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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하인리히 뵐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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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들고 처음 든 생각. 역자 곽복록? 아니, 언제적 곽복록 선생이야? 선생은 1922년생으로 이 책 초판이 나온 2011년 4월에 여든아홉. <아담…>의 출판 이후 한달 이십여 날을 더 살고 갔다. 한국 괴테 협회장을 역임하고, 한 시절을 풍미하던 서강학파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곽선생이 정말 이 책을 번역했는지, 직접 번역을 했다면 진짜로 2011년에 했는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물론 지만지 출판사의 소신대로,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하여,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소설 선집”을 만들었겠기에 크게 의심은 하지 않지만, 혹시 만의 하나, 이제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 옛 시절의 세계문학전집, 뭐 학원사나 금성출판사, 정음사 같은 곳에서 이미 번역해 출판한 것의 판권을 사와 중판을 찍으면서 마치 초판인 것처럼 시늉한 건 아닐까, 어느새 내 눈이 가자미 눈깔이 되는 걸 숨기기 힘들다. 이런 조금의 의심을 품은 채 책을 읽어서 그런지,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하늘도 무심하셔서 어느 새 꼰대가 된 내가 읽기에도 조금은 낡은 단어들이 제법 등장하는 게 유독 눈에 밟힌다. 곽복록 선생은 1974년 12월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국장의 명함을 달고 이스라엘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에 참석해 심지어 하인리히 뵐, 외젠 이오네스코, 솔 벨로우를 직접 만나, 쐬주 한 병 깠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함께 토론을 했던 적도 있는 노장이기도 하다.
몇 달 전에 <열차는 정확했다>를 읽고 쓴 독후감에서 말했지만 뵐 자신이 1939년부터 독일의 육군 사병으로 참전했고, 전쟁 막바지에 탈영에 성공했으며, 포로 생활을 하다 종전을 맞은 경험이 하도 지긋지긋해 나머지 평생을 지극한 반전주의자의 길을 선택한 작가다. 이 책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에서는 바이데스하임 출신으로 남이 짓지 않은 집을 짓겠다고 각오했지만 결국 남이 지었던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건축가였다가 징집당해 온 파인할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이의 행적 가운데 많은 부분이 뵐과 유사하여 작가의 직접적 체험담은 아닐지언정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 것은 금방 드러난다. 예컨대.
1. 첫 장면에는 장군이 등장한다. 매우 피곤해 보이고 놀랍게도 목덜미에 훈장 하나를 달지 못한 장군. 이이는 ‘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패전과 후퇴의 실패를 연속했으며 따라서 병사들은 비통, 연민 불안 그리고 분노 같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2. 얼마 후 333명이 된 병사들. 이들 앞에 순종 독일인의 얼굴이 지나간다. 창백하며 무서운 눈, 악문 입술과 긴 코를 가진 대령.
3. 또 시간이 흘러 이제 105명뿐인 병사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상처투성이 발과 땀이 밴 얼굴을 한 채 지친 행군을 하고 있다. 선두에 선 중위의 얼굴에 ‘진저리 난다’는 글자가 씌어 있는 듯한 분노로 가득한 사람의 ‘우아하고도’ 맥 풀린 걸음걸이.
4. 다음 장면은 스물 네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검은 양철 메달의 훈장 하나를 가진 중위. 그리고 중위보다 네 배 많은 훈장을 단 상사. 이들은 결국 포로가 되지 않으면 부상을 당해 죽을 운명이다.
5. 마지막으로 단 한 명 남은 병사. 파인할스. 우리의 주인공이다.
이 다음 장면은, 전쟁 중 후송해 치료를 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을 세 번 당한 하인리히 뵐의 경험이 없으면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야전병원 장면이다. 야전병원으로 쓰기 전엔 건물의 1층이 마구간이었던 병실에서 파인할스의 가장 눈에 띄는 환자는 바워 대위. 그는 차 위에서 철모도 쓰지 않은 채, 아마도 고의로 떨어져 뇌에 심각한 손상이 일어나 의식을 찾지 못한다. 만일 의식이 돌아오면 전시 군법회의와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긴 하지만.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정확하게 50초마다 “브엘로고르셰”하고 나지막이 읊조리기만 한다. 절대로 영웅이 될 수도 없었고,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으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그는 트럭 위에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해버린 거였다.
그리고 파인할스는 다시 헝가리 전선으로 배치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인, 일로나. 그녀는 유대인이었고, 천주교로 개종을 했으며, 그럼에도 계속 유대인 가족들에게 헌신하고 있었다. 헝가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대인 박해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임레 게르테스의 작품을 통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렇지는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조신하고 신중한 일로나는 파인할스에게 키스를 해주고 게토 지역 안에 있는 가족에게 간다. 가서…. 파인할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헝가리로 와 일로나를 만나겠다고 결심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면 그게 소설이니?
또 부상을 입는 파인할스. 그리고 탈영. 이렇게 주인공은 작가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완전하게 다른 건 마지막 장면. 파인할스는 탈영에 성공해 자신의 고향 바이데스하임에서 불과 3킬로미터 떨어진 핑크 씨 댁에 도착한다. 핑크 씨가 주는 음식을 먹고, 브랜디도 마시고, 그가 일러주는 안전한 길 대신 조금 더 빠른 길을 택해 고향으로 향하는 파인할스. 이미 한 미군이 애인과의 밀애를 즐기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씩 머무는 동네 바이데스하임. 그러나 정식으로 점령한 곳이 아닌, 전투 지형적으로 아무 쓸모 없는 그곳으로 오랜 피곤을 쉬고 싶은 마음 만 갖고 향한 파인할스.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찬양할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극적인 요약은 서문에 있다. 생텍쥐페리가 쓴 <전시 조종사>의 한 귀절.
“전쟁은 진정한 모험이 아니다. 모험의 대용품밖에는 되지 않는다. 전쟁은 일종의 병이다. 티푸스 같은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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