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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 영혼의 순례자 ㅣ 위대한 작가들 5
피터 애크로이드 지음 / 책세상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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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틀림없이 토마스 스턴즈., 즉 T.S 엘리엇의 전기biography다. 어린 시절부터 제일 읽기 싫어했던 장르가 『소년 소녀 위인 전기 전집』 같은 전기물이었다. 이제 나이 들어 마음이 좀 바뀌었느냐고? 갑자기 난데없이 톰 엘리엇의 전기를 읽겠다고 책을 빌렸으니 말이지. 게다가 번역한 시는 시에 대한 반역이라고 입에 침을 튀던 작자가 시인의 전기를 읽겠다니, 하 참,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곧 숟가락 놓는다고 하는데 혹시 이 경우가 그거 아닌가? 걱정하지 마시라. 난 톰 엘리엇에 대한 관심은 1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의 전기를, 그것도 색인까지 합해 무려 570 페이지에 달하는, 큰 판형, 조밀한 조판, 빽빽한 자간을, 몽땅 눈에 힘을 주어 읽은 것은, 엉뚱하게도, 엘리엇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아니라, 전기를 쓴 피터 애크로이드가 네 편의 작품, <플라톤의 반란>, <혹스무어>, <디 박사의 집>, <어느 시인의 죽음> 이것들이 내 마음에 파박, 오이디푸스의 눈알을 찌른 브로치의 바늘처럼 박혀 있었던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인터넷 책방에서 “피터 애크로이드”를 검색하면 이 네 권의 소설과 전기 <엘리엇>, 이렇게 다섯 권이 뜬다. 그리하여 읽는 김에 언젠가는 비록 전기물이기는 하지만 <엘리엇>까지 읽어 치우겠다고 다짐한 것이 3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문제는 하나 남은 <엘리엇>이 절판 상태이며, 헌책방에서는 어마어마한 값을 부르고 있어 오금이 저려 하루이틀 미뤘었는데, 고맙게도 동네 도서관 개가실에 딱 하나가, 중간 부분 이후엔 손길을 타지 않은 상태로 고이 올려 있었던 것. 와우, 피터 애크로이드다! 주저할 이유가 하나도 없이 대출을 해서 곧장 열람실에 올라가 딱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고, 아이고, 죽을 똥을 쌌다. 글쎄 내가 전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니까.
피터 애크로이드는 1949년에 런던 이스트 구역에서 태어난 전기작가, 소설가, 비평가인데 주요 관심은 런던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혹스무어>에 관해서 류춘희는 《문학적 탐사와 역사적 탐색의 메타 서사》에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을 일어났음 직한 방법으로 글을 쓰는 애크로이드의 저작능력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공모하여 전기나 역사에 대한 독자의 해석을 치밀하게 교란시킨다.”라고 말했다. 18세기 초에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활약을 했고 (이이를 기억해두시라. 다른 책에서도 렌의 이름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런던 대화재 당시에 불타버린 성당을 복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의 서기였던 니콜라스 혹스무어(작중 이름은 니콜라스 다이어)를 골라 애크로이드가 탄생한 동쪽 지역의 교회 여섯 개를 복원하는 작업을 맡긴다. 시간은 갑자기 250년이 흘러 1980년대로 변하고, 당시 니콜라스가 건축한 교회 지하실의 납골당에선 한 소년이 목이 졸린 채 죽어 있다. 이 두 사건, 교회 건축과 소년의 죽음이 어떤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그것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지만, 작품은 결코 추리나 범죄소설로 분류하면 안 될 듯하다. 오히려 포스트 모던이라고 해야 마땅할 듯.
인류 최후의 혁명이 끝난 태평성대에 다시 반란을 꿈꾸는 또다른 인류를 그린 <플라톤의 반란>도 빼어나고, 하여간 특별한 작가라서 늘 기억하고 있었다. 미국 아마존에서 애크로이드를 검색해보면 독자 평점이 극과 극을 달린다.
런던에 사는 로만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자라,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경험이 있고, 겨우 일곱 살의 나이에 자신의 성 정체성이 게이라는 걸 알게 된 소년 피터. 하여간 사람은 공부를 잘 하는 게 좋다.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멜론 장학금을 받아 예일에서 학위를 따, 세상의 독자들에게 극심한 호오 논쟁을 일으킨 소설가가 되었으니 뭐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았다 싶다.
근데 전기물 <엘리엇>은 길어도 너무 길다. 상세해도 너무 상세하다.
재미 있는 것 몇 개.
엘리엇의 조상은 17세기 말엽에 거의 맨 앞에서 몇 번째로 메사추세츠에 도착한 잉글랜드 사람으로 보스톤 근교 세일럼에 정착해 살았다. 거기서 틀을 좀 잡고 살기 시작할 쯤해서, 난데없이 마녀 사냥이 벌어진다. 아서 밀러가 <시련>에서, 며칠 전에 소개한 마리즈 콩데가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그것도 흑인 여성에겐 눈 뜨고 읽기 힘들 만큼 잔인하게 고문하고, 목 매달고, 뉘어놓고 가슴팍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서서히 깔려 죽게 만들고, 이런 짓을 그래도 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진행시켰는데, 엘리엇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역시 배심원의 한 명으로 참관을 해 유죄 취지의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는 이후 당시 결정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세일럼을 떠나 20세기 말에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여덟 시간 거리였던 세인트루이스, 그저 허허벌판인 프랑스 풍의 도시, 볼 것은 오직 하나, 훗날 톰 엘리엇이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는 허클베리가 신나게 장난치던 장소, 미시시피 강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했단다.
나는 피터 애크로이드의 팬이라서 이 책을 읽었지만, 엘리엇만 나오면 죽고 살지 못하는 광팬이 아니라면 살 수도 없고, 읽기도 힘든 책을 구태여 읽어보시라 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아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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