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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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에서 작가의 바이오는 그리 필요한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좀 섭섭하니 위키피디아를 한 번 뒤져봤다. 1967년 동베를린에서 물리학자, 철학자, 작가인 John 에르펜베크의 딸로 태어났다. 독일인 John을 ‘욘’이라 해야 하는지 ‘존’이라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알파벳으로 적었다. 예니의 엄마 도리스 킬리아스는 특이하게도 독일 내 아랍주의자이며 번역가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아기브 마푸즈의 작품 번역에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특이하다는 것이지 아랍주의자라고 해서 나쁘다는 의미는 1도 없다. 괜히 오해하지 마시라. 무슬림은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다. 그렇게 많은 인류가 숭상하는 종교가 나쁠 턱이 없다. 교리를 이상하게 해석한 종교인 몇 몇이 문제일 뿐. 하여간 예니 에르펜베크는 적어도 할아버지 시대부터 상당히 문화적인 가족 분위기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에 베를린 고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제본공 견습과정을 마친 후, 수작업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 도움이 되었는지 이후 1년 동안 극장에서 소품 및 의상 감독 일을 하다가 1988년에 유명한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 입학해 연극을 전공한다. 이후 과를 바꾸어 한스 아이슬러 음악원에서 음악극 연출을 공부해 벨라 버르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 영주의 성>을 졸업기념으로 연출한다. 이후 그라치 오페라하우스 조감독 등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주요 오페라하우스에서 경력을 이어 나간다. 위키피디아에서 볼 수 있는 레퍼토리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핸델의 <아시스와 갈라테아>, 모차르트의 <자이데> 등 주로 바로크 쪽이다. 스무 살 많은 남편 볼프강 보지크도 오페라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레하르의 오페레타 <에파>를 녹음했다.

  1990년부터 작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해 2015년에 <엔드 오브 데이즈>로 영국 인디펜던트 신문이 영역 문학작품에 주는 상인 독립 외국 소설상을 받았으며, 2024년엔 <카이로스>로 한강이 받았던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아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내가 에르펜베크의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고른 것도 <카이로스>가 우리말로 번역해 시장에 나와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놓고 그걸 기다리는 동안 예니 에르페베크의 문장이 어떤지 먼저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미리 이야기하건데, 알라딘의 <그곳에…>에 대한 고객 평점은 야박한 편이다. 아마 이이의 작품이 줄기를 이루는 서사가 거의 없이 풍경과 장소가 만들어내는 무형의 감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면 팬들한테 얻어 터질 수도 있지만, 배수아의 번역으로는 예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집중해 읽는, 특별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 그것 한 가지만 가지고도 만족했다. 배수아 팬께서는 너무 열 받지 마시라. 배수아뿐만 아니라 내가 모든 소설가의 번역을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우리말 사용에 능숙한 이들인지라 (눈치로 봐서) 번역하기 까다로운 지점이 나오면 그럴싸한 우리말로 무질러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특히 배수아는 주로 서사보다 문장과 은유와 함의에 집중하는 사람인지라 조금 더. 그뿐이다. 하여간 나는 이 책을 읽고 희망도서 신청을 한 <카이로스>가 일찍 들어오기를 바라는, 괜히 조급해지는 마음이 생겼다. 이 기분 아시지?


  (역자 해설을 참조하면) “베를린 남동쪽 근교, 폴란드와의 국경에 있는 오더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사이에 위치한 샤르무첼 호숫가의 한 장소.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바로 그 땅, 대지, 흙과 공기와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 사람은 가도 언제나 한자리에 남아 있는 그 ‘공간’ 자체일 것이다.” (p.282)


  약 2만4천년 전, 얼음덩어리가 흘러와 뒤덮을 당시 육중한 바위산이었던 완만하게 솟은 지형은 지금은 구릉으로 남아 있으며, 1만8천년 전에 녹기 시작한 이 얼음덩어리, 빙하는 1만3천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물이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해 샤르무첼 호수가 되었다. 이 호수의 풍광이 아름다워 1881년 <에피 브리스트>와 <마틸데 뫼링>을 쓴 독일의 소설가 테오도르 폰타네는 새로이 “메르키슈 해海”라는 별칭을 붙여주어 이후 사람들이 메르키슈 호수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아, 그렇다고 폰타네를 읽어보시라는 말은 아니다. 독일 후기낭만주의, 별로 재미없다. 하여간 이 호수는 메르키슈 언덕 한 가운데 자리잡은 채 하늘을 마주보고 있었는데, 호수 주변을 떡갈나무, 오리나무, 소나무의 숲이 장관으로 둘러싼 채 1만 년을 넘게 지탱해왔다.  이 조용한 야생의 지역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털이 별로 나지 않은 원숭이 무리. 인간들. 처음부터 이들이 이곳에서 터를 잡은 건 아니다.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 전은 1650년경. 30년 전쟁이 끝난 바로 직후이니 신성로마제국 대부분의 영토가 거의 황폐화된 시절이었을 터. 당시 브란덴부르크 지역은 스웨덴부터 시작해 보헤미아, 신성로마제국 등의 군대가 거의 거덜을 냈고, 지역의 중심인 베를린과 근교인 메르키슈 호숫가도 예외는 아니었을 터, 그렇게 곤궁한 시절부터 무려 2백년이 넘는 동안 메르키슈에서 촌장의 자리를 이어간 부라흐 집안의 남자들은 마을을 잘 보존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할 터였다. 작품은 마지막 부라흐 촌장 시절부터 시작한다. 촌장은 네 딸, 순서대로 그레테, 헤트비히, 에마, 클라라를 두었는데, 아내는 막내 클라라를 낳고 거의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딸만 넷을 두어 이제 부라흐 집안은 촌장을 맡을 일이 없었고, 그저 네 딸이 잘 살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부라흐 촌장의 뜻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레테는 혼인 전날 약혼자가 상속권을 얻는데 실패해 파혼해 버리고, 헤트비히는 탈곡 일꾼과의 사이에 정분이 난 것을 아버지에게 들키는 바람에 핏덩이에 불과한 태아를 사산하며, 농장 일을 관리하는데 큰 몫을 하는 에마는 아들이었으면 당연히 촌장을 이어서 했겠지만 그러지 못했으면서도 누구 한 명 에마의 혼인에 관해 신경쓰는 일이 없었고, 막내 클라라는 젊은 어부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신이 이탈하며 호숫가에 자신의 땅이 될 것이라 일찌감치 정해진 클라라의 숲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생을 접고 말았다. 그리하여 부라흐 촌장은 클라라의 땅을 3등 분할하여 외지인에게 팔아버리고 말았으니 세월은 어느 새 20세기로 접어들었다.


  세월은 흘렀고, 3등 분할한 예전의 클라라의 숲의 한 필지를 구입한 건축가는 드디어 메르키슈 호숫가의 첫번째 집을 짓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집을 짓는 것이니 자신과 아내를 위한 최선의 작고 탄탄하고, 젊은 부부의 필요에 따른 다양한 장치가 내장되어 있는 편하고 아늑한 집을, 수도에서 조경업자를 불러와 메르키슈 촌의 정원사와 함께, 누가 봐도 아름다운 집과 정원과 숲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한다. 앞에서 역자 배수아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호숫가의 땅, 대지, 흙 (사실 이 세 가지는 서로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공기와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이라고 했으나, 건축가가 집을 지은 작품의 초기 이후로 진정한 주인공은 자연이 아닌 사람의 구축물인 이 집과 정원, 그리고 부속 숲이라 해야 맞을 듯하다. 결국 작품은 집의 소멸로 대단원을 이루니까.

  그렇다. 지금 나는 아주 예외적으로 작품의 마지막을 이야기하고 있다. 건축가가 집을 짓고 또 시간이 흐른 다음, 3등분한 클라라의 숲 가운데 건축가의 집과 이웃한 필지를 섬유업자 아르투르가 구입한다. 유대인 가족. 그의 아내는 헤르미네. 아들과 며느리는 루트비히와 안나. 딸 엘리자베스와 사위 에른스트. 이들 사이의 외손녀 도리스. 친손자와 손녀 엘리엇과 고모의 이름을 물려받은 엘리자베스. 독일이 낳은 걸작품인 아들러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부유한 아르투르 가족. 아르투르 부부는 베를린에 살면서 여름을 나기 위하여 1년에 한 번씩 독일에 다니러 오는, 남아프리카에 사는 아들 가족과 함께 매년 여름 동안 메르키슈 호수에 머문다.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시간은 흘러 1930년대가 되고,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키 작은 퇴역 육군 상병이 집권을 하고, 그가 통치하는 독일이 조국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면서, 독일을 떠나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이 된 아르투르는 건축가에게 시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호숫가의 자기 땅을 팔고, 팔았지만, 기대한 것처럼 그 돈을 넣은 계좌는 즉시 동결되어 국경을 넘어가지도 못한 채 종말 수용소로 실려가 2분 동안 가스를 마시면서 죽었으며, 나이든 아내 헤르미네 역시 같은 가스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2분 동안 마시며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발목에 푸더덕, 똥을 싸고 말았다는 걸 생전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며, 죽었다. 사위 에른스트는 강제 노역에 징발당해 티푸스에 감염되어 곧 죽었고, 딸 역시 종말 수용소에서 죽었으며, 외손녀 도리스는 게토에서 숨어 있다가 발각이 났으니 이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대인 가족한테 땅과 별장을 산 건축가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을 맞아 소련군과 대 타협 끝에 사업을 연장할 수 있었으나, 자신의 일생일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하여 자비를 들여 서독에서 놋쇠 나사못 5톤을 사온 것이 문제가 되어 숙청을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집행 이틀 전에 이 정보를 미리 들은 관계자의 귀뜸을 받아, 마이센 도자기, 주석 맥주잔, 은제 식기 등 귀한 물건들을 정원의 귀퉁이마다 각 한 뭉텅이씩 따로 파묻고 서베를린 행 전철에 오를 것이다. 주말 동안에는 누구도 체포하지 않을 거라는 정보를 들어 적어도 죽임을 당하지 않겠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발적인 추방.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하여간 건축가는 자신의 귀중품을 정원에 묻기로 하고,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당연히 대부분은 모습을 드러나게 되고, 건축가는 서베를린에서 숨을 거둔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내와 아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장벽의 폐허 위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연주한 후, 독일 정부에 소송을 해 메르키슈 호수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저 멀리 남아프리카에 아직도 살고 있는 아르투르의 아들 루트비히 역시 소송을 진행해 오래, 오래 끌고 간다.

  이 와중에도 호숫가 집에는 다양한 일이 다양한 사람들한테 벌어졌으며, 벌어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끝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호숫가와 바람과 나무와 별빛은 영원하겠지만 사람이 만든 집은 언젠가 무너지고, 그렇게 철거하는 것이 보수해 사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판단을 인간이 내린다면 그걸로 집은 사라질 터이니까.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인간의 탄생 이전의 거대한 시간, 그리고 절멸 이후에 계속될 무한의 시간을 떠올리며, 겨우 2만4천년 전에 밀려온 빙하가 1만3천년 전에 녹아 생긴 호숫가에 기껏해야 250년 된 마을에서 겨우 백년 전에 지은 사람의 집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허허롭고 허허로웠다. 사람아, 문명아, 너는 얼마나 작으냐. 얼마나 보잘것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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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2-17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넘 예쁘네요. 제목만 보면 박완서스럽기도하고요. 우리나라 서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터라 서사가 약하면 무조건 박한가 봅니다. ㅎㅎ 암튼 저도 함 읽어 보고 싶은데 이 책은 언제 나와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ㅠ

Falstaff 2025-02-17 16:31   좋아요 1 | URL
을유문화사가 광고를 거의 안 하다가 요즘에 와서 조금씩 하는 걸로 보입니다. 좋은 출판사인데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에르펜베크, 이 작자를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팍, 생겼습니다. <카이로스> 말고 다른 책도 계속 번역해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