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의 눈빛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평점 :
.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박솔뫼의 두번째 작품집. 제2회 김승옥 문학상을 탄 첫번째 작품집 《그럼 무얼 부르지》가 2014년에 나왔다. 2014년 시점으로 최근 과거에 가장 큰 사건은 2011년 3월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일 것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원전 사고를 소재/주제로 다룬 작품을 구상 또는 발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11개월 후인 2012년 2월,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만다행으로 원자로가 가동하지 않은 상태라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 한 시설에 전기공급이 중단될 경우를 대비해 설치한 예비 발전기가 전기가 끊어짐과 동시에 발전기가 가동해서 시설이 정상 가동을 유지하여야 하건만, 이 발전기가 전혀 가동을 하지 않아 하마터면 그야말로 “큰 일”이 날 뻔했던 거였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발전소측은 이를 규정대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그냥저냥 넘어가려 했다. 이게 훗날 사달이 난 거다. 책임자-담당자가 보기엔 그리 크지 않은 사고이기도 했고, 그리 크지 않은 사고였을 지 몰라도, 국민들은 바로 작년에 일본에서 있었던 원자력 발전소 사고, 말이 사고지 발전소가 폭발한 대 사건의 공포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어, 특히 부산지역 시민들은 가볍지 않은 두려움에 싸여 있었다가 난데없이 바로 이웃한 지역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니 패닉 상태로 접어들 수도 있었다.
이렇게 사건 사고는 순식간에 퍼지고 퍼지면서 거대화하고, 정치이슈화 하여,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운대 고급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던 주민을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은 직장과 학교가 있는 부산에서 차마 떠나지는 못해, 부산 구도심 지역으로 몸을 피하는 일도 생겼으며, 서울에 거주하는 아파트 실소유자들도 기장군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3백킬로미터 조금 넘는데, 3백킬로미터 가지고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했지만, 속으로는 방사능 피폭의 공포보다 아마 759배 정도의 심각함을 가지고 해운대 고급 고층 아파트의 집값 하락을 걱정했을 것이다.
이때 박솔뫼도 고리 원자로 1호에서 발생한 사고와 2011년의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 등에 자극을 받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고리 원전사고에 관한 작품을 여기저기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에 김승옥 문학상을 받은 첫 작품집에 싣기에는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어서 3년 후인 2017년에 출판사를 옮겨 문학과지성사에서 두번째 작품집, 《겨울의 눈빛》 아홉 편 가운데 네 편을 고리 1호기 사고에 관한 작품들로 메웠다. 우리나라 국민, 그중에서도 특히 부산시민과 전국의 부산 아파트 소유자들은 경악을 했지만 불과 2년 후, 세월호 사건이 터지는 바람, 아니 폭풍 또는 태풍으로 인해 탈원자력 운동은 순식간에 시새푸새, 고리1호의 즉각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회의원과 시장 후보들의 장담과 다르게 원자로는 원래 계획대로 가동기한을 10년 초과/연장한 2017년까지 가동한 후에야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으며, 국민과 부산시민과 타지역에 사는 부산의 (특히 비까번쩍한 해운대 해변의) 고급 고층 아파트와 상가 소유주는 금세 원래 생활로 복귀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이렇게 길게 서두를 쓴 것은 작품의 절반가량이 고리 원자로 사건을 가져온 작품이기 때문이고, 두번째로 박솔뫼가 이를 참 절묘한 은유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21세기 문학』 2014년 봄호에 먼저 싣고, 이 책 《겨울의 눈빛》 제일 앞에 실린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이 대표적이다.
참, 이걸 먼저 이야기해야 하겠다. 앞 문단은 하나의 문장으로 쓰여 있다. 긴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독후감을 읽는 몇 안 되는 분들의 가독성 증진을 위하여 문장 안에 세 번 쉼표를 찍었다. 그러나 박솔뫼는 얄짤없다. 문장 끝의 마침표(드물게 물음표와 말줄임표)를 제외한 문장부호는 극단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서도 문장이 길다. 그렇다고 다음 주에 소개할 크러스너호르커이처럼 길고 길며 긴 수준은 아니지만 하여간 길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읽다가 두어번 신경질을 냈을 것이고, 심각한 부적응에 시달리는 분은 짜증도 부렸을 것이다. 간혹 읽다가 말았을 수도 있고, 도저히 참지 못해서 책을 내팽개쳤을 수도 있다. 진정하시라. 작가와 독자, 작가의 문장과 독자 뇌 속 리듬감이 언제나 맞을 수는 없는 법. 책 읽는 일도 다 팔자소관이다. 하여간 나는 박솔뫼의 문장에 매력을 느껴 요즘 (건방지게 형용사 하나를 더 붙이면 ‘젊은’) 작가들 중에서 그나마 꾸준하게 작품(집)을 읽고 있다. 자, 그건 그거고.
살면서 부산에는 다 한 번 이상 가보셨을 터. 박솔뫼는 광주 출신인데 부산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한다’가 아니고 좋아하는 거 같다. 내가 읽은 이이의 작품 <인터내셔널의 밤>도 부산이 무대이며 부산 곳곳을, 물론 헨리 제임스나 디킨스만큼은 아니지만,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도 부산 골목골목까지 나열할 정도이니 박솔뫼가 얼마나 부산을 애정하는지 짐작이 간다. 이런 작가도 헷갈린다. 부산역에서 내리면 부산타워가 보이나? 내가 부산역에서 내렸을 때 부산타워가 보였나? 아차,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잠깐을 제외하고 학교를 마칠 때까지 서울에서 산 나도, 서울역에서 내리면 남산타워가 보이나? 라고 물으면 첫째로 황당하고, 둘째로 어떤 대답을 해도 자신이 없고, 세번째로 남산타워보다 63빌딩 높이가 조금 더 높다는 건 확실하게 안다. 어느 건축물이 더 높은 지 술 내기했다가 남산타워와 63빌딩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봤다.
박솔뫼가 이 작품을 써서 잡지에 발표한 것이 2014년 봄. 말이 봄이지 계간지에서 봄호는 1월에 나온다. 그래서 작품은 2013년에 썼을 것이다. 앞으로 몇 달이 지나 계간지의 봄이 아니라 정말 세월의 봄이 오고, 곡식이 익기 시작하는 비가 내린다는 곡우가 오면 진도 앞바다에 청해진해운 소속 정기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 침몰해 숱한 인명을 해칠 예정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두운 밤에…>가 독자의 뇌리에 머물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 마음 속에서는 불과 2년도 흐르지 않았건만 고리1호 원자로 사건이 희미해졌던 것이라 해도. 작품의 화자 ‘나’는 수시로 부산타워가 보이는 지 확인한다. 스스로 묻기도 한다. 부산타워가 어떻게 생겼지? 우리나라 타워들이야 다 뻔하게 생겼지 뭐, 하면서도 정작 그려보려면 밑둥이 조금 굵고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 가늘어지다가 상당한 높이에 원형으로 큰 로비가 있어서, 거의 대부분 로비엔 카페나 전망대를 설치해 관광객들이 음료를 마시면서 주경,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후론 사정없이 날카롭게 하늘을 향하여 안테나인지, 그냥 첨탑인지로 구성하는 타워…, 아닌가? 이렇게만 말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알아챈다.
나는 처음에 박솔뫼가 부산역과 부산타워를 뭣 때문에 초장부터 꺼내 패를 던졌을까? 나름대로 풀어야 할 숙제로 점을 찍고 읽기 시작했다. 숙제를 풀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리원자력발전소의 1호기 사고 이야기가 나온다. 겨우 2년도 되기 전에 사람들 뇌리에 사라진, 작년까지 만해도 순식간에 살인 방사능이 기장면 장안읍 고리에서 출발해 해운대를 덮칠 것이라 굳게 믿고 피난을 떠나기까지 했다가, 이젠 몇 사람을 뺀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의 풍경을 그렸구나, 했던 거다. 부산타워는 타워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부산을 대표하는 소위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 부산역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부산역에서 부산타워가 보이는지 아닌지, 어떻게 생겼는지 확신할 수 없는 부산을 애정하는 작가와 시민.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부산의 숱한 경사지 벤치에 앉아 죽자사자 부산타워 그림만 그리는 길거리 화가들. 고리원전의 방사능 유출을 가상했는지, 고리원전 사고 이후에 가로등이 어두워진 부산 골목을 ‘나’는 다른 짐승도 아니고 암사자와 동반해야 걸을 수 있다. 이걸 박솔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하는 말처럼 툭 던져버린다. 작가는 특정한 주장을 펼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관찰자, 예술적 관찰자로 남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다른 단편 <부산에 가면 만나게 될거야>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 지금 세어보니 <부산에 가면…>을 역시 계간지에 발표한 시기가 2012년 봄호. 쓴 시점은 빨라도 2011년, 이이의 나이 스물여섯. 출판사로부터 문학상을 받았고, 문학상을 받은 작품에 대한 저작권 계약을 했는데 그걸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또 약속을 했나보다. 물론 이게 박솔뫼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빡친 출판사가 ‘나’에게 내용증명 우편을 보냈는데, 내용증명의 내용에 적힌 문법을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다.
“발신자가 계약을 파기할 시 상금과 책을 내는 데 들었던 일체 비용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며 다른 출판사와 계약시 출판된 책을 가처분 신청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며 다른 출판사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나’는 “있다고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협박 비슷하게 보낸 우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게 무슨 문법이야? 스물여섯 살에 내용증명을 받아 읽어본 사람은 내 주위에 한 명도 없으니 일단 흔치 않은 경험을 정말 박솔뫼가 했다면, 이거 축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부산에 가면…> 속에서 내내 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를 가지고 타박한다.
그런데 상대방측 변호인이 박솔뫼의 책 《겨울의 눈빛》을 읽어도 변호사는 작가의 문장을 보고 도무지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걸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그럴 것이다. ‘나’가 내용증명의 문장을 이해 못했듯이. 내용증명은 법적 소송을 위한 1차 단계이다. 즉 다툼을 가리기 위하여 쓴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대방이 잘못했다, 이리 단정하는 것보다 이런 내용으로 법정에서 다툴 것을 미리 알릴 목적이다. 각오하고 있으라 이거지. 며칠만 기다리면 곧 출판 가처분 신청이 접수되었다고 지방 법원에서 연락이 올 거다.
그러니 독자건 작가건, 남의 문장 가지고 함부로 이야기하면 뒤가 좀 켕길 수 있다. 나도 지금 무척 켕기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독후감을 너무 자주 쓴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