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필리프 클로델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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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이후 “아직”이라 표기>을 읽을 때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시리아 내전 등과 비슷한 시기에 전쟁과 독재정권에 의한 탄압, 종교분쟁 등을 피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 낡고 작은 배에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밀집해 타고 유럽을 향해 가다가 터키, 그리스 또는 그곳 근처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지중해에 빠져 익사한 사실이다.

  줄퓌 리바넬리의 작품 <어부와 아들>에서도 이 부자의 어장에 둥둥 뜬 수많은 어두운 피부색의 익사자를 경험한 적 있어서 낯설지는 않다. 클로델도 그렇고 리바넬리도 그렇고, 아마도 2015년 터키의 해변에서 발견한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 사진이 미디어에 소개되어 전세계로 퍼진 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전에도 물론 난민 문제, 난민 발생부터 이주, 그리고 이주 중의 열악하고 위험한 과정 중 지중해에 빠져 죽는 숱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에 관한 문제 제기에 적어도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소년의 죽음 이후에 잠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하였지만 이런 비극도 짧은 시간이 지나자 세인의 뇌리에서 흐려져 또다시 세상 사람들은 그것 말고도 다른 어려운 문제로 눈을 돌려, 전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작가들은 생각했던 것 같다.

  리바넬리는 아예 <어부와 아들>의 제일 큰 주제를 이 부자가 사는 섬에 조수를 타고 밀려오는 시신들에 집중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물론 난민 문제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난민의 시신이 섬에 밀려오고 난 이후에 섬 사람, 섬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집단 히스테리에 더 주목한다.


  작품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또는 자신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것에 관하여.

  “나는 이 이야기의 목격자이다.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신은 결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는 자이다. 나는 성가시게 하는 자이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나는 어둠으로부터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리라” (p.10)

  여기서 “당신”은 무엇에 관해 보고싶어 하지 않을까? 난민문제? 만일 난민문제라면 당신은 난민에 관심이 없는 전세계 사람이며, 위에서 내가 말한 집단 히스테리라면 공간적 무대인 섬사람 또는 비슷한 정치상황을 가진 진영들이라고 볼 수 있다. 둘 다? 뭐 그럴 수도.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작품은 상상의 장소인 군도, 이름이 “개의 군도群島”인 섬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사는 화산섬 브라우에서 일어난다. 섬이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데 그걸 마치 별자리를 그리듯 이리저리 선을 이어보면 개의 대가리 형상이 나타난다. 개의 귀, 눈, 코, 이, 침까지. 무대가 되는 섬은 개의 아래턱 맨 끝에 있는 화산섬인데, 이 화산은 심지어 활화산이다. 최근에 용암을 흘리고 지금은 좀 쉬고 있지만 잊을 만하면 몸을 부르르 떨어, 그때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벽과 땅도 부르르 떨게 하는 지진으로 자신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음을, 언젠가는 터지고 말리라는 것을,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총처럼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안 가르쳐드린다.

  사람이 사는 섬은 아마도 페니키아 시절에 해적들이 근해를 항해하다가 약탈한 보화를 숨기다 좌초한 이후에 어쩔 수 없이 터를 잡아 그냥저냥 살다가 정착했다고 짐작하는 곳이다. 수 대를 걸쳐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사는 곳. 아이들이 자라 청년이 되면 부모가 죽어라 하던 농사일과 바닷일에 진저리가 나 꼬박꼬박 육지로 일하러 나가는 바람에 이제는 섬의 쇠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대의 섬들 가운데 하나. 그러나 아직도 철이 되면 몰려드는 거대한 참치떼가 있어 더운바람이 식기 시작하는 초가을에는 축제와 긴장의 분위기가 한꺼번에 섬을 휩싸기도 한다.


  모든 것은 9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해변에서 시작한다. 섬에서 나 육지로 가 공부를 하고 돌아와 50년이 넘게 섬 학교의 교사를 지내다 은퇴한 노파가 중형 믹스견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다가 해안에 세 개 길쭉한 형체가 놓인 것을 발견했다. 포도주를 만드는 마흔 가까이 된 농부 아메리크와, 최고의 황새치잡이 어부 스파동도 거의 동시에 그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 명이 가까이 가보니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 죽어 있는 흑인 남자 시신 세구. 모두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단출한 차림에 맨발이며 안타깝게도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다.

  노파는 오래 전 제자였던 스파동더러 시장을 불러오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파동은 시장과 의사를 데리고 온다. 시장이 시신을 보더니 아랍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단어들의 조합으로 만든 천 년도 더 된 욕설을 터뜨린다. 이때 외지에서 온 교사가 아침 조깅을 하다 이들을 발견하고 합류한다. 노파는 교사가 싫다. 밉기까지 하다. 자신이 은퇴하여 후임으로 왔음에도 교사가 뭔가를 훔쳐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서, 그래서 싫고 밉다. 사람이 다 비슷하지 뭐. 옆집 총각이 장가가도 괜히 속상한 게 인지상정이니까. 시장은 교사가 합류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교사는 외지 사람이다. 교사 일을 하며 월급 받아먹고 살기 위해 섬에 들어온 뜨내기.

  시장은 잔뜩 화가 난다. 지금 이 섬은 젊은이들이 점점 빠져나가 몇 년 후면 황량한 사막 비슷하게 변해버릴 것이 뻔해서, 화산이 있으면 당연히 동반하는 온천, 그리고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고급의 기막힌 포도주, 올리브 오일, 파랗고 파랗고 또 파란 바다, 풍접초를 이용한 복합단지 개발 컨소시엄을 만들기 위해 준비작업 중이다. 근데 중동, 아프리카 난민이 부근을 지나다가 좌초하여 시신이 빠져 밀려온다면 어떤 돈 많은 관광객이 이 섬에 와서 휴양을 하겠느냐는 말이지. 어떤 부자가 바다에 빠져 썩은 시체를 뜯어먹은 새우, 가재, 물고기를 먹겠으며, 그 바다에 희고 포동포동하고 매끄러운 몸을 담그겠느냐고? 만일 시신이 밀려왔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복합단지 컨소시엄은 물 건너 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섬에서 가장 큰 어부이자, 선주이자, 냉동/냉장창고 주인이기도 한 시장은 다른 사람은 다 보내고 부하 비슷한 어부 스파동과 함께 시신 세 구를 일단 자신의 냉동창고에서 꽝꽝 얼려 보관하기로 했다. 육지의 경찰이나 판사한테는 알릴 수 없으니까.


  이틀 후, 당시 현장에 있던 여섯 명과, 이 가운데 누군가의 고해성사로 일을 알아낸 신부까지 포함해 일곱 명은 얼었다가 녹으면서 흐른 물에 하나로 엉겨버린 세 시신을 처음엔 무한궤도차에 싣고 화산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가다가, 남은 몇 백 미터는 사람들이 끙끙거리며 짊어지고 가야 했는데, 이때 외지에서 오고 평소에 체력관리에 힘쓴 교사가 제일 많이 보탬이 되어, 시신 세 구를 화산 구덩이로 밀어 넣어버린다. 마그마에 녹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섬 사람들이 자기들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거하고 똑 같은 일을 저질러버린 것.

  교사는 낙담한다. 일곱 명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 경찰과 판사에게 알릴 것, 화산 구덩이에 사람의 시신을 버릴 수 없으니 시신을 섬에서 반출하거나 이곳에서 묻을 것. 이렇게 주장했지만 이도 먹히지 않았다. 외지인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교사는 시신이 하필이면 이 섬에 밀려온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자기 돈을 써서 배를 빌려 조수를 관찰하고 사람 무게의 마네킹을 빠뜨려 몇 개가 이 섬으로 오는지 관찰을 하고, 드디어 수상한 점을 발견해 그걸 문서로 만든다. 그럼 그걸 육지 판사나 경찰한테 주었으면 좀 좋아? 교사는 문서를 시장에게 건네고 조치해달라는데, 여전히 컨소시엄에 집중하는 시장이 들어줄 리가 없다. 오히려 유일한 외지사람 교사만 없어지면 섬사람들은 섬사람들끼리 오붓하게, 여태 잘 살아왔듯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틀림없다.

  시장은 독한 꾀를 낸다. 그리하여 교사를 좌절에 빠뜨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결국 섬을 떠날 수밖에 없는 누명을 씌운다. 그 다음에 문득 정신을 차려 자신이 한 짓, 자신과 섬사람들이 한 짓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을 때는….

  나는 이 독후감에서 이후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 육지에서 온 경찰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그래서 교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으시면 직접 읽어 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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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3-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화산 구덩이에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텐데 그런 일을...
그나저나 여기까지가 도입인건가요? 여기까지만 이렇게 재밌게 길게 쓰실 수 있다니 역시 폴스타프님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그나저나 저는 뭔가 조금 더 나와야 읽고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

Falstaff 2026-03-06 15:52   좋아요 0 | URL
화산구덩이가 여러 형태거든요. 이 책에서는 이해 가능한 구덩이기는 한데, 제가 의심한 건 이런 구덩이(입구가 매우 좁습니다)에 시신을 떨어뜨리면 떨어지면서 시신을 훼손한 살점이 바위 표면에...... 에구.. 이쯤에서....
ㅎㅎㅎ 작품의 진도가 더 나가면 좀 곤란할 거라고 판단해서 말입죠. 그저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