 진퇴양난.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하루 종일 이 책 껴안은 채 기껏 104쪽 읽고 퇴근했다. 그래, 그래. 중간에 CJ컵밥 철판김치볶음밥 하나 까먹었다. 이 책에 별점을 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 과실로 하나를 감할 수밖에 없다.

  <미스터 스퀴시>는 리즈마이어 셰넌 벨트 광고회사 19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리즈마이어 셰넌 벨트가 근 몇 년간 독점적으로 계약을 맺어온 최첨단 시장조사기관인 ‘팀Δy’의 포커스 그룹의 회의를 하는 이야기이다. 근데 아쉽게도 35년간 회사 사무실밥을 빌어먹었어도 이들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뇌 세포가 뒤틀리다가 나중에는 비틀리면서 머리 가죽과 두개골 사이의 막이 막 당기는 듯한, 말하자면 편두통 증세까지 생기는 것이었으니, 편두통을 참으며 중간에 세 번 오줌 누고, 물 마시고, CJ컵밥 철판김치볶음밥 한 번 먹었더라도 그것 빼고는 줄곧 딱딱하고 찬 의자에 앉아 혹시 치질 도지는 게 아닐까 조금 걱정까지 하면서 꾸역꾸역 읽었더니 기진맥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한 시간에 스무 페이지도 읽지 못할 정도였으니 에휴, 젊어서 이렇게 공부했으면 지금 못해도… 주접을 떤다, 주접을.

  소설집 《오블리비언》의 제일 앞에 이런 고난도 작품을 배열한 이유는 뭘까? 일종의 액땜? 이걸 견딜 수 있는 자들만 다음 작품을 읽기 시작하라는 경고? 아이고, 내가 출판사 사장이라면 제일 재미있고 길지 않은 작품을 제일 앞에다 배열하고 <미스터 스퀴시>는 저 뒤에 가져다 놓겠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다가 팍 질리지 않아, 거 재미있군, 이러다가 끝판 가서 제대로 뒤통수 한 방 맞지. 그러면 다만 몇 권이라도 더 팔릴 거 아니냐고. 보아하니 책 또는 실린 작품들의 질에 비해 별로 팔리지 않는 것 같더구먼.


  나도 <미스티 스퀴시> 읽고 질려서 그날 쐬주 한 병 까고 말았는데, 쐬주 한 병이 발렌타인 세 잔을 보태게 만들어 다음날 숙취에 절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아니면 또다시 《오블리비언》을 읽을 생각으로 잔뜩 겁에 질려 그러했는지 떨리는 걸음으로 도서관 사물함에서 《오블리비언》을 꺼내 드디어 두번째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건 또 뭐야, 심지어 재미있잖아? 제목은 <영혼은 대장간이 아니다>.

  고등학교 교실을 무대로 한 작품인데 이걸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트래저디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일찍이 ‘나’는 프랭크 캘드웰, 크리스 드매테이스, 맨디 블램과 함께 ‘무자각적 인질 4인방’이라 불리게 된 교실에서의 사건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화자 ‘나’는 나중에야 공부를 잘 해 대학 교수도 되고 철학자 비슷한 소설가도 되고, 인생이 무상하여 46세 되는 해에 자살해버릴 정도로 천재 비슷하지만, 당시엔 집중력 부족과 산만한 성격 때문에 교실에서도 창가에는 절대 앉히지 않는 문제 학생이었다고. 그런데 교사 한 명이 임신과 출산 때문에 휴직하고 대신 들어온 소위 기간제 교사가 ‘나’에 대해 잘 몰라 ‘나’를 창가에 앉히고 말았다. 학교가 아마추어 야구장과 멀지 않은 이유로 가끔 공이 날라오거나 길거리 애들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 일이 많아 그걸 방지하느라 상대적으로 좀 덜 촘촘한 철망을 유리에 덧댔는데, 독자가 척 봐도 머리 좋아 앞으로 대학교수도 하고 철학자겸 소설가도 될 ‘나’는 철망의 작은 사각형 하나하나마다 무슨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짓궂게도 처음 창밖으로 본 장면이 큰 개와 작은 개가 교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의 모든 진행과정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일이었지만, 점점 규모가 커져 카오스의 경지에 이른다. 왜 ‘무자각적 인질’이라 했느냐 하면, 기간제 교사께서 일종의 발작을 해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한꺼번에 교실을 탈출할 때, 좀 덩치가 작은 학생 몇 명이 넘어져 넘어진 학생을 마구 짓밟으면서 탈출해야 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리에서 광경을 멀거니 바라다만 보고 있던 네 명의 찌질이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상황을 보면 얘네들 역시 얼른 위험을 피해 달아나야 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건 맞는데, 그래도 좀 아쉬운 게 있다. 나름대로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말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다시 한번 읽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책장에 꽂아두고 혹시 불면증이란 것이 생긴다면 불면의 밤을 하얗게 새우지 말고 이 책이나 읽으면서 키득거리는 것도 아주 훌륭한 방법이 될 듯하다. 늘 침대 탁자 서랍에 넣어두어도 좋을 책.

  이렇게 말한다고 이 책이 사람을 침잠시키거나, 안정시키거나, 수면에 도움을 줄 정도로 지겨운 책이란 말은 아니다. 어차피 잠 못 자는 밤, 엣다 모르겠다, 그냥 제대로 골머리 한 번 썩여보자는 것이지.

  그러면서 한 편으로 우울한 책. 조심해서 읽어야 할 독자도 분명히 있을 터. 그런 사람은, 접.근.금.지.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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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01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됩니다. 컵밥 준비하고 읽겠습니다!

Falstaff 2026-05-01 17:47   좋아요 0 | URL
기대하셔도 좋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