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위가
전예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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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예진은 스물여덟 살 때인 2019년에 <어느 날 거위가>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며칠 후면 5년차에 접어드는 작가.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눈썹을 휘날릴 시기렸다? 책에는 데뷔작부터 2021년까지 쓴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렸다. 지금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으며 올해 2023년 말이나 늦어도 24년 초까지는 완성하고 싶다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ARKO 문학나눔 관련 영상을 통해 말한다.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도 ARKO 문학나눔 책으로 동네 도서관 신간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해서, 솔직하게 말하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신진작가의 책이라 읽었다. 문지에서 나온 신인들 책이 읽어볼 만하다. 이번에도 기대를 갖고 열람실로 올라갔다.


  제일 먼저 나오는 단편의 제목이 <팬티>다. 그래, 그래. 바지를 뜻하는 팬츠 말고, 소위 ‘빤쓰’라 불리기도 하는 그 ‘팬티’ 맞다. 2019년에 잡지 『Axt』에 실렸던 작품으로 데뷔작을 빼고는 가장 먼저 발표한 것처럼 보인다.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의 작품이 제일 앞에 실렸기도 하고, 다중의 눈길을 끄는 제목인 것도 맞아서 그런지 이 책을 소개하는 여러 서평을 봐도 <팬티>를 먼저 거론하는 것들이 많다. 어떻게 됐느냐 하면, 나무에 팬티가 걸려 있는 설치미술과 관련한 이야기다. 여기에 이제 노령에 접어들려고 하는 강상미라는 이름의 여성이 끼어든다. 모 광고회사의 부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강상미는 적지 않은 수의 늙은이들이 그러하듯이 젊은이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안의 나뭇가지 가득 팬티가 걸려 있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옆집 103호 30대 여성은 스트링과 망사팬티에만 불만이다. 이 두 팬티가 여성의 성 상품화와 깊게 관련이 되어 있다면서. 나중에 보면 정작 자발적으로 망사 팬티를 걸려고 하는 여성은 전혀 그런 뜻도 없지만.

  이렇듯 책에 실린 전예진의 작품 모두 메타포다. 전방 위수지역에서 닭을 튀겨 파는 치킨집 주인은 군부대로 배달을 나갔다가 성인 네 명이 삶아 먹어도 남을 큼지막한 거위로 변신metamorphosis한 장준태 병장과 이현우 상병을 데려왔다가, 거위가 닭튀김을 얼마나 잘 먹는지, 별 해괴한 일을 겪는 이야기(어느 날 거위가). 기획팀장으로 성격을 조금 까칠하다는 평가가 있으나 몇 년 일 하나만큼은 잘하고 있던 유귀동 차장은 경영진이 바뀌면서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룹의 한 명으로 지금은 1층 로비의 그림 속 여인으로 역시 변신해 있다(점심 같이 먹을래요?). 오빠 김수민은 어려서부터 소아비만으로 진단을 받더니 이후 체형이 조금씩 바뀌어 드디어 고래로 변신해 바다로 떠나 연락이 없고(숨통), 우울한 미래의 어느 날엔 해수면이 치솟아 모든 아파트 건물은 방수처리를 했어도 아파트에 따라 5층, 7층까지는 물 속에 잠겨 있는데 고모는 불법으로 잠수 배달운송을 하기도 한다(우리 집에 놀러 와). 돈도 잘 버는 데다가 요리실력도 좋은 친구 집에 연어회를 사가지고 늦게 도착한 호진은 팔, 다리, 나중엔 목이 뎅거덩 부러지는 좀비로 변하고 만다(좋아질 거예요). 부모가 날이면 날마다 격렬한 부부싸움을 하다가 드디어 이혼을 실행하려 하는 찰나에 할머니가 손녀들 데리고 동해안 바닷가 콘도미니엄으로 바람을 쐬러 가는 이야기인 <파도를 보는 일> 정도만 자주 읽은 순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독자는 조금도 쫄 거 없다. 전예진은 그래도 순한 맛의 메타포를 사용했다.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지금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하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 면에서 (2022년 기준) 작가의 17년 지기라고 주장하는 경기도 포천의 한 책방 주인 말마따나 “리얼리즘 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좀 어울리지 않지? 메타포와 리얼리즘이라니까? 그것도 선입견이다. 대부분의 문학 또는 예술 행위 자체가 메타포의 효과적인 활용일 수 있으니. (아쭈, 아마추어가 이렇게 막 말해도 괜찮은 거야?) 이왕 그러려면 전예진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편한 서술이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싶다. 나도 매운 맛은 좀 정도껏 매운 게 좋다.

  다만, 작품 속 등장인물이 변신하고, 변신하고 또 변신하는 바람에 책 뒤편으로 가면 뭐 그런가보다, 하는 마음이 된다는 점. 장편을 쓰고 있다는데 이번엔 어떤 변신을 만들고 있으려나, 싶어지는 거. 설마 변신이 전예진의 패턴은 아니겠지? 좋다, 장편 하나를 더 읽어보고 이이의 독자가 될지 말지 따져보겠다.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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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1-14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예진 거위랑 팬티 소설 흥미롭게 읽고 다음 소설도 궁금했는데 소설집 나왔군요. (친구가 행사한다고 저 작가 찾길래 나온 학과 염탐해서 과사무실로 연결해보라고 알려주기도,..온라인 흥신소)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더. 나아아중에…

Falstaff 2024-01-14 19:19   좋아요 1 | URL
아오, 굉장해요! 요즘 작가 프로필에서는 여간해서 학교, 학과, 출생 연도, 고향... 이런 거 찾기가 무지 힘들잖아요. ㅎㅎㅎ 정말 온라인 흥신소 어울립니다. 연두 게이샤 맛있더라고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1-14 22:15   좋아요 1 | URL
일단 가격이 착해서 가격 대비로 신선도가 좋죠 ㅋㅋㅋ 이 집요함을 어둠의 경로 말고 세상에 도움 되는 데 써야 하는데...글쎄 쓸데가 없는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