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8
류전윈 지음, 오수경 옮김, 모우선 각색 / 연극과인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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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전윈의 동명 장편소설을 모우선이 각색해 희곡으로 다시 썼고, 이를 공연까지 한 작품이 연극전문 출판사 “연극과 인간”의 중국현대희곡총서 시리즈의 18번으로 나왔다. 이 책 역시 내 집 현관문에서 1층에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를 불러 타고, 큰 네거리 두 개의 붉은 신호등에 걸려 대기했다고 쳐서 8분 정도 걸리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 나 말고 우리동네 누군가가 희망도서 신청을 해 들여놓은 책이라는데, 나 말고 누가 또 중국현대희곡에 관심이 있는지 거 참 궁금하네. (혹시 이 독후감을 보시면 연락 한 번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쐬주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동네에 괜찮은 북어탕 집 있습니다. 북어탕에 쐬주 마시면 다음날 속이 좀 편합니다.)

  나는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희곡을 읽었다. 그리고 곧바로 검색해 원작을 빠른 시간 안에 읽기로 결심을 했다. 류전윈의 작품을 찾아보니,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가 작가의 “가장 성숙하고 호방한 대표작”인 <말 한 마디 때문에>의 후속작이란다. 그러니까 중국현대희곡총서 18번의 희곡을 읽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원작자의 <말 한 마디 때문에>와 원작, 이 두 권을 미리 읽어 두는 것이겠다. 물론 희곡을 읽지 않은 채 원작만 읽고 곧바로 연극을 관람하든지.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일은 장편소설을 읽는 것하고 완전하게 다르다. 장편소설은, 이 작품의 원작을 예로 들자면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2009년에 번역 출간했는데 옮긴이의 말을 포함해 328쪽. 본문만 대강 3백 쪽 정도 분량이면 하루에 다 읽어 치울 수는 있지만 조금 무리다. 나 같은 백수는 할 수 있으나 평일의 직장인한텐 많이 무리. 그러나 이것을 연극으로 공연하고자 하면 어떻게 됐든 길어야 두 시간 안쪽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각색자는 원작의 곁가지를 (거의)모두 걷어내고 스토리 라인의 핵심만 뽑아 이를 축으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러면서 장편소설의 재미를 살려낼 수 있을까? 있어야지. 그래야 이름난 각색자이며 극작가일 터. 이 책의 각색자 모우선(또는 머우썬)은 1980년대 중국 실험극의 선구자로 이름을 날리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더니 20년만에 돌아와 이 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비단 이름값이 아니더라도 희곡을 읽으면서, 지금 읽기는 건조하게, 그냥 그렇게 읽고 있지만 좋은 연출을 통해 무대에 올리면 재미있는 연극이 되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내용을 거칠게 언급하자면, 근현대 중국의 평민을 그린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이 매우 토속적이고 삶을 위해 어떤 짓을 다 하고 구질구질하다. 원작과 같은 해에 출간된 작품이 옌롄커의 <풍아송>이었다는데, 류전윈을 옌롄커, 쑤퉁과 더불어 당대를 풍미하던 젊은 작가 3인으로 꼽았을 만큼, 이들과 비슷한 중국 농촌지역 사람들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그렸다. 원작은 앞으로 읽어볼 예정이지만 희곡만 가지고는 옌씨, 쑤씨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작품은 78세에 세상을 뜰 예정인 늙은 조청아 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이 바뀐 내력을 읊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 배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받은 이름은 강교령. 아버지는 교령이 어렸을 때 심원 땅에서 비명에 죽은 ‘강호’라는 작자고 엄마는 오향향이다.

  2막으로 된 작품이다. 1막은 하남성 연진 땅 양씨 촌에서 두부를 팔던 양씨의 아들 양백순이 이끌어간다. 양씨에게 아들이 셋 있었는데 큰애는 학교 갈 나이가 지났고, 둘째 백순이 더 똑똑했다. 서양식 학교가 개교를 했으나 한 집안에 아들 둘을 다 보낼 수 없어서 하나만 보내기로 했다. 똑똑한 것이 교육을 받으면 부모 곁을 떠날 거 같으니 거짓 제비뽑기를 해서 좀 멍청한 막둥이 백리를 입학시킨다. 백리는 계모가 낳은 아들. 백순은 평소엔 식초를 팔지만 그것보다 상가에서 곡을 해주는 곡소리꾼으로 유명한 나장례의 소리에 반해 있었다. 하루는 나장례의 소리를 들으러 양을 돌보라는 아버지의 지시도 무시한 채 구경갔다가 구경도 못하고 아버지한테 크게 경을 쳐 그만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증씨를 만나 돼지 도살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살다가 증씨가 새로 들인 아내에 밉보여 쫓겨나 몇 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온갖 천대를 받아 또다시 가출, 연진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 조씨를 만난다. 이이를 통해 이태리에서 중국 선교를 위해 파견 온 첨 가톨릭 신부를 만나 이름도 양모세로 바꾸고 기독교를 접한다. 그러나 도통 교리를 이해할 수 없다. 첨 신부는 중국에 온지 40년 만에 무려 여덟 명의 신자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리지만 본국의 누이동생에겐 수십만 명에게 세례를 주었노라고 구라를 풀었다. 하느님도 용서하시리라. 이 덕분에 얼굴 한 번 못 본 조카가 외삼촌을 숭앙해 천주에 귀의해서 훗날 밀라노 교구의 대주교가 되니까. 중국에 와서 중국인 말고 이태리 외조카를 선교해버린 꼴이었다. 하여간 여기서 농사도 좀 짓다가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과부가 된 만두가게 주인 오향향과 결혼해 이름도 양모세에서 오모세로 바뀌고 수양딸 강교령도 생겼다.

  오향향이 왜 결혼을 서둘렀을까? 은세공을 업으로 하는 유부남 고씨와 수년 동안 십계명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네 이웃의 남편을 탐하지 마라.”를. 이이는 이제 모세와 결혼을 하고도 남편 모세와는 소 닭 보듯 하고 여전히 고씨와 하얗게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고씨가 오향향을 옆구리에 꿰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 오모세는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것들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복수를 해줘야 체면이 선다고 충동질을 하는 바람에 의붓딸 강교령, 이젠 오교령이를 데리고 아내를 찾는 시늉을 하기 위해(진짜 찾으면 살인이 날 것 같아 그냥 시늉만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우씨 라는 장돌뱅이한테 교령이를 유괴당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교령이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조씨 집안에 팔려가서 수양딸로 지내게 되고 당연히 이름 또한 오교령에서 다시 조청아로 바뀐다. 이후 우씨 마을의 우서도에게 시집을 가 3남 1녀를 낳고 의붓아버지 오모세와 함께 집을 나온지 70년이 넘은 78세에 세상을 뜬다. 조청아의 둘째 아들 우애국 이야기가 2부에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것까지 소개하기엔 지면도 부족하고 워낙 큰 이야기를 너무 짧게 요약하면 재미도 없고 그렇다.


​  스토리는 희곡을 통해 아는 것이 축약된 내용이라 더 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을 읽어보는 게 훨씬 좋으리라 생각한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쓰는 것이라 그것을 염두에 두고 감상한 소감은, 내용은 중국 하남성에서 벌어지는 몇 대에 걸친 서민적 대하saga이지만, 공연의 방식은 그리스 고전의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 고전에서 특정 서사를 보다 빨리 전개하고 관객들에게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코러스의 활용이다. 모우선은 그리스 고전 적 코러스를 적용하되 저 오래전부터 유구하게 내려오는 중국 곤곡(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1)의 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앞의 어떤 것과, 누구와 연관이 있는지 파악한다. 또 배우들이 직접 스토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자이자 한중연극교류협회 회장인 오수경은 희곡임에도 이럴 경우엔 “… 한다.”나 “…이다.” 처럼 문어적 표기를 번역에 사용했다. 적절한 거 같다.

  희곡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원작을 먼저 읽고 결정하는 편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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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2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원작 소설 갖고 있어요~잊고 있던 책인데 이 책도 조만간 읽어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3-03-25 13:13   좋아요 0 | URL
옙. 저는 차근차근, <말 한 마디 때문에> 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즐기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