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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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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델>을 읽은 건, 올해 초 <타인들의 나라>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노래>를 통해 절대로 달콤하지 않은 비정한 스릴러를 경험해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타인들의 나라>,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을 읽었는데, 예상 외의 수작이어서 슬리마니의 데뷔작인 <그녀, 아델>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는 거다.
아델이라는 여자. 무슬림인 듯한 아버지 카데르와 프랑스인 엄마 시몬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무관심 아래 자란다. 열 살 무렵 어머니와 단 둘이 파리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어머니는 아델을 호텔 방에 혼자 둔 채, 딸아, 방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한 발자국도 나가면 안 돼. 누가 방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소리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알겠지, 이렇게 교육을 시켜놓고 자기 혼자만 열심히, 아주 열심히 즐기고는, 마지막 날, 내일 다시 돌아가는 날이라면 오늘 딱 하루, 처음 보는 남자와 엄마가 생색을 내듯 아델을 데리고 “파리 관광”을 시켜주었는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하필이면 간 곳이 몽마르뜨 언덕이라, 겨울이었음에도 거의 헐벗은 옷차림을 한 채 남자들의 시선을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는 매춘부 구경만 실컷 한 경험이 있었다. 성인이 된 아델은 (마치 슬리마니 자신처럼) 영화계 스타가 한 번 되어볼까 싶어서 연기 학원에 다녔으나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어영부영하다가 조르주 퐁피두 병원에서 위장병 전문의 리샤르 로빈슨을 만나 결혼을 해버렸다. 팔자가 좋으려니 리샤르는 아델 수준에서 보기엔 상당한 부잣집 맏아들이었으며, 병원에서도 거의 내과 과장 정도의 직책으로 높은 연봉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는 곳도 파리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18구의 널찍한 호화 아파트를 비싼 월세로 빌려 살고 있었다. 슬하엔 아들 뤼시앙이 있고, 얘는 지금 한창 미운 다섯 살이다. 넓은 아파트에서 아들 하나만 키우면 재미가 없을 거 같았던 찰나, 남편 리샤르의 친구 아버지가 신문사 출판국장이라 낙하산을 타고 신문사 기자로 입사해 처음엔 불꽃 같은 실력을 내뿜으며 회사 돈으로 세계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었고, 특히 튀니지에 관한 한 신문사에서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기자라고 일컬었었다.
대단하지?
세상에 뭐든 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게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읎잖여? 아델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근데, 거 참. 이걸 뭐 어떻게 내놓고 이야기하기도 거시기한 바, 거의 중독 수준인 건 자신도 알고 있어서 나흘 동안 32 킬로미터를 달리고, 술 한 잔도 마시지 않으면서 중독 증세를 이겨내려 집중하고 있었건만, 도무지 아랫배에서 찌리리, 온몸의 신경을 타고 진저리가 쳐지는 증상을 아델 스스로도 참지 못하겠는 거라. 참다, 참다, 결국 견디지 못해, 아델은 남편과 아들이 잠든 새벽에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가서, 지하철을 타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애인 또는 친구의 작은 아파트로 여덟 시도 안 된 시간에 쳐들어가, 실 하나 걸치지 않은 아담을 깨웠고, 자기도 하와처럼 훌렁훌렁 외투와 원피스와 속옷과 스타킹을 벗어버린 후에, 했다, 하긴 했는데 아담이 원래 사정을 빨리 하는 편이라 마치 하다 만 것 같았고, 그럼에도 일단 몸 속의 금단증상은 멈출 수는 있었으며, 내가 읽기로 정말 드러워 죽겠는 것이, 하여튼 하자마자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 곧바로 속옷부터 스타킹, 원피스, 외투를 입은 다음 출근을 해버렸다는 거다. 으이그… 씻지도 않고.
이런 여자가 결혼은 왜 했을까? 리샤르와 뤼시앙. 남편과 아들에게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이기는 할까? 아버지와 아들만 살아도 행복에 전혀 지장이 없을 거 같을 정도로 자신은 좀처럼 그들과 맞추기 힘든, 거북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생활이 이러니 아델은 무수한 거짓말과 거짓 증거와, 시의 적절한 알리바이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휴대폰도 그렇다. 흰색의 구식 폴더 폰을 하나 더 장만해 남자들에게 오는 연락만 취하고, 일상적인 통신은 스마트 폰으로 따로 통화한다. 그럼에도 아델은 결혼과 출산을, 세상에 귀속되어 타인들과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즉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닌 아델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뤼시앙을 임신해 배가 부른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아델을 치유해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임신 때문에 자신의 뭔가가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스스로 깨우치기를, 자신은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돌보기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며, 이것은 아들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로 끔찍한 일이라는 점. 그리하여 아델이 얻은 거의 모든 사회생활/복지 등은 리샤르와 합의를 통해 이룬 가족/가정에서 소유하기 시작했음에도, 가족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다.
불행하게도 아델이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아니 어쩌면 질병이 아니라 그저 형질, 우연히 노랑 머리와 투명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형질 뿐일 수 있는데, 노란 머리카락에 초록 색 눈동자를 가지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여간 하느님이 하필이면 심술을 부려 아델에게 떨치지 못하고 갖고 있게 만든 것이 님포매니악. 여자일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 같지만 주로 남성과의 결합을 참지 못하며, 어느 중독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간혹 끔찍한 피학 변태성까지 보이는 아델의 형질은 그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어갈 뿐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델의 상대 남자는 순서대로 아담, 신문사 사장 시릴,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연하 남, 남편 리샤르, 장관minister의 보디가드, 아프리카의 프랑스 대사 참사관, 친구 로렌이 은근하게 포기하지 않은 남자 마티외, 로렌의 사진전에서 만난 낯선 남자, 한 달 전 마드리드 학회에서 만나 콘돔 없이 애널 섹스를 허용한 니콜라, 첫경험이었던 루이, 남편 리샤르의 병원 동료 자비에, 코카인을 나누고 쓰리 섬과 피학 성애를 즐긴 메디와 앙투안, 그리고 뱅상, 올리비에, 한 번 더 자비에, 엄마 집의 8층 남자.
이 명단에 이름을 두 번 올린 인물이 배 나오고 키 작은 병원 내과 과장 자비에. 부자이며 심성이 고운 자비에는 아내 소피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얼마 버티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부 좔좔 불어버린다. 소피는 또 득달같이 리샤르에게 달려가 당신 마누라 아델이 내 남편 자비에한테 꼬리를 쳐서, 어쩌고 저쩌고… 그림이 그려지시지? 이번 아비규환을 겪으며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 itself였던 리샤르는 독한 마음을 먹고 선언을 하기를, 파리에서 가장 실력 있는 변호사를 구해서 이혼 소송을 벌이겠어, 당신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뤼시앙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이혼하게 될 거야.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살게 될 거야.
근데 그게 쉽게 돼? 그럼 그게 소설이냐고.
굳이 레일라 슬리마니의 <그녀, 아델>을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자극적인 장면이 종종 출몰하면서도 그것 참 신기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니 말이지.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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