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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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쓴 유색 미국인? 이게 딱, 떠올랐다. <오스카…>가 21세기 100대 서적 안에 들었다고 읽었다가 많이는 아니고 조금 실망한 책. 작품의 무게와 별개로 소설을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젖은 요즘 미국 작가들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실망이었지, 도미니카 현대사와 뉴욕으로 이민해온 이주민들의 각박한 삶은 분명히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딱 골라 읽었다.

  희망도서 신청한 책이 내 이름으로 세 권, 아내 이름으로 세 권, 아이 이름으로 세 권, 합이 아홉 권. 이게 도서관 예산 집행 관계로 한 방에 들어올 예정이란 걸 알고서 촉각을 바짝 세우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빠지직…. 늙은 바퀴벌레의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노란 방사능 보이시지? 희망도서 한 방에 들어오면 그걸 보름 동안 다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아이쿠, 이번엔 기한 안에 설 연휴가 끼어 있다. 하여간 그런 부담 속에 고른 디아스의 소설집이 기특하게 가벼운 분량이기도 하네? 큼직한 글씨체로 280쪽. 서슴없이 골랐다.


  화자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낯익다. 유니오르. <오스카…>에서 얘기했듯, 유니오르Junior가 누구냐 하면, 작가 주노 디아스의 이름 주노Junot를 살짝, 아주 조금 바꾼 것. 주노 디아스는 1968년생으로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해 뉴저지에서 살았으니 그때가 여섯 살이었다. 그러니 굳이 《드라운》의 유니오르를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지만 작가가 브루클린 도미니카 이민들의 커뮤니티에서 듣고 본 동족 가운데 또래의 모습을 유니오르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건 뭐 말을 안 해도 삼천리다.

  이 책은 놀랍게도, 하여간 나는 놀랐는데, 주노 디아스가 이렇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가인 줄 몰랐기 때문이 첫번째요, 《드라운》이 이이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두번째, <오스카…>처럼 지극한 말장난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 세번째였다.

  책은 어린 시절, 소년 시대까지 도미니카 시골에서의 삶.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는 유니오르의 유년기때 돈 벌러 맨손, 맨발로 미국에 가고, 미국 가서 돈을 벌기는커녕 다른 도미니카 출신 여자하고 살림을 차렸고, 엄마는 이걸 알고 속을 썩여가며 아빠 미국 가는 차비 보태 준 외할아버지와 형, 이렇게 4인 가족의 헐벗은 생활을 그린다.

  드디어 엄마와 형 그리고 유니오르가 미국에 도착해 보낸 청소년기. 보잘것없는 마약 판매로 돈을 긁어모은 청소년 유니오르의 사랑과 허망한 탕진도 나오고, 청년이 되어 부잣집 전용 가구점의 운송 및 설치 기사로 일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청소년, 청년기를 거친 유니오르가 비록 시간이 나면 같은 호 몇 권의 교양잡지 <플레이보이>를 훔쳐 읽기도 하지만 나중에 소설가가 되리라는 건 꿈꾸기 힘들 거 같은데, 하여간 <오스카…>의 유니오르와 달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이렇게 소년, 청소년, 청년기의 유니오르와 가족 이야기가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나열되어 있는 소설집. 그래서 굳이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읽어도 괜찮고, 그냥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으로 읽어도 전혀 문제없는데, 진짜 문제는, 이 책이 데뷔작으로는 의외적일 정도의 찬사를 받았다 해도, 다른 이들은 모르겠고, 내가 읽기에는, 읽어주기에는, 아이고, 이걸 어쩌나, 도통 재미가 없더라는 것.

  하긴 읽으면서도 아홉 권의 희망도서가 언제 들어오나, 탐색하느라 너무 열심히 더듬이만 더듬더듬 더듬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재미없다고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래, 지금 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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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4-08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토해야겠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있어?
˝안테나에서 노란 방사능˝은 최승자의 제목 잊은 시에서 나오는 귀절이다. 그이의 싯귀에서 가져온 건데... 그이가 맞을 거다. 하여간 내 머릿속에서 나온 귀절은 아니라는 뜻이다.

망고 2026-04-08 11:54   좋아요 1 | URL
바퀴벌레의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노란 방사능. 이 표현 너무 재밌고 기발해서 읽으면서 감탄했는데 시에서 따온 거였군요ㅋㅋㅋ내내 기억할만한 재밌는 표현입니다😆 나도 나중에 써먹어야지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4-08 14:49   좋아요 1 | URL
아휴, 저는 안테나의 노란 방사능 같은 건 도저히 떠올릴 깜냥이 되질 못합니다. ㅎㅎ
평소에 신땡숙 흉이나 안 보고 다녔으면 모른 척할 텐데 그냥 넘어가기가 영 캥겨서 걍 고백해버리고 말았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