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희원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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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간 이 스트루가츠키 형제들의 발상은 별나다. 2016년에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읽고 단박에 팬이 되어 이후 <노변의 피크닉>, <신이 되기는 어렵다>, <죽은 등산가의 호텔>에 이어 이제 다섯 번째로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이 형제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외계 생명체의 지구 방문인데,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노변의 피크닉>으로 지구에 왔다 간 외계인들이 그냥 버리고 떠난 것들, 마치 지구 행성으로 소풍을 나왔다가 먹다 버린 김밥 쌌던 알루미늄 포일처럼 그냥 함부로 방치하고 떠난 쓰레기에 접근하는 지구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직접 외계인이 나와 눈사태를 일으켜 산장에 모인 사람들을 고립시킨 채 지구를 떠나는 <죽은 등산가의 호텔>도 근사했지만, 비행기에서 떨어트린 코카콜라 병을 주워 생긴 모습과 용도를 몰라 갖은 상상력을 발휘했던 <부시맨>이 바로 지구인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훨씬 흥미로웠다.

  봉급쟁이한테는 끔찍한 말이 될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는 내가 읽어본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외계 생명체와 관련이 없다. 한 명(단위가 좀 문제다 외계인을 세는 단위를 ‘명’으로 해야 하나 ‘마리’로 해야 하나?)의 외계 생명체도 등장하지 않고, 그들의 영향권에 있지도 않으며, 어떤 형태로도 통신 및 접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 이야기. 그러나 당연히 우리 같은 장삼이사 보통 사람들은 아니지. 글쓴이들이 당대의 문제아 스트루가츠키 형제들임에야 뭐. 이 책의 부제sub title가 “젊은 과학자를 위한 동화”다. 덧붙이기를, 여기서 말하는 ‘젊은 과학자’는 “호기심이 많고 과학적 활동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다, 즉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모든 사람들이 읽어도 무난하다는 뜻이다. “동화”라니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많고 많은 동화 가운데 주로 소비에트 연방의 동화를 가져왔다는 거. 아무리 러시아-소련이 유럽 국가이고 서구 특히 불독佛獨과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물론 안데르센이나 그림 또는 프랑스 동화가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압도적인 빈도로 얼어붙은 동토의 전래동화가 많이 나와서 아무래도 그쪽 방면에 취약한 우리가 자연스레 읽기엔 조금, 많이는 아니고 조금, 거추장스럽다. 이제 작품 속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레닌그라드의 젊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프리발로프는 때묻지 않은 자연의 풍광을 즐기기 위하여 경차 모닝을 렌트해 북쪽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솔로베츠. 실제 지명이다. 아르한겔스크에 있는 지역으로 스웨덴 영향권하고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이 1964년에 출간했으니 소련 시절이다. 이때만 해도 도로망이 좋지 않았는지 사샤(알렉산드르의 애칭)는 자갈 수준을 넘어 거의 바위 수준에 육박하는 돌길을 운전하느라고 녹초가 되어 있었는데, 사냥꾼 차림의 남자 두 명이 히치하이크를 하는 지라, 요즘엔 어림도 없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차를 몰고 가다가 걷는 사람을 보면 태워주는 것이 인정이라 고물차에 태웠다. 한 명은 솔로베츠 토박이인 매부리코 로만이고, 다른 하나는 무르만스크 출신의 턱수염 볼로댜. 놀랍게도 이런 시골에서 만난 두 사람이 다 석사학위 소지자다. 당연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알았다. 사샤는 자기 직업이 프로그래머인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 참, 이 둘이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지금 프로그래머의 도움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거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연구를 하는 중에 후에 컴퓨터라고 불릴 ‘전자계산기’의 디버그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며, 조건은, ① 먼저 인간이 된 프로그래머일 것, ② 자원할 것, ③ 기숙사에 사는 데 동의할 것, ④ 월급 120루블을 수락할 것이란다. 근데, 로만과 볼로댜가 사샤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가관이다.

  “저 친구 공간이동 시켜 버릴까?”

  “네가 무슨 소파sofa라도 되는 줄 알아?”

  공간이동? 어디서 들은 이야기지? 그렇다 벽난로에 플루 가루를 뿌리고 펑, 가루가 터질 때 연기 안으로 쑥 들어가면 단박에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 앞으로 갈 수 있는 거, 기억하시지? 바로 그 공간이동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사샤가 연구소에 입소하겠다 아니다 라는 말도 하지 않았건만 이들은 무턱대고 “니이차보 연구소” 산하 박물관인 “닭다리 오두막”에 사샤의 숙소를 정해버렸다. 그곳으로 순간이동을 시키자, 아니다 하고 있는 거다. 

  모든 독자는 알고 있다. 사샤가 니이차보 연구소에 들어가지 않으면 소설이 안 되는 것을. 그래서 결국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 도리가 없는 할머니 나이나 키예브나가 관리하는 닭다리 오두막에서 첫날 밤을 지내게 된다. 이튿날 할머니에게 도착한 전보를 우연히 보게 된 사샤.

  “전보 #206. 수신자 시민 고리니치 나이나 키예브나. 귀하에 통보합니다. 오늘. 7월 27일 자정에 당해 연례국가비행소집. 첫 회합. 장소는 민둥산. 복장은 정장. 기계교통수단 사용. 자비로 충당. 서명.”

  이쯤 되면 알 만한 독자는 눈치챈다. 자정의 민둥산. 장소는 구 러시아, 현 소비에트 연방. 번쩍 떠오르는 거 읎으셔?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작곡 “민둥산의 하룻밤”. 러시아 지역에서 특정일 자정의 민둥산 하면 악마 축일의 밤을 연상시킨다. 아마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도 나올 거다. 그럼 나이나 키예브나 할머니의 정체는? 뭐긴, 마녀지.

  그러면? 마녀로 추정되는 연령 미상의 노파가 박물관을 관리하면 도대체 연구소를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진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4차원에도 틀림없이 구멍이 있을 것이어서 그곳을 통해 생물학적 전파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예컨대 주머니에 5코페이카 동전이 있어 그걸 주고 풍선껌을 사서 씹어 소비를 했지만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까 똑같은 5코페이카 동전이 있는 현상. 어제는 초록 앵무새의 깃털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오늘은 앵무새의 시체가 있어서 벽난로에 던져 화장을 시켰고, (하루가 지난 후) 오늘은 똑같은 장소인 저울대에 초록 앵무새가 살아 있다가 점점 시들시들해지고, (하루가 또 지난) 오늘은 저울대에 앉은 앵무새가 조잘조잘 떠들고 있는 현상.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걱정하지 마시라,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다 나온다.

  만일 18세기에 몽테스키외 선생이, 심정지로 사망 판정을 받은 사람이 45분 후에 다시 소생했다는 보고를 받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모르기는 해도 몽테스키외 선생은 반계몽주의로 급격하게 선회했을 것이며 유물론을 포기하고 신비주의로 돌아섰을 것이다. 과학은 가끔가다가 이런 짓도 한다.


  그럼 니이차보 연구소는 어떻게 구성이 될까? 다른 모든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경비, 총무, 회계, 인사 등의 관리부서도 있고 중요한 연구부서로는 마법과학과 마술과학 팀이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마법과 마술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순간 눈속임이나 자잘한 손기술이 아니다. 여태까지 밝혀지지 않은 국가적 기밀사안으로, 바야흐로 냉전의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는 1960년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스푸트니크 호를 쏘아 올려 우주와의 교신을 시작한 소비에트 연방은, 시간적 공간인 4차원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막강한 적수인 미합중국을 다방면으로 압도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설립한 연구소다(양심상 밝히는데, 구라다.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자니 당연히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난리법석”을 소제목으로 해서 첫 번째 이야기 “소파를 둘러싼 난리법석”, 두 번째 이야기 “난리법석 중의 난리법석”, 세 번째 이야기 “온갖 난리법석”으로 구도를 짜 재미난 상상력을 풀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법과 마술을 위한 과학적 난리법석에 참여하는 우당당탕 연구원들. 이렇게 재미난 연구를 하는 월 120루블짜리 봉급쟁이들이니까 기꺼이 월요일은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일 주일이 월,월,월,화,수,목,금요일이라는 거 아냐?

  하여간 아르카디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들, 참 골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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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3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드뎌 별 5개 떴네요~~
바로 이 책 찝합니다. 실로 오랜만에 올라온 별5개!!
믿고 보는 뽈님의 별5개 작품!!ㅎㅎ

Falstaff 2023-11-23 18:28   좋아요 1 | URL
넵. 5별입니다. 전적으로 ˝재미˝ 하나 보고 다섯 개 줬습니다!
ㅎㅎㅎㅎ 뭐니뭐니 해도 역시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