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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에서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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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대했던 오스만 제국에도 어느덧 황혼이 내린다. 오랜 세월 유럽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오스만 제국은 선대 정복 황제가 쌓은 영광과 호사에 취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들불처럼 번진 산업혁명을 외면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대항해 시대부터 유럽 열강이 전 지구를 식민지화 하기 시작한 건, 당시 오스만제국이 동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인도 서쪽에 이르는 방대하고 방대한 영토, 그것도 석유 생산지역 거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제 비로소 오스만과 비슷한 수준이 된 것 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과학의 세기”라고 불린 19세기가 되었건만 세계적 흐름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은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바야흐로 모든 질서가 뒤집혀버린 것을 오스만제국은 모르고 있던 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학이 돈을 위해 복무할 때 과학 스스로도 가장 빨리 발전하며,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제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전쟁이어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음만 먹으면 적어도 오스트리아 빈까지는 우습게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자만에 취해 있던 오스만제국은, 이제 놀라운 군비를 갖춘 유럽 열강들이 보기에 식탁에 오를 준비가 된 암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제국의 황제들이 몰랐을까? 몰랐을 것이다. 알기는 해도 실제 격차가 그렇게 많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1855년, 제32대 황제 압둘아지즈는 황태자와 두 조카와 함께 나폴레옹 3세의 초대에 응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참석해 유럽 각국의 기계공학을 실제로 체험하고 경악을 했을 것이다. 박람회에 오스만제국이 자랑스럽게 출품한 품목이란 그저 카펫, 촛대, 실크 제품, 금은으로 수놓은 보자기, 기도용 깔개, 터키 커피와 긴 담뱃대 같은 기호품 수준이었으니. 만일 이런 차이를 알았다 하더라도, 복잡한 민족 구성과 이슬람과 쿠란의 계율 같은 것이 유럽의 과학, 기술을 오스만제국 안에서 개화할 기회를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쥴퓌 리바넬리의 의견인 것처럼 읽힌다.
유럽, 이 가운데서 열강이라 할 나라엔 이미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던 독재 공포정치가 오스만제국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황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배반, 반역을 도모하고 있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았고, 배반자, 반역자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외의 모든 신하, 지방 군벌, 백성, 심지어 친척과 자식들까지 의심하고, 사찰해 그들을 색출해 먼저 처단해야 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영토 밖에 나가 파리 만국박람회에 이어 영국까지 방문해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고, 선진문물을 견학했으며, 시시각각 위협으로 접근해오는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는 의의를 전한 압둘아지즈 황제도 1876년에 결국 신하들에 체포되어 두 손을 잘린 후 출혈과다로 죽음을 맞았다.
이 정변을 주도한 장군들은 선황제인 31대 압둘메지드 1세의 큰아들이자 폐제 압둘아지즈의 장조카인 무라드 5세를 33대 황위에 올렸다. 유럽 신사 자체이며 빼어난 미남이었던 무라드 5세는 그러나 마음이 약해서 그랬는지, 삼촌이 양 손목이 잘려 죽는 것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 불과 몇 달 만에 폐위되고, 무라드의 동생이자 <호랑이 등에서>의 주인공이자 오스만제국의 34대 황제인 압둘하미드 2세가 제위에 오르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미탓 장군은 청년 하미드에게 제위에 오르는 조건으로 영국과 비슷한 입헌군주제를 시행할 것을 약속하게 한다. 하미드 입장에서는 당연히 약속할 수밖에. 안 그러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칼 또는 비단 실뭉치 가운데 어떤 것이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즉위하자마자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발칸반도의 패권을 넘겨준 압둘하미드 2세는 헌법을 제정하기는 했으나 1877년 곧바로 이를 폐지하고 자신을 제위에 올려준 미탓 장군을 체포해, 죽이지는 않고, 저 멀리 타이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지역 한 원격지로 유배를 보내고, 그곳 수용소 소장이 알아서 목 졸라 죽이게 한다. 오스만제국에는 이미 황혼이 내린 상태. 1881년엔 제국의 영토인 튀니지가 프랑스에 점령당하고, 이집트는 영국 영향권에 드니 이때 구 오스만 식민지 사람들의 피폐상을 그린 작품이 레바논 사람 아민 말루프가 쓴 <타니오스의 바위>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길도 보이지 않는 제국의 끝 무렵에 황제에 오른 압둘하미드 2세는 1876년부터 무려 33년간 황제의 위를 지킨다. 특히 황제 암살과 쿠데타의 이력이 화려한 오스만제국 같은 나라에서 황제 자리에 있다는 건 호랑이 등을 타고 앉은 것과 같다, 라고 리바넬리는 말한다. 가장 용맹한 맹수의 등에 걸터앉아 세상을 호령하는 황제. 피와 살과 뼈를 분쇄하는 가공할 힘과 무기를 장착한 맹수의 근육을 다리 아래에 감각하면서도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내려설 수 없는 자리. 등에서 내리는 순간 여태 타고 있던 맹수는 그 독한 송곳니를 사정없이 목덜미에 꽂을 것이라서. 이런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던 압둘하미드 2세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리를 지켰고,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의 희생만을 불렀을 뿐이지만, 다민족국가의 복잡한 신하, 의회, 장관의 행위를 모두 관여할 수 없었다. 책임도 오롯이 져야 했던 건 물론이다. 압둘하미드 2세 치하의 젊은 장교들은 황제를 “피를 토하게 만들고 숨을 틀어 막았던 잔인하고 흉포한 흡혈귀”라고 불렀으며, 프랑스 사람 알베르트 반달은 황제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흐르게 만들었다고 별명을 “붉은 황제”라고 지어 신문 삽화에 게시했다. 이외에도 황제의 별명으로 피의 황제, 붉은 이교도, 아을드즈 궁전의 올빼미, 악마의 영혼 등 다양했다.
테살로니키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된 연합진보위원회는 1908년에 혁명을 일으켜 헌법을 부활시키고, 1909년 4월 27일에 압둘하미드 2세의 이복동생인 메흐메디 5세에게 제위를 이양하게 만든다. 폐위의 사유는 “이슬람을 해쳤고, 무슬림이 무슬림을 죽게 했으며, 이슬람 율법서를 금지했다”고. 전 이슬람 세계의 칼리프이자 누구보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그에게.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4월 28일에 압둘하미드 2세는 큰 키에 사슴 같은 눈을 한 체르케스 출신 미녀들로 구성된 다섯 명의 아내와, 세 공주,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밤열차를 타고 혁명군의 근거지인 테살로니키의 옛 로빌론 장군의 숙소건물인 알라티니 저택에 감금되면서 장편소설 <호랑이 등에서>를 시작한다. 그렇다.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느라 오늘의 독후감 전부를 사용했다.
나라고 튀르키예의 근대사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아밀 말루프의 작품 <타니오스의 바위>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뇌활동에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오스만제국과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운 조선이라는 나라의 고종이 읽는 내내 떠올랐다. 나라와 사직은 급속도로 몰락을 향해 달음박질하는데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신하들은 통제가 되지 않으며, 곳곳에서 배반을 도모하고 있는 지경.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행위는 그들이 했을지언정, 책임은 오직 한 명, 최고 통치자가 지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 책, 재미있다. 그렇지만 수작 <세레나데>를 읽은 독자들은 쥴퓌 리바넬리를 판정하는 기준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그것에 비견하거나 능가하지 못하는, 못하는 것처럼 읽히는 작품을 상찬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쥴퓨 리반엘리”가 쓴 <살모사의 눈부심>을 먼저 읽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아쉽게 아마 절판일 걸?) 오스만제국의 황위 세습과 이에 관련한 관습법, 하렘의 구성 같은 것을 이해하는데 특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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