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다
셔우드 앤더슨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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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 전에 앤더슨의 소설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참 괜찮게 읽었다. 지금 당시에 쓴 짧은 독후감을 읽어보니, 그때는 독후감 쓰는 습관이 이렇게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때라 짧게, 그저 메모를 넘어서는 정도밖에는 쓰지 않았는데, 소프트한 그로테스크, 소외되고 고독한 군상들, 단편소설 습작하는 분들의 필독서 운운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의 우화 같은 죽음에 관해서도.

  지금은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의 어떤 모습에 그렇게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거의 기억나는 게 없다. 그럼에도 누가 미국의 단편소설을 이야기하면 꼭 셔우드 앤더슨을 말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 읽은 필립 로스의 장편 <울분>에서 뉴욕에 사는 유대인 주인공 마커스가 대학을 오하이오에 있는 와인즈버그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인상깊었다니까? 아마 로스 선생도 하고 많은 동네 가운데 콕 집어서 와인즈버그를 선택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싶다. 어떤 엽기적 말썽을 부려도 소프트한 그로테스크로 덮어둘 수 있는 외딴 동네. 아닐까? 넘겨 짚은 것이긴 하지만 뭐 그런들 어떠랴.


  단편소설 열두 편을 실었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와 겹치는 작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확인하기 위하여 전작을 한 번 더 읽어볼 생각까지는 나지 않아서, 같은 작품을 제목만 바꿔 실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알아서 하시라. 3백 페이지 분량이지만 하루면 뚝딱 다 읽어버린다. 작은 판형에 큼직한 글씨체.

  셔우드 앤더슨이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라고 알고 있었다. 이 책 역시 미국의 중서부 지역을 무대로 하는 것들이 많고 가끔가다 시카고나 펜실베이니아 같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단편소설. 이이가 1876년에 태어나 1941년에 숟가락 놓았으니, 소설 속 이야기와 묘사 같은 스타일에서 새로운 걸 찾는 건 애초에 포기하고 읽는 편이 좋다. 좀 낡은 이야기 속에 <숲속의 죽음>처럼 소외당하는 이웃, <달걀>처럼 미국식 성공을 위하여 아등바등 삶을 이어가는 보통의 사람들, <슬픈 나팔수들>의 등장인물 같이 성인으로 탈각해가는 젊은이들을 차분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소프트하게 그로테스크한 시각으로 조망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처럼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후딱 읽어치우면 나중에는 좀 질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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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10-27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이 책 언제 샀는지 집에 있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ㅋㅋㅋㅋ

Falstaff 2025-10-28 03:57   좋아요 1 | URL
이 책 신간인데 ㅋㅋㅋ 언제 샀는지 모르신다니.... 무지 재밌지는 않고요 그냥 그런데 좀 재미있는 정도입니다. 벌써 오래 전 사람인지라서 말입지요.

꼬마요정 2025-10-29 14:08   좋아요 1 | URL
얼마 전에 책 살 때 같이 샀네요... 헐.... 장바구니에 마구 담아놓고 선택해서 결제하는데 그 때 같이 체크되었나봐요 ㅋㅋㅋㅋㅋ 아 놔.... 책 제목이랑 제 상황이 같아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