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한 손 창비시선 297
고영민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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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는 고영민.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이리저리 지나다니면서 얼핏 시 몇 수도 읽어본 거 같다. 1968년 서산,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이다. 2002년에 이 양반이 시인으로 등단하는 바람에 축구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다는 농담도 들린다. 생긴 모습은 영낙없이 차도남이건만 시 읽어보면 완전히 논두렁이다. 시집이 나온 때가 2009년. 시인이 갓 사십대가 됐을 때. 그러니 그의 삼십대 후반의 생활과, 추억과, 그리움과, 회상, 그리고 노스탤지어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읽으면 읽는 즉시 장면이 눈 앞에 확 그려지는 시. 주장하는 것이나 말하고 싶은 풍경이나, 아니면 운율감이나 하여간 시로 형상/비형상화 하고 싶은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편한 시. 애초에 이해불가인 문장과 단어를 읽으면서 오직 하나, 시나 시인의 유명세 때문에 좋다고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에서 자유로운 시. 저 오랜 시절의 그림과 생활과 사람들을 회상하는 남루한 그림이라면 더욱 좋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낡아 누추하지만 뭔가 하나가 마음 속에서 부스러지지 않나? 나는 비록 도시 취향이지만 얼마든지 좋다.

  붉고 오종종한 작은 열매 앵두. 시인은 어느 날, 거리를 달리는 앵두를 발견하고 이렇게 노래한다.



  앵두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전문)



  예전 말로 다방 레지. <너는 내 운명>에서 스쿠터 타고 커피 배달을 하던 전도연 생각하면 딱이다. 여기서 나는 조심해야 한다. 이 시 어디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빨간 헬멧의 여성이 커피 배달을 하는 다방 아가씨라고 이야기를 했느냐, 라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한테 물어보면 이미 써서 발표한 것이라서 자기도 모른다고 시침을 뚝 뗄 것이다. 이미 품에서 떠난 ‘그녀’이니까. 하여간 독자인 나는 1연을 읽으면서 단박에 농촌 마을의 커피 배달하는 아가씨를 연상했고, 배달 아가씨의 결정판으로 전도연이 떠올랐으며, 유치장 철망을 흔들면서 오열하는 황정민이 참 기가 막혔지, 여기까지 진척시켰다. 그러니 일상적으로 곱지 않게 바라보는 커피 아가씨의 붉은 헬멧을 앵두도 딱 꼽을 수 있는 시선이 바로 시인의 눈길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에 처음 실리는 작품으로 이 시를 올려 놓았음에야.


  고영민 같은 서정시인을 읽다 보면, 이제 시어란 시어는 다 개발했기 때문에 시의 암호화와 메타포가 없이는 시를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시인들의 주장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그런 시절은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실린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는 제법 긴 시인데, 전문을 읽지 않고 따로 뚝 떼어 산문처럼 읽는다면 별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있으나 정말 평이한 단어와 문장만으로도 넉넉하게 그릴 수 있는 한 장면도 있다.


  눈이 왔다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너와 함께 걷는다

  목도리로 얼굴의 반을 가린 너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고

  말없이 다가와 팔짱을 끼워줬다

  나는 속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중략)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고

  새의 발자국 같은 흔적들이 그 위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부분)


  시집 《공손한 손》을 관통하는 정조는 위에서 말한 추억, 그리움, 회상, 그리고 노스탤지어다. 이상향은 아니더라도 마음 속에 깊게 담겨 있는 어릴 적 들판. 시집을 읽어보면 혹시 시인이 아직 농촌이나 농촌을 면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파트가 아닌 개인주택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추측도 가능하지만, 천상병 문학상을 받은 2020년 현재 포철교육재단에 근무하고 있다니까 위도 높은 순으로 인천, 포항, 광양 가운데 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속에 이런 풍경을 담고 있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태생적 시의 재산으로 얼마냐는 말이지.



  허밍, 허밍



  해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논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질녘 통통통 경운기 짐칸에 실려가는

  저 텅 빈 아낙들은 무언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오는 저 굽은 불빛은 무엇인가


  해질녘 주섬주섬 젖은 수저를 놓는

  손

  수레국화 옆에서 흙 묻은 발목을 문지르는 저 고단함은

  해질녘 내 이름 석 자를 적어온

  이 느닷없는 통곡은 무엇인가


  해질녘, 해질녘엔

  세상 어떤 것도 대답이 없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나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해질녘엔 그저 멀리 들려오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허밍, 허밍    (전문: 3연 아낙들은 “무언”입니다. “무엇”의 오식 아닙니다.)



  시집 한 권 읽고 외우고 싶은 시 두 수를 발견하면 팔땡이고, 세 수 이상이면 대박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손한 손》은 대박이다. 소설 속에서는 대개 아버지들이 가족의 괴물인데, 시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시집에서도 아버지와 관련한 어여쁜 광경이 몇 군데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어느 순간, 무거운 세상을 저버린다. 어쩔 수 있나, 인생인 걸. 어려서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시인에게 아버지가 밥 한 술을 씹지 말고 꿀꺽 삼키라고 했듯이 이제 시인이 목에 가시가 걸린 딸 아이에게 밥 한 술을 꿀꺽 삼키라고 밥상머리에서 말하고 있는 시도 정겹다. 이런 것을 다 소개하고 싶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져 애써 참아야 하는 것이 아쉽다. 다만 이런 시.



  해감


  민물에 담가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번을 소리쳐 부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 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몸 속에 새겨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르렁, 그르렁 입가로 한움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 안쪽에 헐겁게 담겨 있었다 짠물을 걸러내며 당신은 물무늬 진 사구를 온몸으로 기고, 몸을 잊으려 한쪽 눈을 마저 닫자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울컥울컥, 검은 모래가 걷잡을 수 없이 토해졌다 나는 당신의 손을 움켜쥔 채 더 깊은 물밑까지 따라들어갔다 여윈 갈빗대에서 해조음이 들려왔다 어느 순간, 이제 오지 마라! 따라오지 말라고 이놈아! 당신의 불호령을 들었다 두꺼운 껍질 밖으로 나는 움찔, 한순간 떠밀려나왔다 패각을 움켜쥔 채 꼭 사나흘만 더 묵고 싶다던 당신의 늙은 아내가 밀려나왔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몸 밖으로 검은 해변을 푸득푸득, 싸놓았다 지끄럽던 한 생애가 말갛게 비워지고 있었다   (전문)



  그렇게 가는 거지.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고. 이 시집 이후에도 고영민은 각종 문학상을 수집하며 계속 시집을 내고 있다. 또 읽어야겠다. 어째 요즘엔 충청남도 출생 시인들을 많이 읽는다. 대전 사람 고 윤택수, 홍성 출신 이정록, 이번엔 서산의 고영민까지. 출생이 어디면 어떠냐, 시인이 시만 좋으면 대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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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1-15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시인이랍니다.

Falstaff 2024-01-15 08: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