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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이 되어줘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진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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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가 참 재미있었다. 처음 읽은 다비드 그로스만이었는데, 공감하는 것이 많아 꼭 다른 작품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고른 책이 <나의 칼이 되어줘>. 무엇을 고를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개가실의 이스라엘 작품 서가에 꽂힌 그로스만 가운데 ‘아무거나’ 한 권 골라 들고 나온 거였다. 속으로는 전에 읽은 <말 한 마리…>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겠지.
열람실에 올라가 책을 펴니, 에그머니, 서간문이다.
제일 싫어하는 형식의 소설이 바로 서간문. 다음이 일기체.
서간문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공유하는 특별한 것, 나와 너, 1인칭과 2인칭 사이의 내밀한 공간을 옅보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일기체는 사실 더하다. 서간체나 일기체로 쓴 모든 것들, 소설은 물론이고 SNS까지ㅡ 그것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더러 보라고 쓰는 것일지언정, 마치 내가 관음증 환자라도 된 느낌이어서 거의 읽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읽더라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내 취향이 그런 걸 어쩌랴? 근데 이번에 제대로 걸렸다.
문장 좋은 작가들이 형식만 서간체를 선택하고 편지 왕래가 계속될수록 작품의 스토리가 점점 무르익는 정상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도 읽기에 별로인데, 이 그로스만이 쓴 <나의 칼이 되어줘>는 470쪽 분량 가운데 적어도 100페이지 이상 넘기고 나서야 조금 읽을 만해지고, 약간 똘끼가 있는 주인공 야이르 아인호른이 자기 외아들 이도한테 볼거리가 옮아 (어디서 들었는지 성인이 볼거리에 걸리면 이후 발기부전 또는 불임에 걸린다는 확실한 믿음 때문에) 아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피신해서 ‘정신적인 연인’ 미리엄에게 보내는 길고, 길고, 길고, 긴 마지막 편지까지 와야 골을 파며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기 위해서는 대략 150페이지 정도까지 정말로 이를 악물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별점으로 이야기해볼까?
처음엔 <말이 한 마리…> 정도의 기대를 하고 시작했다가, 곧바로 야이르가 쓴 편지들만 읽으면서, 편지라는 것이 서로 왕래를 해야 몇 백 통의 서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야이르가 쓴 편지만 계속 읽게 되는 바람에, 편지를 받은 저쪽 미리암이 답신을 어떻게 했는 지 모른 상태에서 독자는 계속 야이르의 헛발질을 구경하게 된다. 도무지 오늘 쓴 것과 내일 쓴 것과, 일주일이 지나고 쓴 것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편지와 편지들이 엮여 하나나 둘 정도의 스토리를 꾸밀 생각도 하지 않으니 독자는 속으로 별점은커녕 책 읽는 걸 당장 집어치워 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말이다. 그렇게 된다.
그래도 여태 책 읽은 내공이 있지, 여기서 말 수 없다. 이런 똥고집 하나 가지고 계속 읽어 나가도 결론은 버킹검. 이젠 질려버리기 시작한다. 별 둘을 줄까, 하나를 줄까? 심지어 다비드 그로스만 이 작자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이것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편지를 받을 여성 미리엄과 하도 “자유스러운 소통”을 하는 바람에 독자는 당장 이 책 읽는 걸 때려 치우라는 뇌 속 속삭임을 듣지 않을 방법이 없다. 속삭임, 속삭임. 때려 치워, 때려 치워, 때려 치워. 그래도 좀 더 견뎌보자.
그렇다. 뭐든지 그렇듯이 힘든 덤불을 헤쳐야 뭔가가 있다. 드런 세상 사는 것도 다 그렇잖아? 이제 거의 다 겪은 거 같아 나름대로 위안을 받고 싶어 책을 읽었더니, 하, 책 읽는 것조차 삐죽삐죽한 모서리와 가끔 숨은 지뢰가 펑펑 터지는 골짜기를 건너고 나서야 뭔가 알 것 같은데, 우라질, 사람 사는 게 다 이렇지?
견디다 못해 읽는 자리를 바꾸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내 방으로. 아내가 만들어준 스탠딩 독서대에서 서서 읽는다. 아내도 눈치채고 옆에서 종알종알 말 시키며 방해하는 대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열라 유튜브만 본다. 나는 점점 집중한다. 조금 지나니 찌질이 야이르가 드디어 예루살렘을 떠나 텔아비브의 러브호텔, 한 시절 전에는 무게있고 근사한 호텔이었지만 주인이 바뀐 다음에 러브호텔로 변해버린 숙소에 들어 미리엄을 향한 마지막 편지이자 마지막 주접을 떠는 장면을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가 정말로 집중하게 되면서, 어라, 이게 무슨 일? 재미있어진다. 별 다섯 만점을 줄까? 하지만 앞부분에서의 만행을 감안하면 넷이 좋겠다.
야이르 아인호른. 이름만 보면 동유럽에 살다가 전쟁 앞뒤로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유대인 가족처럼 보인다. 서유럽 쪽 유럽인이 쓴 소설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 동유럽이나 기타 지역의 유대인 집구석은 대단히 가부장적이다. 아인호른 집안도 그랬던 모양이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인호른 씨도, 지금은 요양원에 자기 발로 들어가 오직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지만 젊은 시절에는 야이르가 사소한 잘못만 하더라도 얇은 허리띠를 휘리릭 풀어 마치 영웅 조로의 채찍처럼 휘두르기를 그리도 좋아했다고. 엄마는 아빠 하는 지랄이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선뜻 나서서 말리지도 못했고.
그래서 야이르의 성격이 좀 이상해지기도 한 모양이다. 전형적인 찌질이이기는 한데 진짜 전형적인 찌질이의 형태, 자기 역시 심지어 외아들이기도 한 다섯살짜리 이도(하필이면 세종대왕의 진짜 이름하고 발음이 같은 ‘이도’)가 유치원 갈 시간을 맞추지 않고 늑장을 부린다는 이유로 비 철철 오는 12월 아침 내내 집 현관 밖으로 내 쫓아 거의 반죽음을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끝까지 이 잔인하기도 한 훈육을 아버지와 아들 간의 전쟁으로 인식한다니까? 아이가 폐렴에 걸리든 말든, 저체온으로 천천히 죽어가든 말든. 하여간 무지하게 꼴 사납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당한 폭행이 결국 야이르의 의식 속에 숨어 점점 자신을 망치고 있었던 것. 이게 47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서 말하는 것 전부는 아니다. 다른 것도 많고 많지만 그냥 말하기 편한 거 하나만 골랐을 뿐.
4월 1일. 야이르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다. 동기동창회가 아니라 학교 동창회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야이르의 눈에는 오직 한 명만 눈에 들어왔다. 미리엄. 건장한 키와 당당한 태도를 가진 일곱살 연상의 부인. 야이르는 4월 3일에 미리엄에게 본명이 아니라 “야이르 윈드”라는 이름으로 첫 편지를 쓴다. 그러나 굳이 답장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그러나 오직 자기 이야기와 미리엄의 이야기가 만나는 장을 만들고 싶단다.
야이르는 서적, 희귀 도서 전문업을 한다. 그냥 책방 수준이 아니라 열 명의 종업원을 두고 전세계를 돌며 웬만한 사람은 구경도 못해본 책을 구입해 무지막지한 수수료를 붙여 다시 판다. 그래서 젊은 나이, 서른세 살에 크지는 않지만 예루살렘의 부르주아 동네에 집을 짓고 산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첫사랑 비슷한 아내 마야와의 사이에 아들 이도 딱 하나만 키운다. 마야 역시 커리어 우먼이다. 육아와 가사를 공평하게 나누어서 하니 얼핏 보면 괜찮은 남편이자 아빠. 그런데 왜 미리엄과 편지 왕래를 시작했을까?
편지 왕래도 계속하면 정이 들고 급기야 사랑하게 될지 누가 알아? 그리하여 야이르는 규칙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규칙이라기보다 편지왕래의 기한을 정하자고. 1년? 혹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워질 때까지. 말이 쉽지. 참을 수 없이 즐거울 때 그만둘 수 있겠어? 뇌에서는 주책없이 도파민이 쏟아질 텐데 그걸 멈춘다고? 그리하여 이들은 겨울이 되어 첫 비가 내릴 때까지의 기한을 정한다. 근데 나는 이 대목을 못 읽고 지나쳤다. 또는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이런 말이 나와, 그런가보다, 했다. 앞에서 비 내리는 집 현관문 앞의 부자지간 혈투를 소개했지? 그게 그 해에 내리는 첫 비였다. 괜히 그 장면을 소개한 게 아니지.
앞에서 말했듯, 이왕 서간체면 이쪽과 저쪽의 편지를 다 볼 수 있어야 이야기 전개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로스만은 결코 미리엄의 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점점 야이르의 자기중심적 호소랄지, 허튼소리랄지, 달밤의 체조만 구경하는 식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은 엄연히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 다만 살갗과 살갗이 닿지 않고, 교통비와 음식값과 대실료가 들지 않을 뿐, 정신적으로는 서로를 무지하게 쓰다듬고, 주무르고, 액체를 교환하고, 엑스터시의 선을 넘는다. 이건 사랑 또는 불륜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당연히 야이르만 살면서 몸에 새긴 흉터가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미리엄도 마찬가지.
그래서 처음부터 편지 왕래의 기한을 정한 거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재겠지만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서로 편지라는 형식이라 가능해서 편지를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피처럼 흘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정도는 알 나이다. 야이르가 서른세 살, 미리엄이 마흔이니까. 이들, 특히 야이르가 바라는 것도 진실을 피처럼 흘려 그걸 드러내고 누군가, 미리엄이 봐주는 일. 그래서 부탁한다.
“나의 칼이 되어 주세요.”
아오, 너무 길게 썼다. 너무 장황해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시겠지? 미안하다.
이 책을 읽는 일의 문제점은, 앞부분의 골짜기를 인내하고 건널 수 있느냐, 하는 것. 건너기만 하면 좋은 경험을 하실 수 있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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