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빙산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의석 옮김 / 창비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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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엘 도르프만을 처음 안 건 지난 세기를 몇 년 남기지 않았던 시절, 칠레 출신 소설가의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는 우리나라 새싹들의 교육수준 향상을 위해 될 수 있는 한 많은 교육세를 내기 위해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날이면 날마다 너도 진로, 나도 진로, 야야야야야야야야 차차차! 취생몽사, 두꺼비 사냥하느라 이사벨 아옌데도 그저 이름만 알던 시기였는데, 내 청춘시절과 마찬가지로 ‘정치군인의 군홧발’로 일컫는 군사독재를 경험한 동병상련 입장에서 도르프만의 단편집 《우리집에 불났어》가 나오자마자 사서 읽은 게 그것이었다. 이후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을 거쳐 은퇴한 이후 동네 도서관에서 희곡집 《죽음과 소녀》, 그리고 <체 게바라의 빙산>까지 읽게 되었다. <체 게바라의 빙산>은 관심도서 목록에 넣어두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웃기게도 책장이 떨어져 나가기 바로 직전일 정도로 낡았기 때문이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아리엘 도르프만의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책 좀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 늦게나마 이사벨 아옌데를 겪어가며, 처음엔 전혀 생각을 못했다가 조금씩 덜 유쾌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라틴 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경제적 부의 편중에 시달린 칠레도 오랜 독재시절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거의 기적적인 1970년이 도래하여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살바토레 아옌데가 “비밀자유투표를 통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 놀라운 정치적 발전을 매우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군부? 군부 이전 칠레 정도는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는 범 세계적 권력을 쥔 미합중국이었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소위 “도미노 이론”이라 해서 한 곳이 공산화 되면 그 영향력으로 인해 이웃나라 역시 공산화되는 건 시간 문제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나도 중학교 시절에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배웠다. 그리하여 미국은 의도적으로 보일 만큼 국제 동copper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쳐 칠레 경제의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순도가 높고 경제성이 좋은 칠레 북부 (태평양전쟁을 벌여 볼리비아한테 빼앗은)사막의 동copper 광산의 사업성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혹은 그렇다고 의심이 들 만한 조치를 취한다. 아무리 피노체트가 막 돼먹은 깡패새끼라고 하더라도 배 부르고 등 따신 인민들 앞에서 무턱대고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는 법. 이렇게 칠레 경제가 무너지고, 직접적으로 인민들의 삶이 곤고해지는 것을 신호로 공포스러운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대통령을 대통령궁에서 사살해버리고 1974년 12월 드디어 스스로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면 이후에 칠레 사람들의 가정형편이 좋아졌느냐고? 정치적으로는 불행했을지언정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한다. 당연히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세계에서 가장 완고한 보수주의 나라 미국 정부가 아옌데의 실각 이후, 북한과 대치하던 남한의 박정희 정권시절에 했던 것처럼, 칠레의 경제발전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내가 주워들은 출처는 밝힐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칠레와 우리나라가 달랐던 건 뭐냐하면, 칠레는 워낙 길고 긴 국경선을 가지고 있어서 피노체트가 재수없고 살벌한 공포정치를 펼치자마자 지식층과 부르주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보따리를 싸서 칠레를 뜨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백만에 육박했단다. 우리나라는 바다와 휴전선이 가로막혀 극히 일부만 이민 또는 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과 다르다(극성맞은 정여사 치마바람에 묻어 나 소년시절에도 하마터면 미국으로 이민 갈 뻔했다). 그런데 비행편을 이용하지 못하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주로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관문에는 유럽인의 후예가 아닌 저 선사시대 얼어붙은 베링해를 걸어서 건너 북아메리카에 도착하고, 이후에도 계속 걷고 걸어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까지 진출한 아시아계 원주민 마을이, 원주민 마을만 있어서, 다수의 망명에 잔뜩 신경질이 난 피노체트 정권은 꿩 대신 닭이라고 국경 근방의 원주민 마을에서 아무 고민 없이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도르프만의 드라마 <과부들>에 나오듯이.


  세상의 많은 망명객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주로 미국에 머문다. 칠레의 망명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조국에서 떠나도록 등을 떠민 피노체트를 지지한 나라의 품에 머물러서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조국 칠레의 현 권력자 피노체트를 비난하고, 그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반정부 세력을 위한 모금을 하는 등 나름대로 반 독재 활동에 참가한다. 피노체트가 자유민주 선거를 통해 실각하고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이제 피노체트 시절을 청산하기 위한 대규모 숙청을 요구한다.

  나는 이게 좀 그랬다. 자기들은 조국 칠레를 떠나 뉴욕, LA,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리우데자네이루, 파리, 런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사업을 벌여 차곡차곡 여전히 부를 쌓으며, 이 가운데 적은 금액의 달러를 찔끔 모금해 조국에 보냈던 것을, 칠레에 남아 자기 목숨과 고문에 따른 고통을 감수하며 죽기 살기로 반독재 운동을 했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투쟁과 견주는 행위 아닐까 싶다. 입으로만 열나 칠레의 민주화와 독재권력의 잔인함을 폭로하고자 했지, 그거 말고 뭘 했는데. 그러나 마음씨 넓은 사람들이 이해하자. 그들도 도운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두려움에 휩싸여 해외각지로 몸을 피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들은 목숨과 고문을 걸어야 했던 조국에 남은 자들에게 적어도 스스로 창피함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권력은 여전히 총구에서 나오던 시절이었다.

  칠레의 이사벨 아옌데와 아리엘 도르프만. 이이들도 피노체트가 집권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 그가 실각한 이후에 다시 돌아왔거나 여전히 사는 건 미국에서 살면서 칠레를 무대로 한 작품을 쏟아낸다. 아옌데와 도르프만 선생? 여지없는 에스파냐의 딸과 아들이다. 말로는 위에서 말했듯 빙하기에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까지 멀고 먼 여행 끝에 자리잡은 원주민의 세월을 노래하지만 스스로 에스파냐 후예의 자격으로 아메리카의 발견이라는 “아메리카의 탄생 5백년”을 입에 올리는 백인 부르주아이자 약탈자의 후예들.

  반면에 다음 주 금요일에 독후감을 올릴 니콜 크라우스가 쓴 <위대한 집> (문학동네 2020 출간) 또는 <그레이트 하우스> (민음사 2011년 출간)에서 오직 과거시제로 등장하는 유대계 칠레 시인 다니엘 바르스키는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조국에서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칠레의 민주화를 위하여 기꺼이 귀국을 선택해 이후 행방불명된다. 작중 등장인물들이 고문 끝에 학살을 당한 수천명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 여겼는데, 작품 후반에 접어들면 고문을 당하기는 했지만 목숨은 겨우 붙어있는 처지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크라우스는 칠레하고 관련이 없는 작가이다. 칠레하고 관련이 없어서, 그래서 작중 등장인물이 뉴욕에 잘 있다가 자진해 귀국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체포당하는 비극을 맞는 반면, 실제로 칠레 부르주아 출신인 아옌데와 도르프만의 주인공들은 서둘러 조국에서 탈출하고 죽자사자 글만 써서 칠레의 정치군인들을 향해 공갈포를 터뜨린 것일까? 뭐 그렇다는 거다. 사람 사는데 뭔 일인들 벌어지지 않겠나.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개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강남좌파라고 하거니와....


  여기에 우리나라 메이저 출판사 창비는 한술 더 뜬다. 원래 제목을 영어로 하면 “The Nanny and the Iceberg” 즉 “유모와 빙산”인데 2004년 초판 출간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던 체 게바라의 이름을 따 <체 게바라의 빙산>이라고 제목을 정했다. 체 게바라고 알려진 에르네스토 게바라Ernesto Guevara는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한 낭만적 혁명가로 쿠바혁명, 알제리 독립투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한 이후, 볼리비아로 건너가 내전에 관계하던 중 체포되어 1967년 10월 9일에 처형당한 쿠바인이다.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인물로 체 게바라의 죽음은 당대 전 라틴 아메리카 청년들의 추모와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칠레도 마찬가지였다. 1967년 10월 10일, 체 게바라가 처형을 당한 다음날, 칠레 산티아고에서도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있었고, 군중 속에는 가출 청소년을 전문으로 찾아주는 사립 탐정이면서 심리분석가로 활약하기 시작한 끄리스또발 매켄지와 그의 은사 가야르도 교수의 딸 밀라그로스도 있었는데, 매켄지는 한 눈에 밀라그로스를 발견해 위험할 수도 있는 산띠아고 시내에서 가장 안전할 수 있는 호텔로 즉각 데려가서, 했다. 당시 끄리스또발의 나이 25세.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생물체였으니 25세가 되도록 동정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18세를 갓 넘은 밀라그로스는 지극히 정상인이라 당연히 처녀는 아니었고. 하여간 이 두 청춘이 한 명은 난생 처음으로, 다른 한 명은 별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로, 경험이 있는 다 큰 사람이 보기엔 무모하게도 콘돔도 착용하지 않은 채로 조금은 서툴게 일을 치루었고, 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콩을 깠”는데, 단 한 번 깐 콩으로 불과 며칠 후 밀라그로스의 자궁벽엔 ‘나’ 가브리엘 매켄지의 수정란이 착상을 했으며, 아직 착상도 하지 않은 밀라그로스의 상태를 찢어진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지닌 원주민 마뿌체 족 출신 유모는 한눈에 알아봤던 거였다.

  세월이 흘러 15세가 된 ‘나’ 가브리엘 메켄지는 당시에 첫 망명장소인 멕시코시티에서 살았는데, 썸을 타는 여자아이 재니스의 부모가 하루 집을 비운 사이 놀러가 재니스의 엄마가 새로 산 근사한 중고 소파 위에서 서로 홀라당 옷을 벗고 생전 처음 그걸 해보려 했다가, 아뿔싸, 다른 건 다 준비완료 상태이지만 딱 하나, 콘돔을 사오지 않아 결국 가브리엘 신체의 극히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게 재니스의 몸에 침투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여전히 하늘을 향해 벌떡 서 있는 물건을 그냥 달고 집에 온 아들을 바다보는 엄마 밀라그로스한테는 자신의 유모가 보여주던 관심법의 능력이 없어 드디어 아들이 딱지를 뗀 것으로 인식하고, 그동안 크면 알려주겠다던 가브리엘의 탄생 과정을 말해주기에 이른다.

  “1967년 10월 9일에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당하지 않았더라면 10월 10일에 산티아고 시위가 없었을 것이고, 시위가 없었으면 네 아버지 끄리스또발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니, 너 또한 만들 일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체 게바라가 죽었기 때문에 네가 사는 거다. 간단하게 말해서 네가 숨쉬는 것도 그 사람 덕분이란다.” 더 쉽게 말하자면 체 게바라가 아들 가브리엘을 위하여 죽었으니 가브리엘 한테는 체 게바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등학교 동창쯤 된다는 말씀. 이제 창비가 왜 제목을 <체 게바라의 빙산>이라 했는 지 이해하시겠지?

  이 정도로 독후감은 끝내자. 어차피 절판이라 읽고 싶으면 헌책을 사든지 도서관에 가야 한다. 끝내기 전에 딱 하나만 더. 주인공의 아빠 이름이 끄리스또발. 창비식 발음을 수정하면 크리스토발. 영어식 이름으로 크리스토프. 누구의 이름이라고? 맞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과 함께 에스파냐 세비야에 잠들고 있는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프 콜롬버스. 끄리스또발이 총각 딱지를 떼고 25년이 더 흘러 50세가 되는 해는 크리스토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해 “아메리카의 탄생 5백년”이 되는 해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라틴아메리카 인이기 이전에 그냥 에스파냐의 후예라니까.

  이크. 오랜만에 집에 온 작은 아이가 얼른 노트북 덮고 돼지갈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아무렴. 문학보다는 돼지갈비에 낮술 한 잔이 훨씬 좋지. 오냐, 간다 가. 독후감 얼른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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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이라면 ‘비(非)-’를 안 붙인다. 우리말이 아니라서 ‘非-’를 붙인다. 우리말이 아닌 쓰레기 ‘非-’는 먼저 옆나라 일본 우두머리가 ‘비국민’이라는 말을 지어서 퍼뜨리는 곳에서 싹텄다. 일본 우두머리가 일으키는 싸움짓을 따르지 않으면 “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야!” 하고 윽박지르면서 두들겨패고 사슬에 가두었고 죽였다. 일본 옆나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숱하게 ‘비국민’ 손가락질을 받으며 죽어야 했고, 일본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비국민’ 손가락질에 따돌림을 받으며 죽었다.

제대로 읽는 사람이라면, ‘모든 일본놈’이 우리나라를 사슬터(식민지)로 삼지 않은 줄 안다. 제대로 안 읽는 사람이라면, ‘그저 일본놈’이라고 뭉뚱그린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얼뜬 일본 우두머리’하고 맞섰는가? 아니다. 일본총독부가 남긴 밑동(기초자료)을 보더라도 이 나라 ⅓쯤은 오롯이 ‘일본바라기(친일부역)’를 했다고 여긴다. ⅓쯤은 슬쩍 발을 담갔고, ⅓쯤은 일본에 맞서거나 시골에 숨었다.

한겨레라 하더라도 일본 우두머리보다 모질고 사납게 한겨레 등골을 파먹은 무리가 버젓이 수두룩하다. ‘일본놈’이라지만 일본에서도 ⅓쯤은 앞장서서 일본 우두머리를 나무라고 맞서다가 이슬 한 방울로 스러졌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백인 부르주아 약탈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터럭만큼도 옳을 수 없다. ‘흰살갗(백인)’도 ⅓쯤이 힘꾼(권력자)이라면, ⅓쯤은 살짝 발을 담그고, ⅓쯤은 맞서거나 종(노예)으로 뒹굴었다. 나고자라기로는 하늬(유럽)이되, ⅓쯤은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맨손으로 논밭을 일구고 살림을 지었기에, 이들 살빛은 ‘까무잡잡’했다.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사랑받은 《초원의 집》이라고 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라는 ‘흰살갗 집안 시골 할머니’가 쓴 글이 있는데,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뿐만 아니라, 이녁 언니동생도, 이녁 엄마아빠도 그저 ‘까무잡잡한 살결인 흰사람(백인종)’이었다. 하루 내내 들에서 해를 쬐면서 일했으니, 적잖은 ‘흰사람’이라 하지만 ‘까무잡잡 살갗’인 사람이 많다.

겉모습(인종)만으로 사람을 가를 적에는 언제나 잘못 보면서 ‘안 옳은 말’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외치게 마련이다. 모든 한겨레(한국사람)가 참하거나 착하거나 옳지 않다. 모든 일본놈이 끔찍하거나 멍청하거나 꾀바르지 않다. ‘겉모습으로 뭉뚱그리는 굴레’가 아니라, 낱낱으로 ‘사람’을 보고, ‘사람이라는 마음과 숨빛’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흰살갗이라서 모두 사납빼기(약탈자)이지 않듯, 돈꾼(부르즈아)이라서 모두 사납빼기이지 않았다. 가난뱅이(프롤레타리아)라서 모두 착하고 참했을까? 터럭만큼도 아니다. 가난뱅이여도 사납빼기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난뱅이여도 돈꾼보다 넉넉하면서 아름답게 살림을 지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겉모습이 아닌, 껍데기가 아닌, 허울이 아닌, 허깨비나 허수아비가 아닌, 이제는 그저 “일하는 나”와 “일하는 너”와 “일하는 우리”를 마주보고 이야기할 때라고 본다. “살림하는 나”와 “사랑하는 너”가 만나서 “푸른별을 푸르게 일구는 새길”을 이야기할 때라고 본다.

Falstaff 2025-02-18 08:18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