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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걸려온 전화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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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워낙 존재감이 커서 새로 출간하는 책마다 족족 찾아보게 만드는 작가다. 이번엔 제대로 잡았다. 《잘못 걸려온 전화》는 애초에 수상해서 크리스토프의 다른 책을 검색해봤더니 현대문학, 지혜정원을 거쳐 세번째 출판사인 까치로 와 제목을 다시 단 복제품이다. 다시 번역한 것도 아니다. 세 권 다 용경식이 번역했고, 모두 스물다섯 편의 장편소설, 길게 쓴 거 말고 손바닥만해서 손바닥 장掌자를 쓴 초단편, 장편掌篇소설을 실은 것까지 똑같다. 현대문학과 지혜정원에서 낸 책은 140쪽, 까치에서 나온 《잘못 걸려온 전화》는 150쪽으로 페이지 수만 다르다. 가격도 다르다. 현대문학 8천원, 지혜정원 만원, 《잘못 걸려온 전화》 14,500원. 당연히 《잘못 걸려온 전화》는 대단히 널널한 편집으로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한 시절 좌파 선봉에서 사회과학 서적 출판에 열을 올리던 그 까치가 맞다. 근데 성이 “조”씨였나 보다.
스물다섯 편의 장편소설에 총 페이지 수가 150. 그러면 한 편당 6쪽의 분량이다. 근데 문패가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열아홉 줄, 한 줄에 스물여덟 자. 좋다. 하드웨어가지고 시비하지 말자. 근데 별점은 세 개 반 이상은 못쳐주겠다. 이것 가지고도 시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서 출생해,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목격한 후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고, 스위스로 들어가 살면서 시계공장에 다니며 목구멍이 풀칠을 했다. 5년이 더 흐른 후에 새삼스레 대학에 입학해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기에 이른다. 헝가리 민주화운동이 있던 1956년부터 작가가 된 후에도 크리스토프는 아마도 틀림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어딘가에 끼적이기 시작했을 것이고, 언제부터인가 그것들을 한 노트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중에 한 작품이 되기 위해 숙성중인 짧은 이야기들을 초단편 모음집으로 내기를 희망했을 터이며, 그래서 책 한 권으로 내 가외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이 책 《잘못 걸려온 전화》를 읽으면서 그런 의미로 아쉬웠다. 여차하면 살을 조금 더 붙여 한 편의 작품으로 나올 수 있을 만한 것들이 그저 짧고도 짧은 이야기 하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하긴 이 짧은 이야기, 널널하게 만들어도 다섯 페이지 분량이 채 되지 않지만 작품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당연하지. 짧아도 개별적 작품이다. 독자인 내가 아쉬울 뿐이지.
작품들은 대개 그로테스크하고 의사 불통의 상태이다. 이미 죽어 있거나, 유령이거나, 죽어가는 상태일 수도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도중 혼선으로 인한 각자 오해의 과정에 있을 수도 있다. 애초부터 세상에 선한 것이라고는 없었으며, 있다 해도 다 제각각 바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 돈이 됐건, 내 바라지였건, 내 몸이 됐건 간에. 그래서 참 알뜰하게 아고타 크리스토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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