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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볼트 이야기 ㅣ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최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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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발저는 1910년대에 자신의 도플갱어라고도 볼 수 있는 작중 등장인물 토볼트를 발견했다. 물론 아무나 도플갱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베르트 발저 가족 가운데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한 뒤에 우울증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보이고, 어머니는 정서적 문제로 장기 치료 후 사망, 남매들 가운데 첫째 카를은 화가, 둘째 에른스트는 정신병으로 갔고, 헤르만은 대학교수, 누이 리사가 학교 교사, 다른 누이 파니가 로베르트에게 권해서 로베르트도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다가 추운 날 산책 나갔다가 죽었다. 하필이면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니까 기질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에 부모와 자식들은 그나마 조금의 지원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야 했는데 유독 로베르트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음은 당연히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자기만의 방도 없는 주제에 지금이나 그때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써 언제 고료를 받을 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료만 바라보며 배를 곯고 있을 수도 없어서 스물일곱 살 먹었을 때 베를린에 가서 정말로 하인양성소에 들어가 하인 일을 배웠고, 진짜 하인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시기에 하인으로만 일했던 건 아니다. 출판사 두 군데에서 사무직도 하고, 배우가 되려고 극단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며, 스위스로 돌아가 다른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작품을 쓰는, 당시로는 드물게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쓴 작가였다. 울프가 말했듯 문학은 돈 좀 있는 자재들이나 할 수 있는 리그였다는 뜻이다.
이런 작가들은 자기의 삶 가운데 직업이 중요한 소재가 되겠지. 발저의 경우엔 그리 길게 일 하지 않았지만 상실레지아의 담브라우 성에서 귀족의 하인으로 잠깐 일한 전력이 상당한 문학적 재산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게 독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나도 여지껏 로베르트 발저, 하면 그의 장편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은 하인 말고 여러 (당시 사람으로서는)괜찮은 직장을 다니긴 했지만 견디지 못해서, 아마도 집안 내력인 정신질환의 불규칙적 발현 때문일 수도 있었겠는데 하여간,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여러 경우를 참아내지 못해 회사에 들어갔다가 곧장 때려치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너무 오버해서 읽는 지도 모르겠으나, 발저가 자신의 도플갱어 비슷한 인간 토볼트를 만들어낸 것이 이런 정신적 특이성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걸 괜히 길게 써서 좀 보기 싫게 됐다.
하여간 《토볼트 이야기》를 보면 1912년에 토볼트를 만난다.
<낯선 사내>라는 아주 짧은 단편일 수도 있고 산문일 수도 있는 픽션 속에서 발저는 고백한다.
자신은 심각한 태만의 죄를 짓고 있고, 태만의 죄를 짓고 있어서 스스로가 자신한테 맞지 않는 엄청난 악당이란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한테 와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이지만 한 사람이 고대하고 고대할수록 기다리는 그 무언가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무엇인가를 찾는 듯 보이는 이상한 생면부지의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봐? 그렇다. ‘나’는 열린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자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차갑게 떠나 보내고 말았다. ‘나’는 ‘나’를 올려다보던 그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토볼트’라고. 짧은 산문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이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 물음은 사라지지 않고 뒤에 다시 출현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마땅하겠다. 정말 영영 사라진다면 이런 말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후 로베르트 발저의 분리된 의식은 ‘나’의 한 조각일 수 있는 악한, 버림받은 여인 혹은 지배자로 변용하여 토볼트와 지문 없는 희곡 형식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당연히 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논의가 아니라 다양한 관념과 관념이 이끄는 정신상 현상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으로 로베르트 발저의 책 세 권을 읽는데, 세 권 가운데 <타너 가의 남매>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나머지 두 권은 어째 아직도 정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로베르트의 진가가 어떻든지 간에, 내 독서 생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로베르트 발저는 눈에 띄는 책이 있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가이다. 이번에도 도서관 책 치고는 거의 새 책이고, 본문도 76페이지에서 끝나지만 무려 다섯 소품이 들어있을 뿐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고 착각해 선택한 거다.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고, 부르주아의 파티 장면 같은 것도 색다르게 묘사해서 괜찮게 읽었는데, 이제 하루가 지나 독후감을 쓰려니 뭐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어제 앱 ‘북적북적’에다 왜 별점 4를 주었을까? 발저가 조금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작가 같고, 나도 포장 규모에 잠깐 현혹되었는지 모르지. 괜찮아, 괜찮아. 가끔 과대 포장된 사람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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