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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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열다섯 편을 실은 작품집.

  헤밍웨이, 라고 하면 하드보일드 문체, 잃어버린 세대, 마초 적 작가, 우울증 등을 이야기한다. 타당한 일이다. 민음사에서 두번째로 찍은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보면 이것 외에도 주목할 것이 있다. 열다섯 편의 단편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특히 주인공들은 결코 한 장소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의 전장 속 참호에 있든지(<이제 내 몸을 누이며>),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지만 큰 불이 나서 고향마을은 벌써 사라져버렸든지(<심장이 두 개인 큰 강 1부, 2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전전하는 미국인 기수騎手든지(<나의 아버지>), 전쟁 중 동맹국이었던 터키의 스미르나 부두에 도착한 해군이든지(<스미르나 부두에서>) 등등, 결코 안식처와 주거지로의 집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장편소설도 다 그랬다. 첫번째 장편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부터 시작해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이어지는 3대 헤밍웨이 작품 모두 유럽의 전장이나 대도시의 호텔 바, 레스토랑에서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들이 겪는 이야기들이다.

  집 떠나면? 맞다. 개고생. 헤밍웨이의 마초적이고 약간은 폭력적이며, 힘을 과시하기 위한 살육 성향은 주인공들을 집구석에 편히 내버려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길을 나서게 되고, 길을 나섰으니 당연히 개고생을 하는데, 그게 흥미롭다는 말이지. 이 책에서는 특히 사자와 아프리카 물소를 사냥하는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와 늙은 투우사의 마지막 황소 살육을 다룬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살육의 냉혹한 장면을 헤밍웨이 특유의 하드보일드 한 문체로 마치 사진을 찍듯 그려낸 것이 백미였다.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으면서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이이의 작품은 완전히 스토리가 중심이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천만의 말씀. 비록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아 읽고 나서도 독후감을 쓰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의 생산자이기는 하지만, 극도로 건조한 문장 속에서 드라이한 짧은 컷 묘사 안에 해당 광경을 마주하는 인물의 심리가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런 솜씨를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게 아닌 것도 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그가 싫은 게 아니라, 겁나게 잰 체하는, 헤밍웨이 특유의 어깨에 힘주는 모양이 싫은 거다.

  이이는 천부적인 글솜씨를 타고 났다. 오래 기자 생활을 하는 중에 저절로 습득이 된 간략한 문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기자 생활을 백 년 해봐라. 이이만큼 짧은 문장 안에 자신의 속마음을 “노골적이지 않게” 흘려 넣을 수 있는지. 솔직히 이야기하자. 문장 하나만 가지고 말하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천재다.

  내가 비록 이 책을, 알라딘이 준 쿠폰을 사용하느라 헌책이나 커피 필터 또는 굿즈를 사야하는 옵션 때문에 구입하기는 했지만, 진즉에 이이의 단편을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의 대표 장편소설 세 편보다 <노인과 바다>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 내친 김에, 아니, 기회가 되면 단편집 1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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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9 09: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짧고 쉬운 문장 안에 의도를 담는 천재!
원서보고 놀랐어요.
간결하고 쉬워서, 그런데 그 한 줄 한 줄이 예사롭지 않아서,,,,
공기까지 담겨 있다는 생각!

Falstaff 2022-08-19 13:42   좋아요 3 | URL
윽, 공기까지요? ^^
근데 문장 하나는 정말 좋죠? 에휴....

coolcat329 2022-08-19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단편이 참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궁색한 변명이지만 작가에게 정이 안가서 안 읽게되네요.😆
근데 황소 살육은 읽고 싶지 않네요. 사진처럼 그려냈다니 ㅠㅠ

Falstaff 2022-08-19 19:2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울 나라에 유독 헤밍웨이하고 연분이 안 되는 분이 많은 거 같더군요. 물론 저도 포함되는데요, 톡! 까놓고 얘기해보면.... 아니, 그러면 안 되겠네요. 아직 제가 그럴 짬밥이 아니라서... ㅋㅋㅋ 하여튼 저도 헤밍웨이를 그리 곱게 볼 수 없는 쪽입니다만,
밉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문장 아닐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