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3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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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 가운데 세번째 작품. 나만 그런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대개 1부 <가울>을 읽은 독자들이 경끼(‘경기’가 맞는 말인 건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기’ 보다는 ‘경끼’라고 쓰는 게 여러모로 의사전달이 잘 된다. 그리하여 ‘경끼’)를 해서 이이의 계절 4부작 연달아 읽기를 사부작(의태어) 즈려밟고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나도 <가을> 읽고 경끼했다. ‘경끼’에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뭐가 있다? 맞아, 이 다음엔 토사곽란이다. 경끼는 어떻게 하고 넘어갔다 쳐도 토사곽란까지는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럼에도 언젠가는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다시 읽게 될 줄은 짐작했지만서도, 쉽게 <겨울>을 뽑아 들지 아니하게 되어, 세월만 4년 가까이 흘려보냈던 거였다. 그래 <겨울>을 읽어보니까 어라, 생각보다 수월하고 재미있고, 앨리 스미스 특유의 말장난이 재치 만땅이어서 곧바로 <봄>까지 읽었다. 그래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앨리 스미스 초기 작품들보다는 아무래도 재미가 좀 덜하긴 하다.

  이렇게 쓰고 여태 쓴 걸 다시 읽어보니, 염병이나, 이걸 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헛갈려서 좀 더 알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개인이자 자연인으로 인간의 뇌활동이 야기하는 특정인의 일탈에 관한 (초기 작품 속)이야기가, 계절 4부작처럼 전 세계적 정치, 환경, 위험과 위협, 난민문제 같은 거대 담론보다 훨씬 내 흥미를 돋구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이라는 것이 한 번 길을 정하고 나면 다시 옛길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으니 앨리 스미스는 이제 더욱 본격적으로 소설 속에 다양한 정치를 탐색할 것 같다. 흠. 앞으로 이이의 작품을 선택할 때는 더 조심해야겠군.


  대개 예술 장르에서 “봄”이라는 건 희망과 생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근데 이 스미스의 <봄>은 종이에 인쇄해 놓기도 끔찍한 차별과 독선과 악의적인 혐오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 번 읽어보자.

  “이제 우리는 사실 따위는 원치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어리둥절함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반복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반복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권력을 쥔 자들이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그녀는 배에 뜨거운 칼이 꽂혀 비틀릴 것이라고, 또는 당신 목을 매달 밧줄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원의원들이 반대 당 위원들에게 자살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다른 권력자들을 가리켜 토막을 쳐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이게 작품의 첫 페이지인 13쪽 전문이다. 이런 문장들이 문단을 바꾸지도 않으면서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고문 같은 이미지들을 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접근해야 하고, 우리가 접근해 백인 아닌 누구에게든 린치라는 걸 행사할 수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연중무휴로 흑인/여성 국회의원, 아니 공적 위치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어떤 일이든 하는 모든 여성, 아니 공적 위치에서 우리 맘에 들지 않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강간 위협과 살해 위협을 하길 원한다.”

  아오, 나는 이 첫 챕터에 정나미가 똑 떨어져버렸다. 근데 앨리 스미스가 이 책 <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정치현상이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이나 독재와 학정 지역에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영국으로 흘러든 난민의 정당하지 않은 강제 수용이라, 물론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이지만 이렇게 미리 말해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격노를 원한다. 분개를 원한다. 가장 격앙된 어휘를 원한다. 반유대주의자는 좋고 나치는 훌륭하며 소아 성애증 환자라면 정말로 최고다. 변태 외국인 불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본능적인 반응을 원한다. 우리는 어린이이주자 연령 검사, 국민 98퍼센트가 추방 요구, 이주 행렬을 막기 위한 무장 항공기, 얼마나 더 수용해야 한단 말인가, 빗장을 닫아 걸고 아내를 감추어라를 원한다.”


  이 문제와 연관된 등장인물이 브리터니 홀, 브릿과 교복 차림의 열두 살짜리 이주 유색인 소녀 플로렌스. 브릿은 <겨울>에서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소개한 바 있는 SA4A, <봄>에서는 HO, 즉 내무부 대행으로 여러 곳에서 산하 IRC(이민자 추방 센터)를 운영하는 SA4A 산하 가운데 한 곳, 런던 근교 소재 IRC에서 DCO(수감자 유치 관리관)으로 근무하는 젊은 여성이다. 플로렌스는 엄마하고 영국까지 도착했지만 엄마(가물가물. 밀항 중 익사?)를 포함한 가족, 친지, 친구 등 모든 사생활을 알리지 않은 밀입국자로 현재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다. 나이가 들어 열여덟 살이 되면 영국인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얻든지 어느 곳이 됐든지 간에 추방 처분을 당해야 하는데, 적어도 이 책에서 열두 살의 플로렌스가 모든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을 가지고 노는 걸 보면 그야말로 대천사나 악마가 환생한 걸 보는 듯하다. 플로렌스를 만나 대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꼬마 아가씨가 원하는 대로 친절과 편의와, 서비스를 무.료.로, 자.진.해.서 베풀어주며, 소녀가 원하는 대로 행위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심지어 브릿이 근무하는 SA4A의 IRC에 철저한 보안을 뚫고 들어와서 소장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질문과 관계없는 대답만 얻었을 뿐이면서도 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수용자들이 사용하는 더럽기 짝이 없는 화장실을 말끔하게, 혀로 핥아도 위생상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깨끗이 청소를 하기에 이를 정도. 이 정도면 대천사나 악마의 환생 맞지?

  이 플로렌스가 오후 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는 브릿 앞에 나타나 몇 가지 질문을 해서, 브릿은 휴대전화로 직장에 휴가처리를 한 후 함께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괴물 파충류가 산다는 네스 호수를 목표로 떠난다.

  그리고 북쪽의 한적한 플랫폼. 한 노인을 만난다.


  2018년 10월, 화요일 아침 11시 9분. 텔레비전 연출가 겸 영화감독 리처드 리스. 스코틀랜드 북부 어딘가의 기차역 플랫폼. 한 친구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자신을 지우려 하는 중이다. 그냥 서 있는 남자. 이쪽은 물론이고 반대편 플랫폼에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리처드 말고는. 열차는 자잘한 사고가 있어 연착 중이다. 그의 휴대전화는 커피가 반쯤 남은 뚜껑 닫힌 커피 텀블러에 담겨 런던 유스턴 로드의 프레타망제 식당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든지, 벌써 쓰레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죽은 친구의 이름은 패디. 리처드보다 열일곱 살이 많은 퍼트리샤 힐. 리처드가 처음 일자리를 얻은 것이 조감독의 조수였다. 이때 한 영화작업이 패디의 대본 작품이었다고. 벌써 거의 50년 전. 여태 패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초콜릿 한 조각에 난 잇자국의 흑백 이미지가 떠오른다. 비어트릭스 포터의 잇자국. 한 입 베어물고 내려 놓고는 헛간에 남겨 놓은 초코릿을 잊어버린 비어트릭스. 2차 세계대전 전에 생산된 초콜릿바에 남은 잇자국은 잇자국을 남긴 그녀보다 오래, 그녀가 죽은 천구백 몇 년 이후로도 수십년을 더 살아남았다. 리처드가 보기에 패디의 기억은 천재급이다. 리처드와 함께 열일곱 편의 영화 작업을 했으며 이 가운데 대표작으로 <고통의 바다>와 <앤디 호프눙>이 가장 유명하다. <앤디 호프눙>은 베토벤의 성악곡 “An die Hoffnung 희망에 부쳐”를 사람 이름인 줄 알아 An die가 Andy로 바뀐 일이다. 반은 영국인, 반은 독일인이라 양쪽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야 했던 활촉처럼 예리한 여자. 진정한 희망이란 사실 희망의 부재란 것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An die Hoffnung> 대본을 4주만에,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는 창의력이 풍부한 작품을 4주만에 써내려간 사람. 필생의 친구이자 단 한 번 연인이었던 동료.

  리처드는 그래서 무너졌다.

  스코틀랜드 북쪽, 자기도 어딘인지 모르는 시골역의 플랫홈에 서서, 이제 연착이 풀려 객차가 도착하면 슬쩍 객차 아래로 들어가 거대한 무게에 몸이 깔려 산산이 부서지기로 결심을 한 남자,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의 유명한 스타 텔레비전 연출자이자 영화 감독 리처드 리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다. 리처드는 영국법에 의하여 강력하게 금지된 행위, 철도 레일로 내려가 몸을 굽혀 생각보다 좁은 열차 하부에 몸을 뉜다. 조금만 참으면 되리라. 거대해도 너무나 거대한 무게가 아주 짧은 순간의 고통,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고통의 순간을 지나면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리처드. 바로 이 순간.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섬찟함. 얼른 고개를 돌리는 찰라 열차의 강철 부품에 이마가 부딪혔지만 순식간에 솟구친 아드레날린 때문에 아픈 지도 모르고 눈길을 돌리니 아주, 아주 천연스러운 얼굴로 플랫폼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은 소녀가 말한다.

  “정말이지 그러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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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4-28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녀가 플로렌스, 북쪽의 한 노인이 리처드???인거죠?
저도 가을에 강력하게 막혀 안 나가기로 했네요^^

Falstaff 2025-04-28 16:38   좋아요 0 | URL
옙, 맞습니다. 이런 댓글 나오기 기다렸는데 은하수 님께서 ㅎㅎㅎ
두 명이 만나는 것이 결론이 아니고요, 이래서 한 고비 넘어간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몽땅 모른 척 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