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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전상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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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름이다. 전상국. 소싯적에 좋아했던 작가이다.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외등> 같은 작품들. 재미난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소설 쓰는 사람들이 가슴 속에 맺힌 게 많다고 하는데 이 ‘맺힌 것’이 도가 지나쳐 “열등감”으로 진화해, 이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해 독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지금은 아니고, 오래 전에는 많았다고 한다. 남자의 경우에 ‘키’ 머리 꼭대기부터 발바닥 사이의 길이에 따라 열등감이 폭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간혹 이 길이 말고 다른 길이 문제로 열폭하는 인간도 꽤 있다.) 주로 키가 작은 사람들이 키 큰 것들에 대한 반발로 독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래서 나온 말이,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거. 소설판에서는 주로 최씨가 많았다. 최일남과 최인호 등. 근데 웃기게도 전상국도 이 키에 콤플렉스를 느껴 대학 시절에 연애도 별로 안 하고 소설만 죽자사자 썼던 모양인데, 이이의 경우에는 자신의 큰 키에 그렇게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전상국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전상국에게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술꾼한테 들은 거다. 그러니 정말이라고 내세우지는 않겠지만 웃기기는 좀 웃기다. 이이가 예전에 교육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 봤다. 키가 크긴 하다. 1940년생이니 지금 여든다섯, 그 시절 키로 생각하면. 우리집 꼰대는 전상국한테 막내 삼촌 뻘이어도 180cm이었건만 전혀 열등감 없이 살다 가시던데 말이지.
이 양반이 강원도 홍천 사람이다. 공부 잘해서 고등학교는 춘천으로 유학해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1차 대학 시험에 떨어져 2차로 경희대학 국문과를 다녔다. 짐작하건데 이이가 경희대를 간 이유가 모르긴 해도, 경희대학이 성균관대학보다 성동역에서 더 가까웠기 때문일 거 같다. 조금이라도 집에 더 빨리 가기 위하여. 성동역이 어딘지 모르시지? 당시 전차 종점이 있었고, 경춘선 열차가 출발했던 역으로 북악산 기슭 정릉에서 발원하는 ‘쎄느강’변의 제기동에 있었다. 달구지를 끌고 다니던 황소가 오줌누는 장면이 일품이었는데.
소설집 《굿》은, 작가 전상국 스스로 자신의 생애 마지막 소설집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중단편은 그의 나이 75세부터 82세까지의 작업이다. 말 그대로 노익장의 결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작가로 살면서 “전업작가”가 아니었던 것에 ‘열없음’을 가지고 살았던 듯하다. 사실 아무것도 아님에도. 마치 키가 큰 것에 열등감을 느껴 더 열심히 글을 쓴 것과 비슷하게, 마지막 소설집에 실릴 작품을 쓰면서 전업작가가 아닌 열없음을 지우려 글 쓰는 일에 더욱 미쳤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의 70대. 미칠 정도로 글을 써서 기어이 백조의 노래를 마지막 소설집으로 상재했구나 싶었다. 노장이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쓴 작품들인 줄 모르고, 거 참 노인네가 여전하네, 이런 심정으로 읽고 만 독자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도서관 신작 도서 전시대에 놓인 책을 보고, 작가가 전상국이라서, 예전에 발표했던 작품 가운데 몇 편을 묶어 책을 냈겠지, 제멋대로 생각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책. 이래봬도 내가 전상국은 좀 읽었거든, 하면서.
그렇다고 이이의 모든 작품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 세 편의 단편소설. <춘천 아리랑>, <봄봄하다>, <가을하다>는 각각 김유정의 <동백꽃>과 <봄봄>에, 저자의 스승이었던 황순원의 <소나기>에 헌정하는 작품으로, 각기 원작의 뒷이야기, 그러니까 후일담이다.
<동백꽃>과 <봄봄>의 여자 주인공은 우연히도 같다. 점순이. 근데 <동백꽃>의 점순이는 마름의 딸이라 절대로 소작인의 아들인 ‘나’한테 시집올 수 없어서 서울은 아니고 남양주의 그럴싸한 집으로 시집가고, <봄봄>의 점순이는 데릴사위하고 어떻게 될 듯한데 어떻게 된다는 것까지 얘기할 수 없어서, 나도 안타깝다. 단편소설에서 더 힌트를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터.
<소나기>에 헌정한 <가을하다>는? 입 닦겠다. 직접 읽어보시라고.
이 세 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원작이 셋 다 말 그대로 불후의 명작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쓰여진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불후의 명작인 것이지, 지금 시대에 다시 나올 필요도 없고, 이렇게까지 말하면 과하게 매정하겠지만, 나와서도 안 되는 거 아냐? 그런데 나왔다. 전상국이 지금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어서 그랬을까? 쓰는 김에 평소 존경했던 은사 황순원까지 슬쩍 끼워 넣어서?
게다가 <봄봄하다>와 <가을하다>에서 만든 단어 “봄봄하다”와 “가을하다”가 과하게 많이 나오는 느낌. “봄봄하다”와 “가을하다”의 어감이 정말 좋다. 그래서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런 고급의 단어는 진짜로 가끔, 아주 드물게 나와야지, 과하게 자주 쓰면 오히려 단어가 독자에게 선물하는 신선과 청량, 신비스러움이 천하게 보이고 느껴질 위험이 있다는 거다.
나머지 여섯 작품에 관해서 내 주제에 어떻더라,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도 뚫린 입이고, 달린 손이니 자판 좀 더 두드려보자.)
이이가 1940년생. 열 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그해 여름에서 가을까지 같은 마을 사람들이 바로 어제까지 한 두레에서 모내고, 피뽑고, 추수하던 사이에서 오늘 밤엔 서로 죽이고 죽는, 같은 하늘 이고 살 수 없는 원수 사이로 변하는 걸, 어린 시절에 두 눈으로 보았던 세대이다. 대개 이 시절에 겪은 일, 본 책, 들은 노래는 평생 간다. 딱 이때 전상국과 비슷한 연배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야수로 변할 수 있는지, 사람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 생으로 땅에 묻어 죽이고, 대나무로 꿰어 죽이는지 보고 만 것이었다. 이건 이들의 평생에 걸친 상처가 될 수밖에. 이 가운데 불행하게도 작가가 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상처를 드러내고, 덧나고, 다시 소독약을 바르며 세월을 죽였으리라.
젊은 시절 책 좀 읽을 때, 우리나라에 한국전쟁이 없었어도 소설가들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이야기거리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전은 벌써 30년, 4.19가 불과 20년 전. 근데 각 사건을 다룬 작품의 양과 질은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많았다. 그땐 몰랐지. 알아도 심각하게 알지는 않았던 거 같다. 혁명은 절대로 전쟁만큼은 참혹하지도 않고, 살육이 넘치지도 않고, 비극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이 시절을 견딘 작가들은 결코 내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팔자를 타고 났다.
전상국도 생애 마지막 소설집 《굿》에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상처는 여전하다. 다만 이제 상처를 극복하자는 의지가 눈에 띈다. 유일한 중편소설이자 표제작인 <굿>이 대표적이다. 강원도 산골 깡촌 부귀리에서 무려 67년만에 , 67년 전에 부귀리에서 동네 사람들이 쇠스랑으로 찔러 죽인 리 인민위원회 위원장 최용호가 돌아오면서 작품이 시작한다.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예수야? 아니다. 그때 그렇게 죽은 최용호의 아들 최준성이 언젠가는 부귀촌에 묻혀 있는 아버지 최용호의 유골을 파 좋은 자리에 정식으로 매장하고, 오랜 해원굿 한 판을 하기 위해 이름도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개명을 해버렸던 거였다. 그리하여 최용호의 아들 최용호가 돌아왔다.
해원解怨, 원통한 마음을 푼다고? 그렇다. 하지만 죽은 최용호가 그리도 원통하게 죽었나? 죽을 만큼의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최용호는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다른 건 다 건너뛰고, 백 살이 넘어 아직 살아 있는 장영팔의 아들을 인민군에 들여보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하고, 전쟁 터지기 바로 며칠 전에 휴가 나온 국방군 일등병 정대수를 잡아 당국에 넘겨 자작고개에서 재판 없이 살해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될 줄 몰랐다. 그저 포로로 잡혀 북으로 끌려갈 줄만 알았다.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던 시절. 죽은 최용호의 아들 최용호는 쇠스랑에 찔려 죽은 아버지와,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일러준 대로 야반도주한 조부모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최용호에 의하여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정대수의 유골까지 다 모아, 인근 주민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양지바른 곳에 다시 정식으로, 거창하게 매장함으로써 진정한 해원을 이루고자 한다. 아들 최용호가 굿의 주인이자 박수 무당이 되어.
내가 뭘 알겠는가마는, 작가의 연륜과 글을 써온 내력을 싹 무시하고 읽어봐도, 잘 쓴 중편이다. 한 거장이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 작품집이라고 선언한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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