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앰버슨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0
부스 타킹턴 지음, 최민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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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절에 부스 타킹턴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가 최초로 퓰리처 상을 두 번 받았기 때문인 거 같다. 나도 전에 <앨리스 애덤스>를 읽었고, 이제 <위대한 앰버슨가> 마저 읽어 타킹턴으로 하여금 퓰리처 상을 받게 한 두 작품을 다 읽는다. 이제 타킹턴하고는 헤어져야 할 시간인 듯.

  이이 말고 퓰리처 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작가들은 윌리엄 포크너, 존 업다이크 그리고 21세기 작가인 콜슨 화이트헤드. 이들의 퓰리처 상 수상작품을 모두 읽었을 거 같지? 아니다. 포크너의 수상작은 <우화>하고 <약탈자들>, 나도 포크너 좀 읽었지만 이 둘은 아직 손을 대지 않았다. 나머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다 읽었고.

  독후감을 쓰면서 왜 이렇게 버벅거리느냐 하면, 책을 읽고나서 며칠 지났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읽은 다음에 즉각 머리속으로 독후감을 어떻게 쓸까 구상을 하는데 그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휘리릭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 이전에는 찬쉐의 골치 아픈 초기작, 이 책 뒤엔 중동 난민 지역에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밀항하는 유랑민들의 비참한 이야기, 가볍지 않은 책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쓴지 백 년이 넘어간 조금 낡은 스타일 작품의 인상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앰버슨 소령. 미국 내전 시기의 북군 지휘관으로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눈썹을 휘날리다 제대한 예비역 소령은 이후 지명을 밝히지 않은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 정착한다. 아무리 19세기라도 소령을 지냈으니 일정 수준 이상 신사라 칭할 수 있는 재산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령은 신사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전쟁 후 미국에서는 1873년부터 96년까지 장기 불황에 빠졌는데, 정말로 이재에 밝은 이들은 이 위기, 한자어로 쓰면 危機, 즉 아무도 선택하려 하지 않는 “위험한 기회”에 과감한 변신을 시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큰 재산을 얻는 거다. 앰버슨 소령이 그러했다. 그의 재산은 미국 중서부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 그러나 조금 눈을 크게 뜨면, 뉴욕과 메릴랜드, 워싱턴의 대부호에 견주면 말 그대로 “시골부자” 수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겠지. 록펠러와 카네기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앰버슨 소령은 도시에서 80만 제곱미터, 24만2천 평이 넘는 넓은 땅을 구입하고, 토지를 구획하여 거리와 교차로를 조성한다. 교차로에는 그리스의 여신과 남신, 영웅을 청동이나 황동 주물로 세운 화려한 분수를 만들어 방문객의 눈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도로 양쪽으로 다른 신사들의 가정을 위한 택지를 개발했다. 이 가운데 1만6천제곱미터, 약 4천8백평이 넘는 제일 좋은 자리에 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거대한 앰버슨 저택을 지었다. 3층 전체를 무도회장으로 꾸몄고, 악사들의 자리를 위한 조금 높은 단은 검정색 호두나무로 만들었다. 이왕 검정 호두나무를 사용하기로 한 바에 거의 모든 목재도 같은 재질로 마감하니 설치비용을 뺀 목재비로만 당시 화폐가치로 6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뒷말이 몇 년 동안이나 도시를 배회했다나?


  1870년대. 아마도 후반이겠지. 소령이 본격적으로 돈 세는 경리직원을 열댓 명 거느리기 시작했을 즈음으로 보이는데, 이때 출생 순으로 2남1녀 중 막내딸 이저벨 앰버슨이 18~19세,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다. 아주 활기차 보이는 젊고 어여쁜 아가씨. 그러나 무려 백 달러짜리 세인트버나드를 끌고 산보를 다니는 바람에 쫄보 총각들은 말도 붙이기 힘든 이 아가씨한테는 두 명의 경쟁자가 있었다.

  1번은 유진 모건. 유진은 활발하고 총명하고 매사 적극적인 반면 특히 오지랖이 넓어 온갖 거리에 다 집중하는 좀 어수선한 미남자. 이이가 하루 날을 잡아 이저벨의 오빠 조지와 작당을 해 도시의 작은 밴드를 몰고와 이 당시 낭만적인 청년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이저벨의 창가에서 세레나데를 불러댔다. 그러면서 술을 왕창 마시고 소동을 피우다가 친구 조지는 취해서 뻗어 버리고, 유진도 비틀거리다가 베이스 비올을 밟아 와자작 박살이 나고 말았다. 2층 창가에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유쾌한 장면을 보고 있던 이저벨이 채점을 하니 함부로 비올을 망가뜨린 것 때문에 C.

  2번은 이런 소란스러운 절차에 전혀 관심이 없는 성실한 일꾼 윌버 미내퍼. 아폴론 같은 사람은 아닐지언정 건실한 청년 사업가라는 중평이 시내에 가득하다. 부잣집 사위로 들어갈지라도 처가에 아쉬운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을 듬직한 사람. 여자가 한 평생 기대 살기에 너무도 적절해 보이는 믿음직한 청년, 비록 매력은 없더라도.

  두 가지 선택지에 평소 마음에 들던 1번이 C를 받았으니, 범이 없는 골에 여우가 대빵이다 싶은 마음으로 이저벨은 윌버 미내퍼를 선택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해버렸고, 1년 후에 아들을 낳아, 사랑하고 의지하던,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의지할, 의지해야 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오빠 조지의 이름을 따 아들에게 조지 앰버슨 미내퍼라고 짓는다.

  경사 뒤엔 언제나 슬픔도 있는 법. 슬픔이 가득한 유진 모건은 젊음을 허비하느라 여기저기 작지 않은 빚을 지었는데, 사람이 좀 허랑한 면이 있더라도 깔끔하게 자기 자리를 정리할 줄 알아서 짧은 기간 열심히 돈을 벌어 자기 빚을 다 갚은 후에 도시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별의 별 짓을 다 한 모양이다. 출신이 신사라서, 코피 나게 공부를 해 변호사 자격을 따 변호사도 해보고, 작은 회사 경영도 해보고. 근데 그건 나중 일이니 다음으로 하자. 즉, 언젠가 뒤에 다시 이 도시에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 도시에 문화 전반에 가장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부인이 있었다. 헨리 프랭클린 포스터 부인. 물론 중산층 부인 계급의 오피니언 리더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도시에 셰익스피어 공연단이 들어와 연극을 했다 해도, 거의 모든 부인들은 포스터 부인이 공연에 대해 먼저 뭐라 소감을 말하기 전까지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을 정도이다. 괜히 포스터 부인과 다른 의견을 먼저 말했다가는 나중에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싶어서.

  포스터 부인 역시 윌버 미내퍼와 이저벨 앰버슨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주었지만 그날 부인의 살롱에 모인 다른 부인들에게 몇 가지 예언을 했다. 내 생각에, 정말로 현명한 여인이었다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들을. 부스 타킹턴 역시 침묵은 금이란 걸 몰랐을 리 없지만 굳이 포스터 부인에게 입방정 역할을 맡긴 건 올드 스타일 소설답게 “포스터 부인, 여기서 복선을 좀 깔아주시겠습니까?” 극진하게 부탁을 했을 것이다. 우리 독자는 당연히 이 복선을 유심히 읽어볼 권리가 있다.

  “이저벨은 좋은 부인이 되겠지만 도시가 지금껏 본 적 없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잔뜩 낳을 것이다. 이저벨은 윌버를 사랑할 수 없고, 이 마음이 아이들에게 모두 전해질 것이라, 이저벨은 아이들을 망칠 것이다.”

  부인의 예언 가운데 딱 한 가지 세부사항만 틀렸으니 이저벨의 배에는 맏이 조지 앰버슨 미내퍼 하나만 들고 영원히 닫힌 상태가 되었다는 것. 사람들이 훗날 포스터 부인에게 와서 하나 밖에 안 낳았다고 지청구를 하니, 부인께서는 또 입방정을 떨기를:

  “겨우 하나라니. 하지만 그 애가 과연 마차 한 대를 채울 만큼 넉넉히 버릇없는 애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군요!”

  이 정도면 포스터 부인은 자기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어린 조지가 엉망으로 크기를 바라고, 만일 아니라면 제발 망가지라고 굿이라도 할 듯하다. 나무아미타불. 하늘의 도움인지 포스터 부인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얼른 얼른 알아서 갔다.


  사실 이 작품은 소령. 소령의 아들 조지 앰버슨. 외동딸 이저벨 앰버슨과 거의 보이지 않아 존재감 레벨 14 수준인 남편 윌버 미내퍼, 이들 사이의 아들 조지 앰버슨 미내퍼, 그리고 여기에 포스터 부인의 예언으로 줄거리는 거의 다 끝난 거다. 즉 예측할 수 있다는 뜻.

  거기에 문제의 어린 조지.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조지는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줄 안다. 모든 것은 자기의 외가, 즉 앰버슨가의 재력, 그것도 무한 재력에서 화수분처럼 솟아난다고 굳게 믿는다. 구렁마가 끄는 마차를 무참한 속도로 달리게 만들어 시내의 신사 숙녀를 여차하면 치어 다치게 할 위험한 폭주를 감행하기도 하고, 잘 먹고 잘 살아 힘이 세서 그런가 동네 아이들을 무참하게 두드려 패기도 해서 도시에서 조지를 좋아하는 인간이라고는 그저 어린 조지의 비위에 맞추고 싶어하는 하인 계급의 주로 흑인들, 그리고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은 또래 아이들 몇 명뿐이다.

많은 타운의 사람들은 어린 조지에 대해 매우,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조지는 이런 인간들을 “천한 것들”이라 여기고. 그리하여 대부분의 타운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

  “꼬마가 천벌을 받는 날을 볼 때까지 내가 살아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조지는 정말로 그렇게 큰다. 안하무인. 못하는 일이 없다. 뒷배경엔 자기 가문도 아닌 외갓집 가문이 있어서. 그런데 앰버슨 저택에서 열린 대무도회에서 낯선 사람을 발견하니 한 명이 키가 크고 낡은 연미복을 입은 멋진 외모이지만 정이 조금도 가지 않게 생긴 중년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딸인 것처럼 보이는 키 작고 귀엽고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이때가 조지의 나이 15세가량. 소위 첫사랑이 싹트는 순간이다. 근데 보니까, 키 큰 중년남자가 엄마를 미내퍼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저벨”이라 하고, 삼촌 조지 앰버슨과는 아예 어렸을 때부터 친구란다. 아이쿠. 저 위에서 말한 1번 경쟁자 유진 모건이 이제 원시(초기) 자동차 제작사 또는 공장주가 되기 바로 직전에 홀아비가 되어 외동딸 루시와 함께 도시로 돌아온 거였다.

  아직 경영자도 아니고 공장을 만들지도 않았으며 하다못해 사업자등록증도 내지 않은 유진 모건이 나이만 많다고, 엄마와 삼촌의 친구라는 것 때문에 위대한 앰버슨가의 앰버슨 소령의 유일한 손자 조지 앰버슨 미내퍼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일. 그러나 그의 딸 루시가 저리도 아름다우니 이걸 어쩔꼬?

  앰버슨 가문의 융성이 절정에 달했으니 이 순간 앰버슨가의 쇠망은 시작하는 거였다. 즉, 지금이 앰버슨 가문의 전성기라는 말이겠지. 어떻게 망가지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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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0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작가인데 저는 완전 첨 듣는 작가입니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니 이것도 구매해야 할 듯해요. 부커상이나 퓰리처상 수상작은 무조건 모아놓고 보거든요~
별4개이니 잘 하면 대어를 낚을 수도 있겠단 생각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