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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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만에 볼라뇨 라이브러리에 한 권을 추가한다. 도서관에서 계속 눈독을 들인 책. 한 권쯤 안 읽은 볼라뇨도 있는 게 좋아, 은근히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미루고 있다가 읽었다. 처음부터 볼라뇨를 좋아한 건 아니다. 처음 읽는 낯선 방식의 소설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 경기를 했고, <안트베르펜>은 이거 또 뭐야 싶었는데, 후에 생각해보니 초기에 읽은 이 두 작품을 통해 나도 모르게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익숙해졌던 거다. 그리하여 이후 다른 볼라뇨 애호가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에 집중하게 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볼라뇨는 몇 권 남지 않았다. 남은 것도 야금야금 읽어야지.


  화자이자 주인공은 몬테비데오 출신의 우루과이 여자 아욱실리오 라쿠투레. 자칭 멕시코인들의 친구이며 멕시코 시의 어머니이다. 모든 시인을 알고 있고 시인들 역시 모두 자신을 안다고 믿는다. 아욱실리오가 우루과이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년가량 살다가 최종적으로 멕시코시티에 와서 정착한 이유는 스페인 시인 레온 페리페와 페드로 가르피아스가 조국을 떠나 멕시코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욱실리오가 멕시코에 도착한 것은 1967년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65년 또는 62년일 수도 있다. 독자는 좀 헛갈릴 수 있다. 정착하기 위하여 멕시코에 온 해를 5년씩이나 왔다갔다할 수 있을까 싶어서.

  <부적>은 아욱실리오 라쿠투레가 훗날, 아마도 1980년대의 어느 날 지난 세월을 기억하면서 쓴 글일 것이며, 아욱실리오는 시인,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탐정들의 흔적이 드러나는 <2666>에서 보듯 초현실주의 시를 쓰는 부류, “내장사실주의”의 일원일 것이라서 시공에 관한 한 상당한 신축성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작품의 뒤편에서 등장하는 스페인의 여성 시인 레메디오스 바로를, 시인하고는 실제로 아이 컨택, 눈과 눈길이 마주친 적도 없지만 이이의 상념 속에서 자신이 레메디오스 바로를 찾아갔으며 무료로 집안일과 부엌일을 해줄 테니 당신은 시 쓰기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한다. 또는 그렇다고 믿는다. 레메디오스 바로가 생을 접은 해가 1963년. 그러니 아욱실리오 라쿠투레가 그 시인과의 인연에 대하여 언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962년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했어야 하기 때문에.

  아욱실리오가 레메디오스를 찾아갔다고? 그렇다. 사실이 아니어도 사실이다. 독자는 그렇게 믿지 않지만 믿는다. 이이가 멕시코시티에 도착해 한 번에 두 명의 스페인 노시인과 교류를 하며, 1962년 또는 63년에 레메디오스 바로에게 했듯이 레온 페리페와 페드로 가르피아스가 시작詩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집안 일 일습을 다 해주었다(고 주장한다). 1968년에 사망한 레온 페리페는 자신을 ‘예쁜이’ 혹은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면서 가끔 돈 몇 푼을 건네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이는 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자신이 집안일을 해주는 것은 “순전히 억누를 수 없는 존경심에서 하는 일이라고요.”라고 대답했다. 페드로 가르피아스는 레온 페리페와 달리 돈이 아니라 집안일을 해주는 대가로 주로 철학책을 선물해주었다. 가르피아스가 세상을 떠난 것이 1967년. 따라서 아욱실리오는 늦어도 1967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있어야 했던 것.

  두 명의 노시인 가운데 페드로 가르피아스만 기억해도 좋다.


  화자 ‘나’이자 멕시코 시의 어머니인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는 가르피아스가 67년에, 페리페가 68년에 사망하자 그들의 집에서 나와 멕시코국립자치대학 인문대학을 빙빙 돌며 역시 자발적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가끔 교수실에서 타이프를 쳐주거나 프랑스어에 관한 한 대학의 전문가보다 더 양호한 편이어서 간혹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돈으로 다락의 작은 월세방을 얻거나 시인 또는 그들의 친구집에 얹혀 지내며, 숙박은 물론, 가능하다면 삼시 세끼 내장을 채우는 것도 빌붙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하루도 좋고, 사흘도 좋고, 일주일이면 더 좋은데, 한달 두달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가, 결국 어떤 경우라도 마지막엔 이젠 좀 나가달라는 집이나 방 주인의 직접적인 말을 들은 후에야 친절하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인사하고 집이나 방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그러니 시인들의 집에서 무료로 집안일을 해준 것이 아니라 대신 잠자리를 얻고,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건 실컷 먹을 수 있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드디어 9월 18일이 온다.


  1968년 9월 18일. 멕시코국립자치대학. 1968년. 전 유럽과 북미를 휩쓸던 젊은이들의 자유와 반전시위. 이 충격이 멕시코시티에 다달았다. 멕시코에서는 두 가지의 악재가 더 보태졌으니, 제도혁명당에 의한 독재정권과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멕시코시티 올림픽이 그것이었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 학생들은 독재철폐, 정치범석방, 집회의 자유 보장, 올림픽 철회를 외쳤으며, 이에 대한 친절한 응대로 멕시코 정부는 시위진압경찰과 군대를 학원에 투입해 당연히 사정없이 두드려 패며 교수, 교수의 비서를 비롯한 교직원, 학생들을 체포 구금해버렸다. 이 일은 10월 2일, 올림픽이 열리기 불과 열흘 전에 행해진 유명한 “틀라텔롤코 광장에서의 학살”의 전초전 역할을 하는데, 그건 며칠 후의 일이고, 딱 이 당시 여자화장실에서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는 스커트를 올리고 (볼라뇨가 쓴 대로 옮기자면) 발목을 족쇄처럼 움켜쥐는 방식으로 팬티가 걸린 채 좌변기에 앉아, 용변을 본 것이 아니라 이이의 취미대로 자기만의 공간에서 페드로 가르피아스의 더없이 섬세한 시를 읽고 있었다. 사실 이 장면은 한 가난한 망명 또는 유랑 인텔리겐치아의 눈물을 앞을 가리는 비참한 장면인데도 독자가 어쩔 수 없이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건 로베르토 볼라뇨 특유의 장난끼 가득한 문장 때문이다. 아욱실리오가 저 꼭대기에 걸린 환기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코피가 흘러 휴지로 코를 막은 교수와, 이제는 자기 친구라고 할 수도 있는 비서들이 군인들의 엄격한 눈길을 받으며 비칠비칠 걸어가고 있었다. 존경하는 고 돈 페드로 가르피아스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장면이었으리라.

  교정에 아직도 틀림없이 군경이 있어서 아욱실리오는 화장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심지어 언제 젊은 남자 군인이 여자화장실의 출입문을 왈칵 열어젖힐 지 모르는 일이라 개별실의 문조차 열어놓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후 정말로 한 병사가 화장실에 들이닥쳤고, 이어서 상관인 듯한 인간이 지나가자 “근무중 이상 무” 보고를 하더니 다시 문을 닫고 나가는 거였다. 다시 개별실로 돌아와 있던 아욱실리오는 이때까지 문 아래로 보일지 몰라 여전히 같은 복장인 채로 두 발을 동동 들고 있었으며, 군인이 물러난 이후 화장실에 혼자 남은 이이는 세면대의 거울을 보고, “아욱실리오 라쿠투레여, 우루과이 시인이여, 버텨라!”라고 외쳤다. 물론 밖에서 들리지 않게 속으로만.


  이렇게 해서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는 1968년 9월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그나마 다행히 세면대에 물이 공급되는 바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물만 마시면서, 도저히 변기 위에 앉은 상태로는 잠을 잘 수 없어 여름이라도 차디찬 화장실 타일 위에 쪼그려 누워 12일 밤을 보낸 후 구조되었던 거였다. 구조된 이틀 후에 멕시코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한 기록이 될 틀라텔롤코의 학살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아욱실리오 본인은 멕시코국립자치대학 인문대학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고 자신은 생각하며 살게 된다). 이 당시에는 다 있었지만 이후 멕시코시티에서 앞니 네 개를 상실한 아욱실리오는 마음 속 한 구석에 12일 동안의 감금, 구속의 영향이 가장 크게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겼으리라. 이후 이이는 남들과 대화를 할 때, 웃을 때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는 것이 버릇이 되었는데, 사실 이건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제스처이긴 하지만, 시인, 시를 통해 세상에 발언하는 아욱실리오 입장에서는 범인의 경우보다 더 많은 은유적 의미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겠다.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독자 마음인 것도 당연하고.

  이후 <부적>은 멕시코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 젊은이들의 독재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비롯한 자유정신에 대하여 나머지 분량을 할애한다. 이 속에 <야만스런 탐정들>에 등장하는 시를 쓰는 젊디젊은 시인도 나오고,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전설적인 시인, 작가도 언급하는데, 나는 당연히, 다른 작가가 아니라 로베르토 볼라뇨가 쓴 작품이기 때문에 그가 만든 ‘허구’의 시인, 소설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데 만원 건다.

  무엇을 일컬어 부적이라고 했을까? 젊은 라틴아메리카 청년들의 용기와 도전, 그것들을 통해 일군 자유와 지양. 아, 이건 미리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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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1-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라뇨 전집을 오래 전에 사서 쟁여 두었죠. ㅎㅎㅎ
헌데 언제 읽을지...^^;;

Falstaff 2025-01-06 16:38   좋아요 0 | URL
새털 같은 날들인데 뭐가 걱정입니까? 언젠가 읽으시겠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