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본희곡집 10 현대일본희곡집 10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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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현대희곡은 그나마 자주 읽는 편인데 반해, 일본의 현대 희곡은 별로 기회가 없었다. 사카테 요지와 며칠 전에 읽은 마쓰다 마사타카가 언뜻 생각난다. 아주 약간 명의 작품을 더 읽었을 듯한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거나 동아시아에서 현대 문학 장르를 제일 먼저 도입하고 당시 조선과 중국으로 전파한 문화적 선진국 일본의 작품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다. 책을 기다리는 중에 읽은 마쓰다 마사타카의 <바다와 양산>은 일주일 전에 독후감을 썼듯이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일본의 희곡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오래전에 베세토BeSeTo에 대해 들은 적 있다.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짓고 동아시아의 연극인끼리 의기투합해 교류를 모색하고 함께 발전하자는 취지의 단체를 이루었다고. 좋은 아이디어다.

  이 단체와 별개로, 혹은 일환으로 2002년에 한일연극교류협의회를 결성해서 도쿄에서는 한국현대희곡 낭독공연을 하고, 서울에서도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한 후에 희곡집을 냈다. 한국측 교류협회 회장 심재찬은 2022년에 현대일본희곡집 10편을 내면서, 2년에 한 번씩 일본 희곡 다섯 편을 실은 희곡집을 모두 다섯 번 출간하겠다고 했는데, 벌써 열 번째 책이 나와 기쁘다고 말한다.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건전한 교류가 이어지기 바란다.


  이 책에도 다섯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모리모토 가오루 (1912~46), <여자의 일생>

  야마우치 겐지 (1958~  ), <안경부부의 이스탄불 여행기>

  이시하라 넨 (1972~  ), <하얀 꽃을 숨기다>

  다니 겐이치 (1982~  ), <1986: 뫼비우스의 띠>

  요코야마 다쿠야 (1977~  ),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극작가들의 생몰연대가 다양한 편은 아니다. 일본 문예의 시기별 특징에 대하여 알지 못해서 이렇게 배치한 이유 또한 짐작하지 못하지만 70~80년대생 극작가들의 작품에 셋이나 실린 것이 눈에 확 들어오고, 같은 이유로 1910년대생 모리모토 또한 색다르다. 20, 30, 40, 60년대생은 무슨 이유로 빠졌을까? 이유가 있겠지. 특별히 그 시기에 극작의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닐 터이니. 기회가 있으면 일본 희곡을 더 읽으면서 차차 알아가면 될 터이다. 근데 도서관에서도 일본 희곡집은 찾기가 참 힘든다.


  모리모토 가오루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서양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책 속의 작가 소개를 보면 서머싯 몸과 노엘 카워드, 손톤 와일더 등이 대표적이란다. 이 가운데서도 비록 퓰리처 상을 받았을지언정 지금 시각으로 보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와일더의 <우리 읍내>도 끼어 있다. 세월이 그런 것이지. 한 시절 각광을 받던 것이 이제는 한물간 것처럼 구석에 찌그러져야 하는 거.

  <여자의 일생> “초고는 태평양 전쟁 말기 전쟁 의식의 고취와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선전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인 일본문학보국회(日本文學報國會)의 위촉작이었다.” 그러니까 전쟁은 망해가지만 그럴수록 일본의 군부와 사회는 국민들에게 더욱 참전의 의지를 불사르고 심지어 옥쇄까지 요구하기 시작할 찰나인 1943년 말경에 의뢰를 받아 1945년 패전 바로 전에 공연을 했다. 당시 모리모토의 나이 34세. 근데 징집당하지 않고 희곡을 썼다고? 그렇다. 폐결핵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품의 초고는 출판되지 않고 자필 대본만 남아 있어 훗날 간행되었고, 패전 다음 해인 1946년에 모리모토가 작품을 대폭 수정해 패전 이후의 일본 현실도 작품에 담았다. 이때 미군정의 검열을 걱정해 출판사에서 또 한 번의 삭제가 이루어졌는데, 연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드라마투르그나 연출자에 의하여 대본이 수정되어, 이 책 속의 <여자의 일생>은 1946년 개정판의 번역이다.

  1막 1장은 1945년 10월. 불타버린 도쿄의 자기 집터 앞에서 망연하게 앉아 있는 주인공 케이 앞에 쓰쓰미 에이지가 나타난다. 둘은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세월도 세월이려니와 패전 속의 필연적인 굶주림과 누추함까지 더해 기억 속의 모습을 되살릴 수 없는 거였다. 케이는 이 자리가 자기네 집이 있던 터이며, 지금 움 같은 몸 뉘일 곳을 만들어 어떻게 해서든지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다. 이제 늙어 자신을 해꼬지하거나 훔쳐갈 것도 없는 몸이니 그거 하나는 편하게 마음먹어도 되는 신세. 에이지는 전쟁이 끝나고 갈 곳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그나마 식량이 있는 지방으로 가는 대신, 혹은 가기 전에 예전에 살던 쓰쓰미 가문의 집터를 한 번 둘러보고 갈 셈쳐서 와본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서로 가까이 다가가더니, 놀라서 숨이 거의 멎을 듯이, “당신… 에이지 씨?” 하는 순간 무대는 빠르게 암전된다.

  1막 2장은 1905년. 1장과 같은 쓰쓰미 일가의 집. 1905년은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눈부신 승전을 올린 군국주의 일본의 전성기였다. 이때 둘째 아들 에이지가 열아홉 살. 고모네 집에서 거의 쫓겨난 케이가 쓰쓰미 집 마당에서 땅에 떨어진 빗을 주워 가지고 있다가 도둑으로 몰린 일이 있다. 가족들이 물어보니 케이의 어머니도 죽었고, 아버지는 청일전쟁에 나가 전사해서 고모네 집에 얹혀 살고 있던 거다. 군국주의 일본의 국민들은 전사한 아버지를 가진 자녀를 돌볼 줄 알아 케이는 이후 쓰쓰미 집안에 살게 되고, 청일전쟁이 동학농민전쟁 이후, 갑오경장 직전 일이니까 1894년, 이때 케이는 열댓 살 정도 되었는데, 이후 쓰쓰미 가족의 일원이 되어 당당하게 쓰쓰미 상점의 운영을 거의 전담하는 위치로 격상한다. 당연히 아들 가운데 한 명의 아내 신분으로.

  이런 이야기다. 그러면서 패전에 따른 책임 같은 것도 케이를 통해 발언하는 등 미군정의 입맛도 적당하게 맞추어 주지만 그렇다고 정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진심의 한 자락은 깔고 있는 듯한 느낌.


  유일한 여성 극작가인 이시하라 넨의 <하얀 꽃을 숨기다>도 주목할 만하다. 아니, 이런 표현 가지고는 부족하고, 희곡을 즐기거나 즐기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NHK를 빗댄 것이 틀림없는 MHK 방송국의 의뢰로 다큐멘터리 외주업체는 일본의 전쟁책임을 재판하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이 전세계에서 모여, 일본 정부와 천황을 ‘반인도적 범죄’로 심판”하는 여성들의 민중법정을 취재하기로 한다. 총 4부작 가운데 회사가 맡은 부분은 2화 여성국제전범법정, 3화 국제공청회의 소개와 전시 성폭력에 대한 생각이다. 이 이슈는 2001년 1월 30일에 실제로 NHK에서 방송한 특집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재판하는가”에 관련한 일련의 소동이라고 각주에 설명이 나와 있다.

  결론은 버킹검. 결국 이들이 취재하고 편집한 여성국제전범법정과 전시성폭력은 무수하게 가위질을 당해 자신들이 찍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은 거의 나오지 않고, 보나 안 보나 마찬가지 수준의 처참한 다큐멘터리만 나온다는 것인데, 여기까지는 우리도 알고 양심적 일본인들도 아는 것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말하면 이것도 성차별인지 모르겠는데, 여성만 표현할 수 있거나,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성보다 훨씬 더 호소력 있고 함축성 있게 포착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을 기가 막히게 드러낸다. 숱한 사람들이, 아동들이 당하고 있는 일종의 가스라이팅.

  아짱, 아짱,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하지?

  사랑이라는 이름의 강요. 이 대사를 읽는 순간, 오조족 돋는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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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18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필립 로스, <샤일록 작전>
수요일. 페터 플람, <나?>
금요일. 거페이, <산하는 잠들고>

그레이스 2025-04-18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스라이팅!
폴스타프님은 정말 많은 희곡을 읽으시네요.
그리스 비극 읽으면서 그제야 좀 희곡에 적응한듯해요.

Falstaff 2025-04-18 21:33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희곡을 읽지 말고 연극을 보자고 그랬었는데 이젠 희곡 읽으면서 무대를 상상하는 게 재미도 있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