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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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쿳시는 읽으면서 하여간 뭔가 좀 불편했다.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쓰는 사람이건만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하여간 뭔가 불편한지 거 참. 이게 나름대로 쿳시의 매력이고 한 번 쿳시를 좋아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일지 몰라도, 에잇, 나는 그게 불편했다는 말씀. 특히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장교가 어린 여자 아이의 눈동자, 홍채 가까이 뜨겁게 달군 쇠붙이를 가져가서 시력을 거의 상실하게 만드는 장면을 읽은 다음부터 꽤 오래 쿳시 작품을 멀리 하기까지 했다. 세상에 이런 종간나가 또 있을까 싶더라고. 근데 그의 자전적 소설 <서머타임>을 읽고 겨우 반년만에 또 쿳시를 골랐다. 이건 전적으로 도서관 신간 코너 올려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 좀 읽는 사람은 전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책, 이른바 쌔삥인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랬다. 그래서 얼씨구나, 얼른 집어 들었더니, 편집도 참 널럴해 본문이 223 페이지까지인 것을 단숨에 읽어 치울 수 있었다.
제목의 폴란드인이 누구냐 하면, 이름 비톨트 발치키예비치. 1943년생. 당시 72세. 작품은 이이가 죽어야 끝난다. 쇼팽 전문 연주자로 알려진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낭만적이지 않고 엄숙한 쇼팽으로 해석한다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악보대로 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쇼팽은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해석으로 교차 연주되었는데, 심지어 한 때는 피아노를 타악기로 규정해 (사실 햄머로 현을 때리는 타악기가 맞기는 맞잖아!) 강하고 힘차게, 마치 프로코피예프를 연주하는 것처럼 두드려 패던 시대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자들 가운데 아마도, 쇤네가 틀림없이 말씀드리는데, 아.마.도. 가장 인기가 없는 쇼팽이 이 비톨트 발치키예비치 스타일일 듯하다. 앗, 그러고 보니 프레데릭 쇼팽도 폴란드인이다. 그럼 뭔가 만들어지겠지?
쿳시가 서양 고전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건 알겠다. <서머타임>에서도 한 유부녀의 부부 침대 속에서 홀랑 벗고 줄리아 몸 위에 올라가더니 슈베르트의 현악오중주 D.956 2악장을 틀어놓고, 줄리아, 아다지오 속에서 섹스를 느껴봐, 이랬다는 거 아닌가 말이지. 말이 좋아 고전음악에 일가견이다. 솔직히 말해 이쯤이면 변태 아냐?
변태 쿳시가 <폴란드인>에서 피아니스트를 호출한 것은 그래도 일견 타당하다. 차차 이야기하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부르주아 유한계급들이 서클, 동아리를 구성해 고딕 지구地區에 있는 연주홀 살라 몸푸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열었다. 게다가 부르주아들의 가오가 있어서 그래도 세계 음악계에 이름이 난 연주자를 초빙해 당연히 입장료가 어마어마, 없는 사람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었다고. 이 동아리 이사회 임원으로 1967년생, 사십대 후반의 베아트리스 여사가 있었으니 한 눈에 보이는 걸로 설명하자면 키가 크고 우아하지만 일반적 척도로 미녀는 아닌 한 남자의 아내요, 두 아들의 엄마이며, 몇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였다. 이사회에서 비톨트를 초청했고, 연주회를 했으며, 뒤풀이는 원래 베아트리스의 친구인 마가리타 부부 전담이었는데 이 부부가 싸웠는지 어땠는지 몸이 아파서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호소를 하는 바람에 여사가 대신 (나이 많은 레진스키 부부와 동행해) 비톨트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호텔(당연히 로비)까지 동행하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독자는 슬그머니 눈치챈다. 나이 차이가 좀 있다. 1943년생과 67년생, 두 바퀴 돌아 띠동갑. 그럼에도 남녀가 만났으니 불꽃이 튀겠지? 튄다. 다만 예술을 하고, 예술을 업으로 하며, 예술에 목을 매는 비톨트가 일방적으로. 그는 책의 상당부분 진행될 때까지 끊임없이 넘어가지 않는 나무를 찍어댄다. 베아트리스 여사는 혼인 후에 한 번도 남편 외의 다른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제공한 적이 없는 정숙한 여성. 눈치로 보아 남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며, 아내가 만일 바람을 피운다 해도 질투가 나서 속은 많이 상하겠지만 이제 와서 그것 가지고 죽네 사네 따따부따 하지 않고 아내의 사생활을 존중은 못하더라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의향이 있다. 독자가 보기에 의향이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아직 50도 되지 않아 남편의 아랫도리 사정과 별개로 거의 섹스리스 부부로 지내고 당연하게 각방을 사용한다. 그게 편하거든. 특히 수면의 질 측면에서 훨씬 바람직하다.
다음 문제는 작품의 첫 문장에 힌트가 있다.
“여자가 먼저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이어서 곧 남자가 그렇게 한다.”
딱 이 한 문장에서 “그”는 작가이자 화자인 J.M. 쿳시 본인이다. 이후에 나오는 ‘그’는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이며, 대부분은 비톨트 발치키예비치이다.
뭐가 문제인가 하면, 여자, 즉 베아트리스는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바르셀로나 사람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비톨트는 유럽의 변방, 변방 가운데 변방이며 말 그대로 시골 촌구석 취급을 당하는 폴란드 사람으로 당연히 폴란드어와 문자를 사용해 언어생활과 시를 짓는다. 외국어로 영어를 하지만 능숙하지는 않아서 단어 간의 미묘한 차이를 혼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반면에 J.M. 쿳시는 아프리카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로 이 둘 간의 커뮤니케이션 사이에 끼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뜻이다. 쿳시는 평소에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져 이 <폴란드인>도 지역적 배경인 스페인에서 먼저 번역 출판한 다음에 영어판을 냈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런 작가를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참 배가 불렀다. 여봐 쿳시 선생, 힘주지 마, 터진다.
이리하여 베아트리스와 비톨트의 대화 또는 의사소통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뜰하게 삐걱거린다. 베아트리스 역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비톨트의 영어를 수정해주고, (normal과 ordinary 같은)단어의 뉘앙스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훗날 비톨트의 시 80여 편을 받아 이를 다시 카탈루냐어로 해석하느라 곤욕을 겪기도 한다. 비톨트는 자신의 구원의 여신, 단테한테 베아트리체가 있었듯이 자기한테 나타난 베아트리스에게 감정을 전하기 위하여 편지 대신 오직 단 한 명인 베아트리스를 위해 연주한 녹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문제는 베아트리스가 자기 하나 만을 위한 연주를 듣고 비톨트 이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다는 거.
정말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책 속에 나오냐고? 적어도 인용은 한다. 그러나 인용하는 횟수는 덜할지 몰라도 정말 중요한 비유는 폴란드인 프레데릭 쇼팽과 조르주 상드. 1838년 둘은 쇼팽의 건강이 나빠지자 사철 날씨가 온화하고 맑은 스페인 동쪽 발레아레스 제도의 마요르카 섬으로 가 1년을 보낸다. 작품 속에서 비톨트는 마요르카 섬의 쇼예르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이 소식을 전하니 베아트리스는 마음에 별로 없는 것 같음에도 남편과 함께 마요르카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남편은 업무 일정 때문에 일주일 후에 돌아가고, 가자마자 비톨트가 별장에 와, 한 지붕 아래 함께 묵는 건 아니고 별채 건물에서 따로 생활하는데, 결론만, 아니면 당신이 궁금한 것만 말씀드리자면, 결국에, 했다.
이때 비톨트 나이가 아마 74세쯤 됐을 걸? 베아트리스는 50 정도. 베아트리스는 내가 모르겠고, 비톨트 선생은, 나 참. 사랑하는 여자 앞에 초라하고 늙은 몸을 드러내는 수치심을 견디면서까지 해야겠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 같으면 애초에 이런 가능성도 만들지 않았을 거 같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하여간 비톨트 선생은 베아트리스와 했고, 해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날 며칠을 했는데, 이제는 발기 유지에 당연히 문제가 있어서(잠깐이라도 딴 생각해도 그냥 죽고 말 걸?) 할 때마다 베아트리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며, 이 관계를 지속하다가는 나중에 큰일나겠다고 판단한 베아트리스는 그에게 이만 가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이렇게 작품도, 둘의 인생도 끝나는 건 아니다. 세월은 계속 흐르고, 영어의 세계정복은 여전히 현재진행이고, 비톨트는 단지 속 하얀 뼛가루로 남기 바로 전까지 죽도록 베아트리스를 사랑하는 반면, 베아트리스는 머리 속에서 비톨트를 지워버린 거 같은데도 여전히 저 속에 명주실만큼 가느다랗고 질긴 끈이 있었으며, 이들 사이에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의사소통이 안개처럼 막membrane을 이루고 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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