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로모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4
조지프 콘래드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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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비밀요원>, <로드 짐>에 이어 네 번째 읽은 콘래드. 그의 데뷔작 <올마이어의 어리석음>을 읽으면 현재 구입할 수 있는 콘래드의 픽션은 다 읽는 셈이다. 일찍이 제임스 미치너가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와 더불어 네 명의 잉글랜드 대표 소설작가로 꼽은 인물이다. 이런 굉장한 상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말로 번역해 출간한 책이 너무 적다. 이이 스스로도 전업작가 치고는 과작인 편이기도 했으니. 역시 콘래드의 전성기라고 하면 20세기가 시작되던 부근에 출간한 일련의 장편소설을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우연히도 내가 읽은 네 편과 목록이 일치한다. 나는 처음 읽은 <암흑의 핵심>이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내가 읽었는지도 모른 채 다시 사서 읽어봤고, 내용이 아주 아주 조금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 아, 지금 두번째 읽는 것이구나, 알아챘을 정도였다. 인터넷 이전 시절의 독서란 그냥 혼자만 읽는 행위였으니 이런 일도 흔했다. 쉰 살이 넘어 다시 읽어도 별로 인상깊지 않았다가, <비밀요원>과 <로드 짐>에 한방이 아니라 원투펀치 제대로 얻어맞고 훅, 갔다.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4. 415번으로 나왔지만 알라딘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신간 도서 알람이 뜨지 않아 여태 나온 줄 모르고 있었다가 우연히 발견해 서둘러 읽게 됐다.

<암흑의 핵심>은 콩고 내륙으로 이어지는 강을 따라 가서 깊숙한 내지로 들어갔고, <비밀요원>은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테러 사건을 그렸으며, <로드 짐>은 말레이 반도 정도의 오지에서 ‘주님’ 또는 ‘주인님’으로 섬김을 받던 짐이라는 이름의 백인 이야기라서 차례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무대로 했다. 아다시피 콘래드가 젊은 시절 오래 선박 노동자, 심지어 처음엔 선박 주방보조로 일하다가 영국인으로 귀화를 했으며, 자격시험에 차근차근 합격해 차례로 항해사, 선장까지 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게 오지의 환경을 책에 담을 수 있었다. 근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재미있는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보면, 당연히 카리브해의 이름없는 바닷가 도시가 무대인데, 난데없이 조지프 콘래드라는 이름의 산적이 산맥에 횡행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이 이야기가 마르케스 특유의 허풍 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구라가 아닐까 여태 생각했었다. 하지만 웬 걸. 콘래드가 젊은 시절에 정말로 라틴 아메리카에 무기, 그래봤자 소총류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무기를 밀수한 전력이 있다니 그럼 정말 산적질 한 것하고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쩐지 <노스트로모>에서 가상의 코르디에라 산맥과 대평원을 누비는 도적떼를 기가 막히게 묘사하더라니까. 산적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무기 밀수도 이 책에서 나온다. 마르케스가 이 책을 읽고 콘래드라는 이름의 도적 두목을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하다!

미리 말하고 시작하자. 이 책, 대박이다. 명작,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미진할 수도 있지만 이 선 바로 아래 작품군에서는 윗길로 칠 만하다.

몇 작품 읽지 않았다. 콘래드는 19세기 말에 서인도 제도를 비롯해서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적 오지를 다니지 않은 곳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귀화한 영국인으로 오히려 영국인보다 더 영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다녔던 유사 영국인으로, 얼핏 보면 가난하고 미개한 유색인들에게 친밀하고 후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밀한 곳의 콘래드는 세상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백인들에 의하여 굴러가고,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하며, 기타 지역의 나라들은 부정과 부패와 야만과 가난과 독재와 고문과 폭력과 살인과 기타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미개”로 충만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유럽 백인들에 의한 간섭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있다(이런 의견은 백낙청의 역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읽은 영향이 크다는 것을 고백한다). 또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콘래드의 작품이 다른 작가들의 것보다 낫게 읽히는 이유는, 특히 <노스트로모>가 그런데, 백인(영국)에 의한 개선 또한 그들의 이익과 이익에 의한 종속에 의한 것이고, 결과 역시 처음엔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나중엔 현지 유색인들의 저항을 수반하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견해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오지 속에서 군주 비슷한 위치를 확보했다가 실제로 멸망하거나(암흑핵심, 로드짐) 그렇게 될 조짐이 확연하게 보인다(노스트로모).

<노스트로모>는 칠레 위에 태평양을 면한 가상의 나라 코스타구아나 공화국의 옛 옥시덴탈 주, 지금 이름으로 술라코 주, 술라코 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찰스 굴드라는 이름의 영국 이민 3세. 할아버지는 볼리바르 휘하의 영국 군대를 이끌고 코스타구아나의 독립전쟁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며, 탐험가, 상인으로 당연히 이름난 상류계급의 지위를 향유했다. 주지사를 역임한 삼촌 해리는 연방제를 주창하다가 독재자 구스만 벤토에 의하여 체포되어 총살당했고, 아버지는 사업을 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문을 닫은 산토메 은광산의 채굴권을 주는 대신 5년 간 예상하는 채굴 수익을 대가로 미리 지불하라는, 거의 집행 명령을 내려버린다. 이때 찰스 굴드는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로 인해 이름만 채굴권을 얻었을 뿐 거의 빈 손이 되어버린 것을 한탄한 반면, 찰스는 새롭게 흥미가 생겨 본격적으로 광산학을 공부하다가, 자신이 직접 광산 엔지니어가 될 게 아니니까 차라리 광산 경영을 공부해보자고 마음을 바꿔 이 방면으로 뛰어 든다. 그러다 운이 좋아 미국의 철광왕 홀로이드 씨와 연결이 되어 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은광을 개발하고, 부패한 코스타구아나의 원주민(또는 혼혈)출신 고위관리들에게 뇌물을 듬뿍 뿌려가며 번창일로로 접어든다.

이제 세계의 금고로 떠오른 술라코. 이 사이에 민주주의자 리비에라 대통령이 국방장관 몬테로이 군대에 패망해 험한 코르디에라 산맥을 넘어 술라코로 피신하고, 술라코에서도 정권이 바뀌어 폭동이 일어나지만, 천 명에 한 명 나올까 싶은 대장부, 명성을 먹고 사는 남자, 부패할 수 없이 청렴한 사나이, 미첼 선장 수하의 노동자 십장인 일명 노스트로모, 본명 잔 바티스타, 별칭 카파티스 데 카르가도레스가 부하를 이끌고 어렵사리 실권한 대통령을 구해 망명시킨다. 하지만 권력을 쥔 정권이 틀림없이 술라코 세관 창고에 쌓여 있는 은괴더미를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법. 부패 정권과 하수인은 은괴를 포탈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가치를 지닌 은괴를 그들에게 넘겼다가는 불법, 야만, 폭력적인 정권이 확고하게 정착할 것이라, 술라코의 왕이라고 불리는 찰스 굴드 사장은 부패할 수 없는 사나이 노스트로모에게 은괴를 싣고 바다를 건너 모처로 옮기라고 전한다. 술라코 시는 불법, 야만적인 적과 투쟁을 할 것인가, 그들의 처분에 맞게 적응을 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프랑스계 언론인 청년 돈 마틴 드쿠. 그는 과감하게 술라코의 분리독립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 시에는 전직 장군 바리오스와, 드쿠가 북아메리카에서 밀수해 온 중고, 그러나 현지에서는 최고급 성능을 지닌 라이플로 무장한 군대도 있고, 산적이라는 불명예를 씻고자 방위군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에르난데스도 있으며, 무엇보다 독립만 된다면 시민 전부에게 복지를 약속할 은광이 있음에야.

이 작품엔 이런 것들만 있는 건 아니다. 고독. 그것도 절대 고독이 또한 큰 의미를 지니고 등장한다. 굴 속에서 온갖 보석과 금덩이를 지키던 용 부름Wurm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그거야 읽어보면 아시지. 책 좀 읽는 사람이면 책장에 보관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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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2-02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민음사 출간되고 첫 독자 리뷰 맞죠?
저도 이 책 찜해놨는데 🌟 5라니 참 반갑습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조지프 콘래드라는 산적이 나온다니 정말 재밌네요. 슬라브 인들을 보면 참으로 강하고 무서운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콘라드 작가가 저에겐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20살에 배운 영어로 이렇게 영문학사에 한 획을 긋다니 대단한 거 같아요.
저도 <암흑의 핵심> <로드 짐> <비밀요원> 세 권 읽었는데 <올마이어의 어리석음>과 이 책도 꼭 봐야겠어요.
올마이어는 중고로 한 권 있던데 담아만 뒀네요.
먼저 이렇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Falstaff 2023-02-02 14:14   좋아요 1 | URL
옙. 그렇더라고요, 첫번째 독자 리뷰.
잉글랜드 톱4 - 여자 두 명, 남자는 전부 외국인 출신의 영국인입지요? ㅎㅎㅎ 재미납니다.
올마니어, 흠 이거 얼른 사야겠습니다. 도서관에도 없던데요.
농담입니다. ^^

coolcat329 2023-02-02 14:21   좋아요 1 | URL
톱4 중 남자는 모두 외국 출신 맞네요. ㅎ
올마이어 그 사이 중고가 14권이나 나와있네요~
사셔도 되네요~^^

yamoo 2023-02-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스트로모 꼭 구입하겠어요! 불끈~~!!

Falstaff 2023-02-03 16:11   좋아요 0 | URL
옙.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명작, 걸작까지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