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힘 설킴 부클래식 Boo Classics 69
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박광자 옮김 / 부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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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년에 가난한 약사의 아들로 독일 노이루펜에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군 입대를 하기도 했고 약 5년간 약사생활도 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전업작가로 나섰다. 서른여섯 살 때엔 정부 부속 통신사에서 특파원으로 3년간 영국에 살면서 스코틀랜드 등을 여행하고 훗날 스코틀랜드 여행기도 출간했다. 독일의 마르크 브란덴부르크를 여행한 다음에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여행기>도 출간했으니 문학도 했겠으나 주로 여행기, 전쟁기 같은 르포르타쥬에 힘을 기울였다. 첫 소설은 쉰아홉 살 때인 1878년에 <폭풍 이전>을 발표한 것으로 친다. 오늘 독후감을 쓰는 <얽힘 설킴>은 69세 때, 대표작 <에피 브리스트>는 76세 때 출간했고 78세에 눈을 감았다. 쉰아홉, 우리 나이로 예순에 데뷔해 세계문학전집에 나오는 사람도 있으니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나이 탓하지 말고 도전해 보시든지.


  <에피 브리스트> 같은 경우엔 작 초반에 복선을 너무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의 결말이 어느 방향으로 날 지 거의 확실하게 짐작한 상태로 읽어가게 되는데, 더 허무한 건, 예상한 대로 작품이 풀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숙명여고 다니던 복선이라고 있었다. 걔가 <얽힘 설킴>에도 너무 자주 나온다. 청파동 살았었다. 언제 독일 마르크 브란덴부르크까지 이사갔댜? 거 참. 근데 <에피 브리스트>에선 결정적 복선이 나와 다른 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반면, <얽힘 설킴>의 복선이들은 그대로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사실 오래 전 소설들을 읽으며 독자가 즐길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구석에 숨어 있는 복선을 발견하는 일이다.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다가 결말까지 간 후에 아, 그래서 앞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구나, 하고 떠올리는 건 중하급의 수준이라고 지레짐작해 조금 까진 독자들은 악착같이 미리 복선을 알아차리고 싶어 눈알을 굴리면서 찾는 법이다. 그래봐야 나중에 잘난 척 한 번 더 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 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를 뭐 잘난 척하려고 찾는 인간만 봤니? 그것도 재미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실제로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얽힘 설킴>에선 정말로 딱 보면 복선인데(얘 복선아, 여기 숨었구나!) 나중에 보니 결말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많다. 나는 오히려 이런 발견 오류도 재미있었다. 초반에 복선이 심오해서 이거 (막 사람이 죽어 자빠지는) 너무 큰 비극으로 끝나는 거 아냐, 했다가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여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뭐 이럴 때도 있어야지.

  19세기 독일소설이면? 맞다 재미는 별로 없다. JTBC인가, TV에서 했던 토크쇼에서도 독일 패널이 발언하면 재미없다고 야유하던 출연자들 말마따나 이 프러시아, 독일 사람들은 하도 어려서부터 비슷한 교육을 받는 거 같다. 능률과 검약, 그리고 지긋지긋한 질서와 규율. 물론 이 가운데에서도 별종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작품의 주인공 보토 폰 리네커 남작이 그렇다. 아빠도 남작 출신, 엄마도 남작 집안의 따님. 체덴 성castle과 주위에 인접한 넓은 영지를 한 때 소유한 거부였지만 남작 아버님께서 유럽판 타짜한테 걸려 재산 거의 대부분을 통째로 날려 먹고 이제 전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험지만 조금 가지고 있는 데 불과하다. 더구나 채권자들이 점잖지만 양보하지 않을 태세로 채무 원금까지 갚을 것을 요구하고 이때마다 엄마는 득달같이 오빠, 즉 보토의 외삼촌에게 달려가, 오라버니 한 번 만 살려주시우, 사정사정을 하는 상태. 보토는 연 수입 9천의 근위 기병대에 근무하면서 연간 1만2천을 소비하는 생활을 포기하지 못해 날이 갈수록 쪼들릴 수밖에.

  애초에, 그러니까 보토네 가정이 체덴 성을 중심으로 무지하게 잘 나가던 시절에 보토의 부모는 엄마의 언니 젤렌틴 가문의 갓 낳은 딸 케테와 약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케테는 20대 중반의 꽃보다 더 아름답지만 머리통은 텅 빈 아가씨가 되어 온갖 곳에서 청혼이 쇄도하는 가운데, 보토에게 하루빨리 결혼이든 파혼이든 결론을 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케테 아가씨와 결혼만 하면 젤렌틴 가문에서 현금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와 폰 리네커 남작 집안의 부채는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보토는 케테와의 결혼은 생각해본 적도 없으며 사랑하지도 않는 상태라서 여전히 그저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고 있었다.

  1870년대의 어느 날 베를린 근교의 토론토 스트렐라우 강가에서 친구와 보트를 타고 뱃놀이를 하고 있다가 어여쁜 두 아가씨가 탔고 동생인 듯싶은 어린 남자 아이가 노를 젓는 배가 증기선하고 부딪혀 산산조각 나기 바로 전에 극적으로 그들을 구해주었다. 여기에 여주인공 막달레네 님프취 양이 타고 있어 젊은 남작이 한 눈에 반해버렸으니 비단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 아니라 막힘없고 거짓도 없고 밝은 기상과 맑은 정신과 똑바른 대화법을 익힌 소양 때문이기도 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들을 집까지 에스코트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레네 양은 머뭇거리지 않고 너무 멀어서 괜찮다고 대답했으며, 남작은 오히려 더 잘됐다고 맞장구를 쳐 레네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그날로 레네 양의 집을 방문해 나이 든 엄마, 사실은 입양한 의붓엄마인 님프취 부인과도 주인집 되르 부인과도 친목을 텄으니 진짜 읽어보시라, 남작이 상당한 수다꾼이었던 거다.

  이후 보토 폰 리네커 남작은 수시로 이 집을 들낙거리고, 레네 양과의 사랑 역시 그만큼 깊어져 딱 19세기 잘 교육받은 남녀한테 어울리는 속도로 친밀해지기 시작해 서로 만지고 키스하고, 드디어 1박2일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19세기 작품이라 한 장면도 나오지 않지만 독자는 당연히 했네, 했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랑하는 커플이 깊은 밤을 함께 지내게 되면 더욱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거라서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이다. 바로 이 행복의 정점에서 분위기 깨는 일이 벌어지니 남작의 군대 동료 세 명이 길거리 아가씨 세 명을 데리고 이들이 여행을 떠난 관광지에 들이닥쳐 완벽하게 분위기를 깨버린다.

  물론 이들이 아니어도 현명한 레네는 짐작도 하고 각오도 했었다. 가난한 평민의 입양한 딸이 남작과 결혼할 마음, 의도,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냥 잘 생기고 심성도 좋은 훌륭한 남자이자 남작 각하를 사랑해본 것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고 충분히 행복했던 것으로 만족한다. 그렇게 각오했다는 것이지 정말로 그렇다는 말은 아닐 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사랑을 택해 집안이 망가지든지 말든지 레네 아가씨와 혼인을 해서 평민 님프취 양을 남작부인으로 만들어? 아니면 전통있고 명망 높은 남작 가문의 영애 케테 젤렌틴과 결혼해 가문의 위기탈출은 물론이고 자신의 영원무궁한 복지 유지를 꾀해?

  나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던 평민 레네 아가씨와 애초에 인연을 만들지 않겠다. 레네를 진정으로 사랑한 보토? 진정으로 사랑했으면 처음부터 정을 붙이지 말았어야지 짜샤!


  이것으로 작품은 대단원을 맞지 않는다. 결혼을 한 다음에도 3년 이상이 더 흘러간다. 그러니 19세기 독일 소설 작품이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 보실 사. 비스마르크와 함께 전쟁 나갔다가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다고? 에이, 농담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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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4-02-02 1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구렛나루 느끼남이 거슬려요;;;

Falstaff 2024-02-02 13: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당시엔 그것도 멋이었을 거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