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사라졌다 알마 인코그니타
기욤 로랑 지음, 김도연 옮김 / 알마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기욤 로랑은 1961년 11월에 북 프랑스 앤 지방의 생캉탱에서 출생한 시나리오 작가, 배우, 소설가이다. 2003년에 프랑스 영화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인 상드린 보네르와 결혼해 딸 아델을 낳고 2015년에 이혼했다. 이게 로랑에 관해 알려진 사생활의 전부이다. 장 주네와 협력해 영화도 찍고, 2002년에 첫 소설 <세월의 창>, 2006년에 <내 몸이 사라졌다>를 출간했다. 다수의 시나리오를 썼고, <내 몸이 사라졌다>는 영어 제목 <Happy Hand>로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 대박은 아니더라도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그랑프리 등 몇 개의 상을 받았다.

  원래 직업이 영화 관련이다. 상상력도 애초 문학으로 시작한 사람들과 방향을 달리한다. “내 몸이 사라졌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죽어 땅에 묻혔다? 그럼 사라지지는 않았다. 땅 속에 있기는 하니까. 화장을 하면 사라진 걸까? 매장의 경우보다 확실하게 많이 사라졌지만 뼛가루와 임플란트나 혹시 관절에 박혀 있을 지도 모르는 볼트 너트는 남을 거 아닌가? 그러면 어떤 경우에 내 몸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걸 탐구해보자.


  주인공 이름은 나우펠이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태어났다. 라바트 대학에서 고전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 부모는, 나우펠이 열두 살이 될 때까지 프랑스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시키려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머리가 나쁘지 않은 나우펠을 이런 환경에서 키우다보니, 열한 살 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이민을 결정한 부모를 따라 졸래졸래 따라간 프랑스의, 새롭게 전학한 프랑스 학교 아이들 수준에서 라블레나 볼테르, 거기까지 아니라면 적어도 위스망스 수준이라, 이 아이가 단박에 학급에서, 차원을 넓혀 학교 전체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거 아냐? 그래도 모로코에서는 부모가 다 대학 교수를 하고 있었으니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고 있었을 터인데, 이민 온 지 2년 만에 나우펠의 부모가 사이좋게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 큰 자동차 사고의 한 가운데 끼어 금슬도 좋지 둘이 한꺼번에 별로 고통도 없이, 갔다. 졸지에 고아가 된 나우펠. 다행스럽게 어진 이웃이 있어서, 원래부터 나우펠더러 가지고 놀라고 1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하던 전시 측량 키트를 선물했던 적이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학년을 마칠 때까지 함께 살면서 돌봐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뿔싸, 나우펠의 성장이 부모가 갑자기 죽고 나서부터 갑자기 멈춰버렸다. 이후로 많은 사람이, 매번 그랬던 건 아니고 자주 나우펠더러 나프나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른의 성숙함이 열두 살의 몸에 갇힌 난쟁이 나프나프.

  그러나 출신이 모로코. 고아가 된 친척 아이를 나 몰라라 남의 집에 맡기는 것을 수치로 아는 나라. 나우펠 앞에 가문에서 유일한 무신론자 사미르 외삼촌이 등장해 조카를 포르트드뱅센 근처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옆집에 살던 선한 사마리아 아줌마는 어쨌냐고? 그걸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단역의 설움이 다 그런 거지 뭐. 외삼촌의 집에 갔더니 사촌이 둘 있다. 사촌 형 압데라우프. 동네에선 그냥 라우프라고 부르는 골목의 왕초다. 특히 살아있는 생명체에 불을 붙여 불에 타 죽는 모습만 보면 흥분해 어쩔 줄 모른다. 모르긴 해도 그때마다 사정을 했을 거 같다. 이런 라우프를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될 성 부른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아니나 다를까, 라우프는 점점 자라 동네를 넘어 일대에서 가장 큰 조직의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두목이 된다. 그러니 열두 살의 몸을 지닌 헛똑똑이 나우펠이 마음에 들었겠어, 안 들었겠어?

  사촌동생 세에라자드는 또 이게, 나우펠이 보기에, 자기의 주관적 관점을 버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봐도, 세젤예 자체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 터. 세에라자드가 나타날 때마다 말을 더듬더니 매사에 자신감마저 잃어가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에 관심이 없던 술고래 사미르 삼촌은 자기 마음이 내킬 때만 택시 운전을 해서 돈을 벌었는데, 술을 잔뜩 마시고 택시 영업을 하다가 크게 사고를 내는 바람에 교도소에 3개월 동안 들어갔다 나왔다. 출소 후에는 정신을 차렸는지 약물치료센터에 입소해 알코올 중독에서 정말로 벗어났고, 이후 은밀히 활동하는 시아파 회교 지도자 아야툴라가 됐다. 이후 외삼촌은 수염을 기른 극단주의자이자 극빈자 생활보호대상 수급자, 이맘의 수습생이 되어 이슬람 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자식들과 조카를 코란의 교훈에 따라 교육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애를 쓰기 시작했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벌써 처녀 딱지를 떼버린 지 오래인 세에라자드는 더 이상 불의에 휩쓸리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집콕 대상자로 점찍었으며 만일 외출을 할 경우엔 나우펠에게 샤프롱의 책임을 지우게 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서둘러 목타르라는 이름의 합법적 납치자, 신랑으로 선정해 그에게 보내버렸다.


  사촌의 패거리가 이웃의 토고 출신 열네 살 먹은 소녀를 윤간하려고 하는 걸 보고 나우펠이 곧장 경찰에 전화를 해 봉변을 피한 적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패거리가 아니지. 그들은 나우펠을 붙잡고 물을 끓이더니 그걸 머리 꼭대기에서 쏟았다. 전신 2도 화상을 입어 3주 동안 입원했다가 나오니까 삼촌 사미르는 그를 그리스인 목수 필리파르가 주인으로 있는 7층 꼭대기의 작은 방으로 보내 버렸다. 며칠 살다가 월급에서 집세를 바로 공제하기로 하고 목수의 도제로 들어갔다. 어차피 집은 나우펠에게 우울한 장소일 뿐이고, 알고 보니 집주인 필리파르 씨가 사람이 괜찮아 목수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이웃 소녀 아미나타가 강간을 당한 후에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이 벌어진다. 나우펠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은 이 사건이 누구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인지 다 안다. 다만 가해질 폭력이 무서워 입을 떼지 못할 뿐이다. 사건 며칠 후, 경찰이 나우펠을 찾아왔다. 저번에 윤간당하려는 토고 소녀를 구해준 적이 있으니 당연히 참고인 조사차 온 거겠지. 왜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윤리의식을 가진 나우펠은 예전에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한다. 결과는? 3개월 후에 법원으로부터 운명의 소환장이 도착하고, 증인으로 출석했으며, 경멸하는 표정으로 피고인 석에 앉은 사촌의 눈길을 받으며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착실하게 빼놓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결과는 압데라우프한테 12년 징역형을 선고한다. 다시 말해, 12년 동안 보복의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알았다. 법정에서 용감하게 증언을 해준 나우펠에게 희생자 아미나타의 엄마는 상아로 된 행운의 손을 선물하고 토고로 돌아갔다. 그리고 상아로 만든 작은 행운의 손은 누군가가 훔쳐갔다.

  몇 달 후, 여전히 목수일을 배우고 있는 나우펠. 이젠 도제가 나우펠 하나였다. 하루는 나우펠 또래 혹은 한 두 살 많아 보이는 청소년이 와서 하루만 일을 시켜달라고 필리파르 사장한테 사정을 했다. 그래서 다른 일은 시키지 못하고, 예전에 사촌 라우프가 아주 가끔씩 나와 하던 청소일을 시켰다. 나우펠이 보기에 수상했다. 하필이면 왜 이 목공방에 와서 일을 하려고 할까? 혹시 라우프 일에 대해 보복을 하려는 건 아닐까? 며칠 전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다. 당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우프. 그래도 작업은 작업이니까 일을 계속하긴 하지만 속도도 나지 않고 작업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다 회전날에 나무를 자르는 일을 해야 할 시점이 왔고, 나우펠은 평소 같으면 단번에 능숙하게 처리했을 터인데 더욱 조심스럽게 멈칫, 멈칫거렸으며, 한 순간, 청소를 하던 아이가 나우펠을 슬쩍 민 것 같았는데, 순간, 그의 오른손이 회전하고 있는 날 아래로 쑥 들어갔고, 동시에 일각의 늦음도 없이 나우펠의 몸에서 다량의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와 아픈 것도 모르고, 멍하니 필리파르 사장을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제 손이 잘라진 것 같은데요.”

  청소하던 소년은 자신이 구급차를 불러오겠다고 달려 나가 시간을 쓸데없이 소모했으며, 전화를 하고도 교통체증 때문에 구급차가 늦게 오는 바람에 잘린 손의 첨단 부분이 점점 괴사하기 시작해 나우펠은 남은 일생을 오른손을 잃은 상태로 살아야 할 운명을 만나게 된다. 나우펠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씀.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오른손 입장에서 생각해보시라. 이런 경우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어, 내 몸이 사라졌다!”

  내 몸을 잃어버린 오른손이 내 몸을 찾아 파리 구석구석을 뒤지는 이야기. 걱정하지 마시라. 이 책의 영어 제목이 <Happy Hand>이니.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esum 2024-09-18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볼까요? 정해주세요…

Falstaff 2024-09-19 06:23   좋아요 1 | URL
윽. 추천하기는 좀 주저하게 되네요. 도서관에서 빌려읽으시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