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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야상곡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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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바로 앞 페이지에 “작가의 말”이 실려 있다. 그걸 먼저 읽어보자.
“이 책은 불면을 위한 책이면서 또한 여행의 책이다. 불면은 이 책을 쓴 사람의 것이고, 여행은 여행한 사람의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행한 장소들을 나도 가본 적이 있기에, 이런저런 장소들을 간단하게 안내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지형 일람표 같은 것이 현실이 소유하는 힘과 합쳐져 ‘그림자’를 찾아나서는 이 ‘야상곡’에 어느 정도 빛을 비춰줄 수도 있다는 희망에서, 얼핏 그런 환상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여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길잡이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추측에서 여행지의 일람표를 만들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불면을 위한 책.” 이건 책을 쓴 안토니오 타부키의 것이다. “여행을 위한 책.” 이건 작품 속 인도에서 사라진 한 시절의 절친 사비에르 자나다 핀투를 찾아 인도 뭄바이, 옛 이름 봄베이에 도착한 화자 ‘나’ 별명 ‘호스’의 것이지만, 작가도 책에 나오는 장소들을 가본 적이 있다니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호스’는 나이팅게일의 포르투갈 말 “호시뇰”의 발음 앞 부분에서 가져온 별명이다. 서양인에게 이름이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는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하자. 그리하여 타부키 자신이 호스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호스’는 인도에서 호스가 갔던 곳을 가본 적 있는 모든 세상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즉 호스는 타부키도 될 수 있고, 심지어 호스가 찾아 나선, 지금도 절친한 친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난 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 사비에르도 될 수 있다. 더불어, 유럽이나 아메리카 사람으로 인도의 곳곳을 다녀본 미스터 나이팅게일일 수도 있고. 문제는 화자 ‘나’ 호스가 갔던 곳을 가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로 이 “여행을 위한 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그러니 세상(의 서양) 사람 가운데 이 책의 열두 장章의 무대가 되는 열두 장소 모두 가본 사람은 픽션의 등장인물을 포함해 호스와 안토니오 타부키와 사비에르 자나다 핀투를 뺀다면,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서양 사람으로 국한시키는 이유는 호스, 호시뇰, 나이팅게일, 타부키, 사비에르라는 이름 때문이다.
화자 ‘나’는 처음부터 잠이 쏟아진다. 여덟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인도 봄베이. 지금은 뭄바이라고 불리는 대도시이다. ‘나’ 그러니까 호스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봄베이의 수클라지 거리에 있는 카주라호 호텔과 그 인근의 어린 매춘부 ‘비말라 사르’로부터. 비말라 사르가 사비에르와 친하게 지냈는데, 사비에르가 병에 결려 이상하게 변했다고. 호스의 이름과 주소는 사비에르의 수첩에 적혀 있었고, 그가 가끔 제일 친한 친구로 호스 이야기를 해 편지를 보냈다는 거였다.
호스의 직업은 타부키와 마찬가지로 소설가. 전작 <레퀴엠>에서도 스스로 밝혔듯이 ‘소설가, 혹은 작가’는 그냥 직업일 뿐이고 태생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이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사람 호스는 지금 살고 있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젊은 시절의 친구 사비에르를 구출하기 위하여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봄베이로 날아올 수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 피사가 아니라 리스본에서 사는 이유 역시 <레퀴엠>에 나온다. 그러니 암만해도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레퀴엠>을 먼저 읽는 편이 좋을 듯싶다.
봄베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호스.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밝힌다. “수클라지 거리 카주라호 호텔로 갑시다.” 이렇게 말했겠지. 터번을 쓰고 흰 리본으로 묶은 짧은 말총머리를 한 걸 보니 힌두교 시크교도인 걸로 보이는 운전수는 복잡한 공항 근방 도심에서 무지막지한 난폭운전을 하더니 정작 길이 말끔하게 닦인 해변도로에 접어들어서는 여유롭게 바다 구경도 해가며 이런 저런 말을 나누려 한다. 호스가 항의한다. 가지고 있는 안내책자에 의하면 해안도로가 나타날 이유가 없다. 운전수가 말한다.
“카주라호 호텔은 아주 지저분한 동네에 있습니다. 점잖은 분께 어울리는 숙소로 모시고 있는 중입니다.”
열 받은 호스는 자동차만 쌩쌩 달리는 해안도로에서 그냥 내려달라고 해, 정말 내려버린다. 마침 해변에서 무슨 축제를 하는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부랑자, 잡동사니를 파는 아이, 거지들이 우글우글하다. 늘어선 인력거도 마찬가지. 그래서 모터가 달린 인력거를 타고 도착한 카주라호 호텔 인근 케이지 지구地區. 호스는 이곳을 유명 작가의 사진에서 본 적 있다. 그 덕에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케이지 지구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
사진에서 보고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했다고? 사진은 한 피사체를 장방형 프레임 안에 가둬둔 것이다. 딱 한 장면. 시각에 호소할 뿐. 그것도 이 장방형 프레임에서 단 1밀리미터 벗어나 “있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게다가 피사체에 들어 있다고 해도 피사체의 질감과 냄새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한다. 호스도 마찬가지였다. 인력거에서 내리기도 전에 닥쳐오는 너무도 지독한 냄새. 너무나 많은 냄새.
냄새? 냄새를 거론하는 건 위험하다. 냄새를 나게 하는 당사자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한다. 그래서 송강호가 이선균을 죽일 수도 있고, 그 장면이 타당하다고 관객이 동감하며 편안한 의자에 앉아 감상할 수 있는 거다. 맹인 알 파치노가 가브리엘 앤워와 탱고를 추는 영화 제목이 <여인의 향기>이지 <여인의 냄새>가 아니잖아. 당신은 함부로 타인의 냄새를 거론하지 말라. 그러나 호스, 혹은 안토니오 타부키, 아니면 미스터 나이팅게일은 과감하게 냄새를 거론한다. 그것도 “너무 지독하다”고. 카주라호 호텔이 있는 케이지 지구가 어떤 곳인지 이것보다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어서.
케이지 지구의 몇 안 되는 벽돌 건물인 호텔에 들어가니 ‘어두침침한 방’이라 쓴 카운터가 있고, 카운터 뒤에 그리 늙지 않은 여성이 서 있다. 방의 키를 주더니 호스에게 말한다.
“열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는 3백루피, 열다섯 위로는 55루피예요.”
호스는 비말라 사르를 데려다 달라고 하지만 이제 그 아이는 여기서 일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20달러 지폐 두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계단으로 향했다. 동네가 아무래도 너무 험한 거 같고, 자기가 돈 건네는 모습을 현관 근처 소파에 앉은 두 명의 나팔바지 청년이 본 것 같아 한 마디를 남긴다.
“내 거처는 대사관에다 알려 두었습니다.”
여덟 시간의 비행. 공항에서 도심을 빠져나오는데 세 시간. 잠이 쏟아지는 호스. 비말라 사르가 왔다. 그 아이가 전해준 말에 따르면, 자기는 누군지 모르는 고아 지방 사람들하고 봄베이에 와서 장사를 했는데 무슨 장사인지도 모르겠다. 마드라스에서 온 편지에만 조금 관심이 있어서 몇 시간 동안이나 답장을 쓰고는 했다. 아마도 연구 단체였던 거 같은데 자세히 모르긴 해도 신지학神智學협회로 보낸 것이지 싶다. 좋은 사람이었다. 마음 씀씀이가 좋았지만 원래 팔자가 사나웠던 모양이다. 수많은 글을 썼으나 어느 날 이 호텔의 구리 그릇에 넣고 다 태워버렸다. 병에 걸렸거든요.
비말리 사르가 해준 말에 이 책의 다음 행선지가 전부 나왔다. 병에 걸렸다니까 봄베이의 브리치캔디 병원에 가보아야 하고, 후진 카주라호 호텔에서 묶었으니 다음날은 최고급인 타지마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자야겠으며, 마드라스로 가는 기차역 숙소와 마드라스의 호텔, 신지학협회, 그리고 마지막 행선지 고아.
성姓이 ‘자나다 핀투’인 사비에르는 조상을 거슬러 오르면 먼 인도 핏줄도 하나 있는데, 이 조상이 인도의 고아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호스는 인도의 관청을 다니며 성姓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려 하지만, 이곳은 봄베이. 유럽식 분류법은 오만한 사치에 불과하니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충고만 듣는다. 그러면 고아에 가 보아야지.
그런데 고아에 가면 사비에르에 관한, 아니면 적어도 사비에르의 한 조각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그에 관한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까? 저 장방형 프레임 밖의 또다른 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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