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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마리 말 그림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94
선충원 지음, 강경이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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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충원(沈從文)은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루쉰에 필적할 만한 평가와 추앙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 아버지와 토가족 어머니 사이의 8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가 저 술맛 좋은 구이저우, 귀주貴州성에서 총사령관 대리를 지낸 장군 영웅 출신이라 모자란 것이 없이 살았다. 근데 중국 근현대사에서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곱게 산 사람은 1명도 없어서 선충원도 마찬가지였으니, 아버지 선종시沈宗子가 겁도 없이 당대의 권력자 위안스카이 암살 모의를 한 것이 발각 나는 바람에 남쪽 후난성에서 저 북쪽의 내몽골로 도망하는 동안 집안꼴이 거의 거덜이 났던 듯하다. 영웅의 집안이라 신교육을 받지 않아도 집안에서 전통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마땅하지 않았던 듯, 1915년 열세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열다섯 살이던 1917년에 졸업을 했다. 남들 중학교 졸업할 나이지만. 이후 군에 입대해서 5년간 복무를 하고 돌아와 대학 입학시험을 치루었으나 미역국을 먹었고,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베이징대학에서 청강하며 습작시대 시작, 24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이때 어울린 사람들 가운데 딩링, 후예핀 부부. 부부와 함께 상하이로 옮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잡지도 냈고, 당시 거의 대부분의 문학잡지가 그랬듯이 얼마 가지 못해 문 닫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1949년에, 그동안 공산당에 의하여 일종의 반동분자로 찍혀 베이징대학의 대자보 비슷한 매체로부터 수시로 공격을 받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죽기위한 마지막 건배로 등유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면도날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게 말이 쉽지 진짜로 죽기도 어려운 법이라 맥박은 여전히 뛰었으며 배 속의 애먼 기생충들만 죽어서 몸을 빠져나왔다. 이후 창작활동도 당연히 이어갈 수 없었다는데, 당연히 각급학교에서 교사, 교수 생활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 교육과정으로는 초등학교만 다닌 선충원이 1946년부터 49년까지 중국 최고의 명문이자 자신이 청강을 했던 베이징대학에서 교수를 지냈으니 당대의 인재였던 건 사실처럼 보인다.
하여간 49년 자살미수 이후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처럼 재교육을 받았음에도 1966년부터 저질러진 문화혁명 시기를 무사하게 넘길 수는 없었다. 이른바 지식분자, 반동적학문권위자로 찍혀 60대 중반의 늙은이가 여지없이 조리돌림을 당하는 수치를 견뎌야 했고, 이 타이틀은 1978년에 복권할 때까지 짊어지고 다녔다. 1980년대에 들어와 다 늦게 팔자가 피어 미국과 유럽 등지를 순회하며 강의도 하고 강연도 하며 이름을 날렸으며, 중국 출생이긴 하지만 프랑스 국적이었던 가오싱젠을 제외하고 1988년에는 중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내정되었으나, 아뿔싸, 하필이면 상을 타기 전에 숨이 넘어가는 바람에 상을 놓치고 만다. 하긴 86세까지 살았고, 말년에나마 호강한 삶이 다 늙어 노벨상 탄 것보다 좋은 일이긴 하다.
왜 이리 말이 많은가 하면, 이이의 단편집을 읽어보니까 ①인텔리 계급, 대학 교수 또는 강사의 빵빵한 프라이드, ②군대와 전투의 비극 경험, ③빈민, 특히 (상하이로 보이는)조계지 변두리 주민들을 주요 등장인물이나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다 작가의 실제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작품들이 거의 고리타분해서 고린내가 폴폴 나는 올드스타일이라 작품에 관해 길게 얘기해봐야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높이 추앙받고 있는 작가를 다른 나라의 아마추어 독자가 엉뚱한 타박을 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책에 실린 작품들은 대개 1930년대 초반에 발표한 것인데 선충원 앞뒤로 우리나라에는 김동인, 현진건, 김유정 등, 다른 건 몰라도 단편소설 방면으로는 세상 어디에 내놔도 빵빵하기 이를 데 없는 막강 진용을 갖춘 터이어서 웬만한 단편소설은 눈에 차지 않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애써 번역한 강경이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한 내 감정이 그렇다.
표제작 <여덟 마리 말 그림>은 칭다오의 한 대학에 여름학기 강의를 위하여 중국 각지에서 권위있는 교수진을 초청해 산자락의 흰색 (당시 수준으로)고급 주택에 묵게 했으니, 물리, 생물, 도덕철학, 철학, 서양문학사 등으로 이름을 낸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우연히 주인공이자 소설가인 다스 선생도 포함되어 있는 바, 20년대 후반, 그러니까 선충원의 20대부터 각급 학교에서 교수를 했던 본인이 본, 여덟 명의 준마駿馬의 스케치를 뜻한다. ‘여덟 마리 말 그림八駿圖’
이 말 그림은 베이펑, 지금의 베이징에 있는 약혼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이 약혼녀가:
X라는 여성은 ‘그’를 좋아하고, ‘그’는 ‘ㅁ’을 좋아하며, ‘ㅁ’은 ‘X’를 싫어하지 않은 관계였다. X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을 통감해 ‘비통한’ 마음으로 회계사와 결혼해버리고 말았다. 이후 그의 ㅁ을 향한 연애전선이 좌절의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X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뭔가 해줄 일이 없는 지 물은 적이 있었고, 이에 그는 X에게 그러면 대신 ㅁ을 만나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부탁은 X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는 동시에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더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는 건방진 훈수이기도 했던 것이겠지. 하여간 이 일이 있은 후에 X는 부상병을 간호하기 위하여 전선으로 떠났다가 작년에 병사했고, 그는 작품 속 여름학기 강의를 위하여 칭다오에 와서 칭다오 맥주만 벌컥벌컥 마시는 다스 선생이 되었으며, ㅁ이 바로 다스 선생의 약혼녀이다.
그냥 그렇다. 하여간 다스 선생이 본 여덟 마리의 말, 그것도 그냥 말이 아니라 준마들은 각기 조금씩 다른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데, 공통점은, 다스 선생이 본 공통점이 아니라 내가 본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은 그저 배우나 못 배우나 기본은 비슷비슷하다 이건데, 다스 선생은 이들 모두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물론 본인은 빼고. 여덟 모두 문제가 있지만 특히 두 명은 이미 중증이어나 중증에서 아주 가까운 곳까지 왔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 여덟 교수들의 여성관에 대한 품평을 서신을 통해 베이펑에 있는 약혼녀에게 전하는 내용.
기대하지 마시라. 아무리 이이가 여성 해방을 포함한 모든 계급의 해방을 부르짖은 공산주의자였으며 베이징대학의 교수를 지낸 당대의 지식인이었다고 해도, 1935년 한여름에 발표한 작품에서 그릴 수 있는 여성상이 얼마나 진보적이겠는가. 짐작하시겠지?
이것 외에 전투 장면, 전투는 나오지 않더라도 한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가 전투 없이 철군하는 작품, 상하이 조계지 근처에서 빈민들이 겪는 참상 등이 있고 특히 지식분자들의 냄새나는 오뇌懊惱 또는 고뇌를 그린 건 목불인견, 눈 뜨고 봐주지 못할 수준이다. 작품이 후지다는 얘기가 아니라 느므느므 올드 스타일이라서. 고딩 고학년 때 중국집 뒷방에서 짬뽕 국물 안주해서 소주 마시며 궁리할 주탁 위 허언虛言 같음에야 어찌.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다.
우우. 이런 좋지 않은 독후감을 쓰니 마음이 언짢다. 출판사와 역자한테도 또 미안하다. 에잇, 김유정의 점순이나 한 번 더 읽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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