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세계 -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
에드워드 P. 존스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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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범띠 할배 에드워드 폴 존스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칸 미국인인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 슬하 2남1녀의 맏이였다. 소년시절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 글씨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엄마가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해가며 키워 맏아들 에드를 “워싱턴 D.C 출신의 가장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는데, 아쉽게도 막내 아들 조지프 V.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 P. 존스는 2004년에 퓰리처 상을, 2005년에 국제 더블린문학상을 받은 <알려진 세계>를 자신의 동생 조지프 V. 존스와, “더 나은 세상이었다면 훨씬 많은 일을 했을 어머니 저넷 S.M. 존스를 다시 한번 기리며” 헌정하기에 이른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존스의 딱 세 권의 책만 등록되어 있다. 두 권은 단편집이고 <알려진 세계>가 유일한 장편소설인데, 다른 상도 아니고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 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21세기 100대 저작 가운데 앞에서 네 번째 자리를 꿰찼으니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어땠겠는지 짐작하시겠지? 물론 21세기 100권 리스트를 볼 당시에는 존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것도 몰랐고, 이 책이 미국 남북전쟁 전 흑인 노예 이야기인지도 몰랐지만 하여간 기대만빵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기대가 크면? 그래, 실망도 큰 법. 아쉽게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의 본문이 511쪽에서 끝나는데, 511쪽이라 해도 그리 크지 않은 폰트와 빽빽한 편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저 오래전 알렉시 헤일리의 <뿌리>부터 시작한 흑인 노예와 탈출 이야기에 단련된 독자를 자극할만한 장면이 (거의)없는 순한 맛, 그러니까 독한 노예농장 감독과 농장주, 그들이 가하는 채찍질과 고문 같은 것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이 독후감을 업로드할 날이 극강의 무더위가 지배할 8월 8일 경이 될 걸로 보이는데, 읽다가 엉덩이에 뾰루지 생기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착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대하지 마시라니까 글쎄. 착한 작품이 재미있는 거 몇 번이나 보셨어?


  작품은 버지니아 주의 가상 군郡 맨체스터 카운티와 이에 속하는 지역의 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맨체스터 카운티는 훗날 버지니아 연방 역사상 다른 카운티들, 애머스트 카운티, 넬슨 카운티, 어밀리아 카운티, 해노버 카운티 등에 분할되어 먹혀 버려 사라지게 되며,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서류 역시 1912년의 대 화재로 인해 몽땅 불에 타버렸다고 했다. 이렇게 해 놓아야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허구를 쓸 수 있을 테니까.

  늘 그렇듯이 이 카운티에도 막강한 권력을 쥔 두 명의 부르주아가 있어 처음엔 사이 좋게 지내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척이 지는데, 서부영화에 자주 나오듯 서로 총질도 하고 그랬지만 몬태규와 캐플릿 가문처럼 늘 살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한 집안의 대장이 노예 113명을 소유한 맨체스터 최고 권력가이자 로빈스 농장의 주인 윌리엄 로빈스 씨.

  우리는, 아니, 나는, 그동안 소위 문학작품을 통해 보아온 노예 농장의 농장주들이 노예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로빈스 씨가 등장할 때부터 이 양반도 카운티의 주요 핵심 멤버들을 초빙해 점심 만찬을 즐기는 가운데 여흥으로 도망 노예를 피와 살이 튀게 채찍질하고, 반쯤 죽어나간 노예의 생식기를 잘라 입에 물린 다음,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장면을 농장의 모든 노예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게 하는 동시에 만장하신 백인 만찬 참석자의 소화효소 생산에 도움을 주리라고 짐작했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그간 읽고 배운 게 그런 거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러나 로빈스 씨는 이에 비하면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계급간 확실한 경계를 지키는 것은 당시 농장주들의 윤리에 입각하면 당연한 것. 노예를 자신의 재산으로 취급한 것도 당시 윤리와 부합한다. 그러나 잔혹한 면은 없다.

  노예 가운데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고 매워 목수와 목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아 오거스터스가 만든 책상, 의자, 장식장 같은 건 명품이라 해도 그리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온갖 동물과 저택을 조각한 지팡이 같은 소품 역시 한 번 본 이들이라면 구입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의 솜씨를 자랑했다. 로빈스 씨는 오거스터스로 하여금 가구와 목각품을 만들게 하고 그것을 팔아 자신은 마땅한 수수료만 챙기고 나머지 이익금을 전부 젊은 노예에게 주었다. 정확하게 수수료를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작품이 끝날 때까지 로빈스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마도) 수긍할 만하지 않았겠는가 싶다. 그리하여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는 겨우 스물두 살 때 노예 신분을 스스로 사들여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에 스물여섯 살인 아내 밀드레드의 몸값을 완불한다. 다만 이제 겨우 아홉살이 된 헨리의 신분을 사기 위하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헨리가 다양한 방면으로 로빈스 씨의 마음에 들었고, 아빠 오거스터스를 닮아 손재주가 있어 가죽을 두드려 신발 만드는 일은 근동에 비교할 상대가 없었다.

  로빈스 씨는 아내와 딸 하나만 두었다. 애설과의 혼인생활에 유별난 문제가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지만 세월이 갈수록 조금씩 멀어진 건 확실하다. 로빈스는 자신의 노예 가운데 딱 한 명의 여성 노예 필로메나와만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깊은 사이가 되자 그는 필로메나를 농장을 떠나 맨체스터 카운티 내의 집을 한 채 구입해 그곳에서 살게 하며 사이에 도라와 루이스를 낳았다. 오히려 필로메나가 로빈스 씨의 속을 썩이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는 묵묵히 견뎌내고, 후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할 때, 유색인종으로 구분해야 마땅한 딸 도라가 최후의 순간까지 병상을 지킨다.

  로빈스 씨가 맨체스터 필로메나의 집에 갈 때마다 사나흘씩 묵었다. 며칠 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새벽이었다. 하루를 줄이기 위해 밤에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날이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저택의 정문 앞 언덕배기에서 벌판을 바라보고 한 흑인 소년이 서서 그가 눈에 보이면 냅다 뛰어가 주인 나리, 돌아오셨습니까, 반갑게 반겨주는 게 헨리 타운센드였으니 특별히 마음에 들 수밖에. 그리하여 몇 년 후, 오거스터스 타운센드가 드디어 아들 헨리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인으로 만들자, 로빈스 씨는 헨리를 물심양면으로, 그러나 티 나지 않게 도와 그로 하여금 처음엔 작은 농장을 경영하게 하다가 훗날에는 30명의 노예와 50에이커의 제법 큰 농장의 주인이 되게 해준다. 자신의 땅을 싼 값에 넘겨주어서. 그리고, 헨리 타운센드로 하여금 해방노예가 아니라 노예의 주인으로서 처신하는 태도, 말, 행동 같은 것도 체득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헨리는 해방 노예이되 의식은 해방 노예라기보다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 노예들의 주인 나리에 더 가깝다.


  해방 노예가 자신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농장과 노예의 주인이 되는 일. 이것 때문에 아버지 오거스터스와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사이가 벌어진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오거스터스와 어머니 밀드레드는 목공과 목각으로 번 돈을 맨체스터 읍내 자신의 집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으로 만들고, 이 급행열차를 타고 북으로 갈 도망 노예를 지원하기 위해 썼던 거였다. 한 예도 나온다. 1843년, 부모와 따로 떨어져 살 때 아들 헨리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준 여자 노예 리타를 뉴욕에 보내는 지팡이와 함께 나무 박스에 포장해 우편으로 보내는 장면. 이때는 제대로 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장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러니 오거스터스는 아들 헨리가 노예를 구입했다는 걸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기가 공들여 깎은 눈부신 조각을 한 지팡이로 헨리의 어깨를 내리쳐 (아마도 쇄골이겠지) 뼈를 부러뜨렸고, 헨리는 지팡이를 빼앗아 두 동강을 내버렸다. 이후 둘은? 서로 안 봤다.

  이건 주state 별로 봐도 처지가 비슷하다. 커미티에 살며 수공업을 해 돈을 버는 아버지 오거스터스는 자기 말고 별다른 조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아들 헨리는 50에이커, 6만1,200평의 농장을 운영하기 위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주장한 북부 주가 오거스터스, 남부 주가 헨리와 비슷한 처지. 이들 사이에 한 판 다툼이 어쩌면 피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이라면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지만 당시에는 주먹 센 놈이 장땡이었으니까.

  존 스키핑턴이라는 이름의 맨체스터 카운티 보안관도 크게 선한 인간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백인으로 등장한다. 상대가 백인이거나 자유 흑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오직 연방과 주 법이 지정한 대로 평등하게 다루려고 하는 크리스천. 훗날 6촌 형제인 스키핑턴 변호사에게 횡액을 당하는데, 변호사도 천연두로 처자식이 몰살하는 바람에 성격이 확 비뚤어진 것처럼도 보이고, 원래가 그런 놈이었던 것도 같고 뭐 그렇다. 이렇게 부유한 백인 출신 가운데 진짜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여백을 메꾸는 악한은 농장의 관리자 역을 하는 충성스러웠던 노예, 체로키족 출신의 카운티 소속 노예 순찰대원, 그리고 이가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추악하고 늙은 노예 투기꾼. 순서대로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가난하고 늙은 백인.

  웃기지? 이 악당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악행을 벌이는 시기가 헨리 타운센드가 병으로 생을 마감한 다음이다. 분명하게 헨리 타운센드가 주인공이건만, 헨리는 작 초장에 숨이 넘어간다. 원래 자유민으로 태어난 헨리의 아내 캘도니아가 스물여덟 살에 과부가 되고, 악당들에 의하여 이러저러한 사건이 벌어진 후에 윌리엄 로빈스 씨의 피부색 다른 친아들 루이스가 과부에게 청혼해 혼인을 하기까지, 에드워드 P. 존스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꾸려나가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립자면, 8할은 지겨운 느낌, 2할은 처음 읽은 노예 시절의 차분한 이야기를 들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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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제도든 100%나쁜놈만 있는건 아니니까 이런 소설도 있는거겠지요. 한편으로는 또 백인들의 면죄부용인가하는 삐딱한 시선도 가져봅니다. ㅎㅎ 하여튼 제가 딱히 순수하지 못해서 말이죠. 약간 노예제 시절의 스토너 느낌도 나구요.ㅎㅎ

Falstaff 2025-08-09 05:53   좋아요 1 | URL
그럼요. 뭐든 다 좋을 수 있겠습니까. ㅎㅎㅎ 그냥 그렇게 사는 거죠.
삐딱한 시선이 세상을 발전시키니까요, 바람돌이 님은 건강하신 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