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의 새들 지만지 희곡선집
팔로마 페드레로 지음, 박지원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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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957년에 태어난 닭띠 여사님 팔로마 페드레로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사회학보다는 연기와 연극 연출, 발성법, 연극 구성 등을 배우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단다. 당연히 학교에서 연극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도 독립극단인 “잡동사니”를 만들어 극작과 주로 길거리 공연과 아동극을 비롯해 다양한 실험적 연기 생활을 한다. 1981년에 독립극단 생활을 정리한 후에도 연기와 극작을 계속하는 한편, 역시 자본주의에선 돈이 최고라서 영화와 TV 드라마에도 출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첫번째 희곡집인 《밤의 유희》와 두번째 희곡집 《머릿속의 새들》이 지만지에서 출간이 되어 있어 이번에 읽게 됐다.

  스페인 극작가로는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호가 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문학과지성사 2002)와 1965년생의 젊은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지만지드라마 2019)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어서 웬만큼 기대를 갖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해 읽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비록 희곡은 분량에 비해 읽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본문만 438쪽을 하루만에 독파한 후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으며, 쓰기를 마치자마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한파를 뚫고 나는 팔뚝만큼 굵은 붕장어 소금구이에 쐬주 한 잔 하러 눈썹을 휘날리며 어둠 속을 질주해갈 것이다.


  팔로마 페드레로의 극작품은 기본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 그리하여 폭력에 반대하고, 성실한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등장해 스스로의 욕망이 잠들어 있음을 자각하며, 늙은 여인이 어려서 입양을 간 동생의 죽음을 보살피기도 한다. 종속적 삶을 살았던 부모와 달리 자신의 계발에 성공한 중년 여인은 사회적 성공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모성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다 큰 딸에 의하여 반역을 당하기도 하고, 테러로 숨진 남자의 애인과,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을 한 무대에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은 전작을 요약했다 하는데 가난한 연극인의 애환을 그렸다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겠다.

  당연히 페드레로가 노골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했더라면 극이 조금은 경색되었을 터이지만 극작가는 적절한 선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control라고 해도 이것이 여성주의를 타협적으로 주장하거나 완곡하게 연마하려는 수작trick으로는 비치지 않는다. 다른 페미니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테러리즘은 완전히 남성에 의하여 저질러지며, 얼핏 봐서 모든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인식하게 시각보정을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하철에서 테러가 발생할 경우, 가장 크게 다루어야 할 것은 ①테러리즘이라는 폭력이 왜 발생했으며, 이것이 ②고위층이나 상류 계급이 아니라 민간인들, 이중에서도 출근시간에 붐비고 냄새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는 시민 대중을 향하는 폭력이어서 더욱 악질적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한다. 그러나 페드레로는 결국 피해자가 여성과 여성의 아이들, 여성의 남편들임에 강조점을 찍고 만다. 독자가 이 피해자들의 면모를 보자면, 세상에서 “여성의 아이들”과 여성의 남편이 아닌 남자가 있기나 한가? 오히려 “여성의 남편”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은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어오는 가장 남편에게 부속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의도하지 않은 채 드러냈을 수도 있다. 하여간 결국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수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딱 한 명 있어서 그를 기독이라고 부르지만, 여성의 몸을 통해 세상 구경을 하지 않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성주의를 다루는 “서툰 작가”들은 세상의 모든 남자는 폭력적이고 섹스만 파는 악당이며, 여성은 착하고 약한 피해자였다가 이제 여성주의 또는 인간에 새롭게 눈뜬 인물로 그리지만, 페드레로 같은 노련한 작가는 결코 그렇게 쉬운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그걸 맨입에 알려드릴 수 있나, 어딜. 천생 읽어보셔야 할 것이다.


  모두 여섯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제일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두 번째로 실린 <밤의 눈>이란 작품이다. 물론 “인상 깊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취향에 맞았다는 개인적인 공감의 것일 뿐 다른 이에게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참고할 만하지도 않다는 점을 밝혀야 하겠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혹시 스페인, 이중에서도 마드리드엔 눈 먼 이들을 위한 특별한 뭔가가 있나, 했던 것인데, 저 위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과달라하라 태생인데 그냥 마드리드 출신이라고 쳐주라)의 극작가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의 무대가 부르주아 만 다닐 수 있는 최고급 맹학교였던 때문이었다. <밤의 눈>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숙한 여인이 길거리에서 맹인을 위한 복권을 파는 청년과, 호텔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구두 계약을 맺어, 다른 곳도 아니고 호텔방에 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자’ 루시아는 집에 머물고 거의 완전하게 남성/남편/아버지에게 종속되었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스페인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적 성공을 쟁취한 여성계급이다. 가정에서도 경제권을 확보하여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어 피곤한 직장생활을 마치고 귀가한 남편을 향해 당당하게 설거지를 주문할 수 있는 첫 세대. 십 년에 걸친 결혼생활로 자신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어느덧 흐지부지한 생활의 권태로 변질되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권태를 누구에겐가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나중에 자신을 결코 알아보지 못할 눈 먼 ‘남자’ 앙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자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게 쉽나? 자기 속을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탈탈 털어놓는 것이.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눈 먼 천사(앙헬)은 시각을 잃어버린 대신 후각, 청각, 촉각을 통해 여자가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던 거다. 물론 장님이라고 해서 여성주의 작품에 나오는 남성의 시각인 성욕을 감추지는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도 무대가 호텔의 객실, 침대가 놓여있는 곳의 밤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주인공들 간의 섹스를 감안(또는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 이 나이든, 성숙한 여자와 앞을 못 보지만 여자보다 다양한 것들을 감각하는 남자는 하게 될까? 그건 안 알려드릴 것이고, 만일 한다고 해도, 남자는 여자에 의해 선택을 당했으며, 여자가 원한다면 다시는 자신을 찾지 못할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하시라. 근데 다 읽고 나니 나는, 특히 여자, 루시아의 모습이 참 쓸쓸했다. 루시아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나이 들면 다 루시아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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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8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덕분에 항상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알아가는 기쁨!!! ^^ 주말에도 쐬주 한잔 하시고 또 새로운 작가를 알려주세요. ^^

Falstaff 2022-11-19 11:2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느새 주말이군요! 지금 도서관에 나와 있습니다.
유진 오닐의 작품 <지평선 너머> 독후감 쓰려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첫 페이퍼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