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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우드 바이블
바버라 킹솔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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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킹솔버는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변주한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로 알게 되었다. 크게 어필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진지하게 쓰는 작가로 이이의 책을 한 권쯤 더 읽어봐야겠다, 싶었던 찰라, 이 책이 눈에 띄어 읽었다. 보자마자 읽기 시작하지 못하고 관심도서 리스트에 올려놓기만 하다가 몇 달이 더 지나 읽은 건, 원문만 662쪽에 달하고 지문이 빽빽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내, 작은 아이, 이렇게 세 명의 회원증을 가지고 한 달에 아홉 권 희망도서 신청을 하면, 이 책들을 읽는 날들을 빼고 관심도서를 읽어야 해, 두꺼운 책은 시간 관리상 선뜻 집어들지 못한다. 그러다 기어이 읽었다.
진작 읽을 것을.
제목에 ‘바이블’이 들어 있으니 각 부의 제목이 창세기, 요한게시록, 사사기, 벨과 뱀, 출애굽기, 삼동자의 노래, 나무 속의 눈으로 되어 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운데 5권 ‘출애굽기’가 623쪽에 끝나니까 6권과 7권은 에필로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읽으면서 거의 유일하게 가지게 된 불만은, 적지 않은 분량의 ‘출애굽기’는 따로 한 권의 책이나 2부로 다루었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뭐 그렇다는 거다. 작품을 읽는 게 독자의 권리이듯, 쓰는 건 작가의 권리이니 말을 더 보탤 이유도 없다.
전에 읽은 2022년작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보다 무려 24년 전인 1998년에 발표했으니 완전히 다른 작품인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바버라 킹솔버의 부모 버지니아와 웬델 킹솔버 두 양반 모두 의료와 공중보건 업계에 종사했다. 그리하여 <… 코퍼헤드> 등장인물들의 약물 오남용 사례를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부모는 바버라가 일곱 살이던 1962년에 신생 아프리카 독립국에 대한 “연민과 호기심” 때문에 콩고에 꽂혀, 바버라를 데리고 콩고(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에 가서 의료봉사를 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건 가슴에 꽤나 깊이 각인되는 법. 이후 30년 가까이 흐른 20세기 말, 바버라는 1960년 콩고의 독립 전후사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소설 <포이즌우드 바이블>을 쓴다.
한 가족을 등장시키는 작품이 있으면 비록 진짜 경험은 아니지만 혹시 이게 작가의 가족을 모델로 쓴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래서 바버라는 본문 앞에 붙인 서문을 통해 “내가 이 작품의 내레이터로 만들어낸 부모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점에 (작가의 진짜 부모가) 다르다는 점에 특히 감사를 드린다.”라고 미리 못을 박아버린다. 사실 이런 말은 안 해도 되는데.
젊은 시절부터 침례교 전도사로 미대륙 방방곡곡을 다니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청년 네이선 프라이스가 미시시피주 잭슨의 작은 마을 낙수비 카운티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면 원피스를 입었어도 행복에 겨운 열일곱 살의 올리애너를 만났다. 올리애너의 눈에도 잘생긴 데다가 매사에 자신만만한 젊은 목사의 붉은 머리가 마음에 폭 들어온 건 물론이다. 이렇게 연애를 시작한 젊은 커플은 1941년 가을에 결혼을 하고 깨를 볶기 시작했건만 여전히 참기름이 졸졸 샐 무렵인 12월에 일본 제국군대가 진주만을 공습해버린다. 그리하여 대단한 무력을 보유한 미국의 젊은이들은 마치 며칠간 MT라도 다녀오는 심정으로 너나 할 것 없이 태평양으로, 유럽으로 출전하기 시작했고, 네이선 프라이스도 자연스레 이들의 대열 가운데 들어간다. 당연히 군종병으로. 그러나 어떤 여유였을까? 물론 하느님의 뜻이겠지. 네이선은 애초 약속했던 군종병이 아니라 전투원으로 배치되어 필리핀의 한 섬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일본군의 집중포격을 당했으며, 이 와중에 머리에 파편이 박혀 우왕좌왕하다가 일본군의 돼지우리에서 하룻밤동안 까무러쳐 있었다. 다음날 백퍼센트 운이 좋아, 다른 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해변에 도착해 벌판을 비틀거리는 걸 미군 초계정이 발견, 구조될 수 있었다.
이후 야전병원에 들어갔고, 쾌활하게 신혼의 아내 올리애너에게 편지도 보내는 등 정상 상태를 보이지만 문제는 같이 상륙한 병력의 적지 않은 병사들이 죽었고, 부상자를 포함한 많은 동료들이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태평양전쟁 당시 가장 악명 높았던 “(포로수용소까지)죽음의 행진”을 하는 동안 포로 전원이 질병과 구타와 기아로 죽거나 살해당했다. 동료 병사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상세하게 알게 된 네이선 프라이스는 퍼플 하트 훈장을 가슴에 단 채 석 달만에 제대하고 다시 침례교 목사로 돌아와 이제는 거의 완벽한 기독교 원리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일체의 타협과 양보를 불허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itself.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일 수 있겠지.
네이선이 얼마나 독실한지. 그는 백일 만에 다시 만난 젊디젊은 아내와 더블 침대에 올라도 품에 안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이는 하느님이 원하는 바가 아닌 걸? 저수지에 물이 자꾸 흘러 들어오면 넘치는 걸? 그리하여 가끔, 저수지가 넘칠 때만 아주 가끔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고, 그때마다 주님이 주신 놀라운 생식력으로 맏딸 레이철, 일란성 딸 쌍둥이 리아와 에이다, 그리고 막내딸 루스 메이를 낳는다. 아이들 엄마 올리애너가 생각하기에도 네 명의 딸은 그들의 동침 회수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아이들이었다 하니, 뭐 알만 하지?
맏이, 눈부신 금발의 어여쁘기만 한 돌머리 레이철은 자기 몸 꾸미고, 예쁜 얼굴을 더 곱게 치장하는 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일란성 쌍둥이 레이와 에이다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영재로 판명이 나는 바람에 1학년짜리가 4학년 과정을 듣는 놀라운 두뇌를 보이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자 얘네들 아빠인 네이선 프라이스는 딸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키는 건 천하의 바보짓이라고 여긴다. 둘 가운데 에이다는 세상에 나오기 전, 태중에서부터 뇌의 절반이 없어 반신불수의 몸으로 나와 말도 어눌하게 밖에 할 수 없어 스스로 말하기를 중단해버렸다. 같은 영재이며 쌍둥이 언니 레아는 레아 대로 엄마 뱃속에서 자기가 에이다의 것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에이다가 장애아가 되었다는 일종의 부채감을 가진 채 남은 길고 긴 삶을 살아야 할 팔자이다. 막내 루스 메이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어린 시절이라 ‘포유류 진화의 결과’ 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가장 큰 애정을 받으며 산다. 물론 그렇게 살 수 있을 때까지. 중요한 출연자이자 화자인 에이다의 중요한 사고 가운데 하나가 누가 엄마의 선택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별볼일 없는 침례교 목사인 네이선 프라이스는 검은 대륙 가운데서도 가장 검은 대륙이며 일찍이 폴란드 출신 영국 작가로부터 “어둠의 심연”이라는 별칭을 얻은 벨기에령 콩고에 들어가 식인 습성이 남아 있을 정도의 야만과 잡신들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의 복된 말씀을 전하겠다는 불타는 소명의식에 함몰, “여호와께서는 주의 자비로운 천사들, 신성한 사자들의 모습으로 롯의 죄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섬을 찾아”간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그래서 갔다. 조지아주 베들레헴에서 케이크믹서기를 들고 아내와 네 딸들과 함께. 선교 기간은 1년으로 딱 정했다. 1년의 시간은, 만일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선교사와 선교사 가족들이 완전히 미칠 수 없는, 어느 정도만 미칠 수 있는 기간이라서. 그만큼 오지이며 험지라는 뜻이겠지. 전임 선교사 파울스 형제는 6년간 그곳에 머물렀는데 집안 일을 해주는 마마 타타바와 앵무새 므두셀라만 남기고 홀연히 밀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후 미국의 선교 재단은 후임으로 반드시 가족 전부가 이주해 선교사의 심신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게 해야 하며 1년이란 선교 기간도 말뚝을 박아 버렸던 거다. 이해하시겠지?
그리하여 콩고의 레오폴드빌 공항에서 내리니까 현지 선교의 책임자 언더다운 목사와 부인이 가족에게 모기장을 선물했고, 다시 더러운 복장을 한 이벤 액셀루트 기장이 모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킬랑가 마을에 당도한 가족. 첫날 원주민들이 염소를 잡아 털도 다 뽑지 않은 고기를 구워 만찬을 베풀어주었지만 딸들은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역겨운 것이었으며, 물로 나중엔 구경도 하지 못할 진수성찬이 될 터이지만, 삼키지 않으면 맞을 줄 알라는, 태어나서 한 번도 얻어맞은 경험이 없는 엄마한테 이런 협박까지 받은 네 딸들. 당연히 아빠한테는 여차하면 줘 터지길 밥 먹듯 해지만 말이지. 이후 이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광신적 침례교 목사와 킬랑가 마을 주민들,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은 모두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갈 것이니 굳이 이 자리에서 소개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렇게 흘러간다. 다만 1년 후, 콩고는 벨기에에서 독립해, 콩고 안의 모든 백인들이 살 길을 찾아 콩고 탈출을 감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광신적 원리주의자인 네이선 프라이스 목사만 결코 오지 않을 후임 선교사가 도착하기 전까지 킬랑가 마을을 지키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목사와 가족들에겐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기는 한다. 뭐 소설이니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크게 봐서 에필로그일 수도 있는 적지 않은 분량의 5권 출애굽기. 그걸 꼭 썼어야 했을까? 바버라 킹솔버가 뭔데 남의 나라 독립 후의 상황을 소설로 쓰느냐는 말이지. 콩고민주공화국의 문제는 그들에게 넘겨주거나, 철저하게 그들의 시각으로 쓰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백인, 그리고 콩고에 가해를 입힌 미국인의 입장에서 뭔가 할 말이 있었겠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을. 하긴 자신이, 조국이 평생 가해만 해봤지 당해본 적이 없으니 그런 걸 알기 힘들었을 거다.
적어도 2부로 만들어 출애굽기, 즉 가족이 콩고를 탈출한 이후의 이야기는 다른 한 권으로 편집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저 앞에서 얘기했듯, 그건 철저하게 작가의 권리니까 독자인 나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이유도 없고, 권리도 없다.
좋은 책인데 품절이다. 출판사 RHK가 가끔 이런 얄미운 짓을 한다. 중쇄를 찍든지, 판권을 다른 출판사에 넘기든지 해야지 이런 책을 독자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건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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