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 미스티카
유프레이즈 케질라하비 지음, 양철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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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케질라하비는 <로사 미스티카>의 주인공 로사가 태어나 소년기까지 지낸 빅토리아 호수 안의 섬 오케레웨의 나마곤도에서 1944년 출생했다. 당시 탄자니아에서는 집안에 경제적 여력이 없더라도 아이가 공부를 좀 하면 상급학교에 무난히 갈 정도의 지원은 해주었나 보다. 저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다르에스살람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같은 학교에서 스와질리어를 강의했다. 동시에 스와질리어로 시와 소설을 발표했는데, 대표작이 오늘 읽은 <로사 미스티카>라고 한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보츠와나 대학 교수를 지내다가 은퇴 후에 다시 탄자니아로 돌아와 살다가 2020년에 천국의 편안함을 찾아, 갔다.


​  뒤편에 실린 역자의 해설에는, “인간의 성품이나 개성의 중요한 형성기인 어린 시절, 가부장적 억압구조, (아버지의) 일상적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그녀가 가졌던 본성을 상실하고 늘 추구하고자 했던 꿈과 희망마저 거대한 벽에 부딪”혀 “삶의 지난한 여정에서 계획하고 이루고자 했던 많은 일들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대신 가혹한 상황과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밀려온다”고 했다.

  반면에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의 책소개는 “아프리카의 미성년 여학생의 임신이 크게 증가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 책은 이 문제를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룬 최초의 아프리카 소설”이라고 했다. 여학생들의 임신 문제의 “원인으로 가부장제를 지목”하고, 작중 주인공 “로사 미스티카는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아버지 자카리아의 억압과 통제로 인해 어떤 남자와 그 어떤 접촉도 하지 못한 채로” 자라나서 “남자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해 “이후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는데 “이는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킬 만하다”고 단정한다.


​  그러니까 둘을 합해서 말하자면, 이 소설은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일대에 어린 여학생의 임신(으로 인한 학업 단절)이 크게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유프레이즈 케질라하비는 이의 원인을 아버지(들)의 억압과 통제 때문에 어려서부터 여자 아이들이 남자하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모른 채 성장했기 때문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맞나?

  주인공 로사 미스티카의 아버지 자카리아는 전직 교사 출신이지만 알코올 의존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학교에서 해고당한, 그나마 지식인 출신이다. 원래 성격은 농담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처자식과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놈의 술이 웬수라서, 술만 마셨다 하면, 하긴 일주일에 8일 마시는 인간이니 언제나 그랬다는 뜻이긴 했지만 하여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 이상만 됐다 하면, 이런 때는 거의 오밤중이었는데, 밤하늘 별이 총총한 벌판 저 끝에서부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데시벨로 “E lucevan le stele / Ed olezzava la terra / Stridea l’uscio dell’orto” 푸치니가 작곡한 “별이 빛나건만”을 꽥꽥거리며 다 쓰러져가는 집에 들어와서는 자빠져 자고 있는 아내와 맏이부터 차례대로 로사, 플로라, 호노라타, 스텔라, 스페란티아 이렇게 딸만 다섯을 다 깨워, 우리나라 술주정뱅이 아빠들은 대개 집에 오다 사가지고 온 바가지 과자나 군 고구마 같은 걸 먹고 자라고 하겠지만, 이 자카리아 선생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고, 자신은 아이들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거였으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밤이면 밤마다 이게 무슨 달밤의 체조냐고.

  그러다 하루는 아빠가 가장 예뻐하는 넷째 딸, 스텔라가 술 취한 아빠한테, “아빠, 아까 어떤 오빠가 로사 언니한테 편지 한 장하고 20실링을 주는 걸 봤지 모예요.”라고 일러 바쳤고, 이 장면을 읽는 나는, 아이고 이제 알코올 의존자 아빠가 로사한테 20실링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돈 다 뺏기고 얻어 터지고 난리가 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카리아 선생이 로사를 입술이 터지고 입안이 터져 피가 나게 두드리는 건 맞았는데 이 한밤중에 오른손엔 아프리카인들의 무기였던 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로사의 어깨를 밀어가며 청년 찰스 루사토가 묵고 있는 찰스의 외삼촌이자 선생의 절친한 이웃 사촌인 은달로의 집에 쳐들어가, 알고 보니까 로사가 받은 돈은 5실링이었으니 이 5실링을 찰스 군 발 앞에 내던지면서 오늘 이후에 자기 딸과 말을 트는 것을 그만 두라고 엄숙하게 명령한다. 사랑의 편지엔 뭐가 써 있더냐? 아빠가 맏이 로사한테 그걸 내 놓으라고 하니, 죽으면 죽었지 폭군 같은 아빠한테 달달한 연서를 보일 수 없어 그걸 꼬깃꼬깃 접어서 그냥 입에다 넣고 꿀떡 삼켜버렸지만, 뻣뻣한 종이가 쉽게 넘어가나 어디. 순간 자카리아 씨는 왼손으로 어여쁜 로사의 목을 콱 부여잡았고, 오른 주먹으로 어린 여자 아이한테, 때릴 데가 어딨다고, 그냥 사정 안 보고 안면을 와다다다 강타해버렸으니 결국 캑캑거리며 다시 토해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여튼 이 일 이후에 로사는 절대로 남자를 향해 말을 하지도, 표정을 짓지도, 심지어 눈길 한 번 제대로 주는 적이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 우등생 상급 학년이 되어, 자카리아 선생은 자신이 딸 교육 하나는 엄청 잘 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연히 로사에게 기회가 주어지자, 로사는 단번에 로저리 여학교의 최고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고, 당시 동아프리카 여학생이 사회문제라 하던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심지어 데오그라시아스, “신의 은총으로”라는 화려한 이름을 가진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며, 승낙을 했으며, 함께 고향집에 들러 결혼 승낙까지 받기도 했으며, 당연히 알코올 의존자인 장인과 어울리다 딱 사위 후보만 크게 경을 쳐 파투가 나버렸는데, 알고 보니 데오그라시아스는 마흔두 살, 아내 두 명과 많은 아이를 거느린 유부남, 로사가 세번째 아내 후보였으니까, 로사가 남자 보는 눈이 없긴 없었던 거다. 이 와중에도 공부를 해 사범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세상 남자 모두를 거부하지 않아 로사는 남학생 사이에 실험실, 어떤 체위, 어떤 방식의 시도도 가능한 “랩Lab”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또다시 유부남과 활활 불이 붙어, 상대의 아내에게 귀를 물어 뜯겨 짝귀가 되어버리고 만다. 짝귀가 <타짜>에만 나오는 줄 아나?

  상태가 이러니 결말이 비극을 향해 가는 건 당연하겠다. 비극도 어쩐지 저 에밀 졸라 식 막장 비극으로 갈 거 같지? 그렇다. 막장 중의 막장 행 열차에 탑승한다.


​  이제 내가 읽은 감상.

  출판사의 책 소개와 역자 해설이, 작가 케질라하비가 작품을 통해 하는 얘기인 건 맞다. 문제는 작가의 의견이 옳다는 건 아니라는 말씀. 작품 속에서는 아름답기가 왕소군 같고 착하기가 심청이 같은 우리의 로사 미스티카가 원래는 조신하고, 성품 착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는데, 계속된 아버지의 억압적 훈육 때문에 점점 자라면서 남자와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래서 아무나, 말만 잘 하면 함부로 성적 관계를 맺는 헤픈 여자가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도, 우리나라 학제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에만 두 번의 낙태를 경험했고, 유부남과 두 번 결혼하려 했겠느냐, 하는 거다. 많은 문제가 있는데 문제들 가운데 동아프리카에서 전래적으로 내려오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차별이 중요한 거였다고 하면 좋다. 당연히 옳은 이야기니까. 하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이라고 하면 곤란하지. 우리나라도 특히 딸을 억압적으로 키운 부모, 이중에서도 아버지는 많았다. 나도 어려서 연애할 때, 아휴, 그땐 셀폰도 없어서 지옥 같았는데, 걔네 집에 전화라도 하면, 제발 전화하지 말라고, 오빠나 아빠, 하여간 빠 들어가는 인종들이 남자한테 전화오는 거 알면 골치 아파진다고, 했던 시절이었으니, 그럼 그때 우리나라에서도 어린 여학생의 낙태가 사회문제였겠네?

  많은 문제 중에서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의 여학생 임신과 낙태 문제에 가장 중요했던 건 올바른 성교육과 피임교육, 피임 도구와 약의 자유로운 접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두 번의 낙태를 경험한 로사 미스티카도 피임약을 해방의 십자가처럼 여기게 된다. 자석의 N극과 S극더러 제발 붙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봐라, 그게 안 붙어지나. 말린다고 다 말려지면 어찌 춘향전이 나왔겠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왔겠느냐고.


​  하나 더.

  말 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에잇, 모르겠다. 역자 양철준의 번역이 너무 직역이라 마치 구글 번역기 돌린 것처럼 읽힌다. 물론 구글 번역을 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시 강조하건데 그의 어학 실력이 아니라 번역해 놓은 우리말이 어색하다. 한두 곳이 아니다. 주로 수동태의 우리말 번역이 그렇다. 무지하게 많지만 예를 하나만 들겠다. 비가 엄청 오는 날, 어느 여인이 홀딱 비를 맞고 집에 들어왔다. 근데 몸을 수그리고 있어서 누군지 모른다. 얼굴을 드니 아하, 이제 알겠다. 이런 상황.

  “바로 그때 그 사람이 얼굴을 내보였다. 그녀는 아주 분명하게 누구인지 인식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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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5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친절하게 올려주신, 해학이 넘치는 이 리뷰가 아니었던들 제가 어떻게 탄자니아 소녀들의 성억압과 재생산 건강 문제를 다룬 작품을 알겠어요? 당장은 못 읽겠지만, 이 작품, 제 관심과 닿아있어 소중하게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수동태 문장! 저도 저도 모르게 참 많이 쓰던데, 주의해야겠다는 마음이 골드문트님의 말씀으로 다시 올라와요^^

Falstaff 2023-05-25 17:24   좋아요 0 | URL
동아프리카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에휴.... 교육이 문젭니다, 교육이.
수동태 문장은... 저도 여간해 쓰지 않으려 하는데요, 하도 오랜 세월 교육 받고 그렇게 사용을 해서 쉽게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큰 문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