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1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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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체호프하고 별로 친하지 않았다.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10년 전에 읽었는데 여기에 필이 꽂히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의 대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희곡은 아주 오래전에 읽은 <세 자매>말고 한 편도 더 추가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렇다. 이번에 읽은 《사랑에 대하여》 역시 도서관 개가실을 어슬렁거리다가 신간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 단순하게 그냥 집어 든 거였다. 아무 생각 없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색∙계>하고 이 책 두 권이 있길래 <색∙계> 장아이링? 장애령 여사보다는 체호프를 딱 한 번만 더 읽어보자, 이번에도 마음에 안 들면 끝이다 싶어 골랐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다. 만일 이 작품집 제일 뒤에 실린 단편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인 걸 알았으면 이 책을 골랐을까? 나도 모르겠다.

  체호프는 남서부 러시아 로스토프 주, 아조프해 타간로프 만에 접한 도시 타간로프에서 태어나 살다가, 아버지의 식료품점 사업이 폭삭 망해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안톤만 타간로흐에 남아 기어이 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해고 1882년, 약관 스물두 살에 의사 개업하면서 이후 5년 동안 주간지에 3백 편의 소품을 발표한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체호프가 이 소품들이었던 거다. 네다섯 페이지, 더 짧은 건 세 페이지 분량밖에 되지 않는 소품들. 소위 ‘손바닥 소설’이라 하는데 지극히 짧은 소품들을 읽고 한 작가를 찬양할 수 없었을 터이다.


  이 책 《사랑에 대하여》는 의과대학에 다니던 당년 스무 살 시절 1880년에 쓴 소품부터 1899년의 ‘단편소설’까지 실려 있는데, 앞부분 소품들을 읽으면서 어김없이, 이젠 안톤 체호프하고는 영 아디오스, 마음을 먹었다가, 1892년 이후의 단편소설을 보면서 점점 눈알이 커졌다. 아, 이래서 체호프, 체호프 하는군.

  체호프 신상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1880년대 후반에 체호프 인생 두번째 객혈을 하는 등 심신이 미약해졌지만 그래도 정신 차려 더 나은 작가가 되기 위해 저 극동의 사할린으로 출발, 2년간 살다가 1892년에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이후에야 (아마도) 체호프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은 아닌지.

  실제로 이 책은 열아홉 편의 소품과 단편이 작품을 쓴 순서대로 실려 있는데, 1887년과 1892년 사이 4년 동안이 진공으로 있다. 1892년 이후 <유형지에서>부터 작품은 제대로 단편소설의 외형을 갖추었으며 역자 이항재의 말대로 “삶과 현실에 대한 심오한 관찰과 사색이 반영된 단편”을 발표한다. 물론 역자의 해설은 목적상 조금 주례사 성향이 있겠지만 이전 소품들과 견주다면 확실하게 그렇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이 책이 두 번째 체호프 단편집인데, 두 책 다 1880~90년대 작품을 아우르고 있다. 차라리 전기작품집과 후기작품집으로 구분해서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그러면 나는 당연히 후기작품집만 사 읽겠지만.


  이제 체호프 단편의 재미를 알기 시작해 만시지탄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의 나라에 산다는 자부심이 빵빵한 내 눈에는 체호프의 단편이 좋기는 좋지만 19세기 말 작품으로 스타일의 한계가 있거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도 억지로 스타일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뭐 내 마음이니까.

  물론 앞으로는 체호프의 책이 눈에 보이면 일단 읽어볼 예정이다. 손절에서 급반전, 이제 눈에 띄면 읽겠다는 수준까지 왔는데 여기서 더 올라가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말이지. 아울러 그의 희곡들도 찾아봐야겠다. 괜히 안 읽고 버텼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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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5-2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전 체호프 우리나라 번역본은 다 갖고 있어요.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체호프 단편집들은 제목과 표지만 달랐지 대동소이 해요. 10작품이 있으면 읽었던 게 반 이상..뭐 그렇다구요. 희곡보단 전 단편이 훨 좋더라구요.^^

Falstaff 2025-05-27 16:21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
워낙 작은 작품을 많이 쓴 양반이라... 사실 저도 말은 본문처럼 했는데 희곡 말고는 또 읽을지 장담하기 쉽지 않네요.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