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7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지음, 이선형 옮김 / 연극과인간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작 나는 인상깊게 읽지 못했지만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극작가인 베르나르-마리 콜테스가 쓴 희곡. 1948년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모젤 주에 있는 도시 메츠에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전쟁 등에 참전했던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알제리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선형이 쓴 역자 후기에 적혀 있다. “알제리 전쟁은 그의 삶 속에 강하게 작용한다.” 어떻게 작용을 했을까? 프랑스 군인이 무려 1만2천 명 전사했다고? 이 가운데 외인부대를 뺀 순수 프랑스 인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가 잡아 죽인 알제리 사람의 수가 백만이 넘고 70만이 넘는 사람을 투옥해 갖은 고문을 자행한 건 물론 어린 콜테스는 몰랐겠지.
 하여튼 소년기를 벗어나기도 전에 콜테스는 거의 모든 작가가 그렇듯이 몰리에르, 랭보, 데카르트, 디드로, 셰익스피어, 러시아 작가들을 비롯한 문학작품과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영화인 <벤허>, <십계>, <스파르타쿠스>, <로빈 후드>를 거쳐 프리츠 랑, 오손 웰스, 알프레드 히치콕, 엘리아 카잔,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명장의 작품들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목록을 보고 짐작하건데 콜테스는 아예 처음부터 연극, 영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그 방면으로 살 길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아,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말씀이지. 스물여섯 살이 된 1974년에 공산당에 입당을 하고, 75년엔 우울증 증세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가, 1976년 기어이 마약 중독까지 경험하고 만다. 이때부터 동성애 성향이 있었는지 자신의 마약 경험을 동성애 잡지 『마스크』에 기고를 한다.
 서른 살이던 1978년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여행을 하더니 다음 해엔 세계적으로 가장 정세가 불안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을 여행하면서 스페인 말도 통하지 않는 과테말라의 벽지에 틀어박혀 희곡 한 편을 쓰니 그것이 바로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이다. 이 작품은 1983년 프랑스 오드센 주 낭테르의 아망디 극장에서 세계 초연을 한다. 1980년대 초중반에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콜테스는 당시만 해도 걸리기만 하면 곧 죽어야 하는 역병이라서 겨우 열세 편의 작품만 남기고 마흔한 살, 1989년에 짧은 삶을 접고 말았다. 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4번으로 출간한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통해 표제작과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만 읽어보았는데, 앞서 얘기했듯이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출판사 연극과인간의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7’로 낸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을 읽고 콜테스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금, 작품활동의 사실상 마지막 해였던 1988년 작인 <로베르토 쥬코>를 집어들었고, <서쪽 부두>가 절판인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역자 이선형은 해설에서 콜테스의 특징으로 ① 성향이 반문명적이며 무정부주의적이며 제의적이며 원시적이고, ②연극이 시적이고 주술적인 언어로 축조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썼다. 성향에 대한 의견은 동의하지만 시적이고 주술적인 언어로 축조되었다는 건, 원어가 아니라 번역문으로 읽는 독자가 어떻게 맛을 알겠는가. 그렇다. <목화밭…>에서 내가 감각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반문명, 무정부, 제의적, 원시적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해서 였을 수 있겠구나 싶다.
 네 명의 등장인물이 두 개의 사건으로 극을 만들어간다.
 장소는 가상의 아프리카. 프랑스 건설업체가 다리를 완공하지 못한 상태의 현장이다. 젊디젊은 현장 노동자 한 명이, 당연히 흑인인데, 시간을 채우지 않고 현장을 이탈하려 해서, 엔지니어인 칼이 안 된다고 제지했다. 그랬더니 어린 검둥이가 침을 찍 뱉았고, 그게 칼의 신발 앞 십 센티미터 앞에 탁 떨어졌다. 입술을 조금만 더 들고 침을 뱉았으면 신발 콧잔등에 맞았을 것이고, 턱을 약간만 들었더라면 바지에 묻었을 터이며, 척추를 삐긋 휜 상태였다면 여지없이 칼의 얼굴을 향했을 것이다. 이후 사실 여부는 다음으로 하고, 칼이 주장하는 바를 완전히 믿는다면, 엄청난 비가 내렸고 자기가 배 위에 올려놓고 잠을 자는 개 뚜밥이 검둥이를 쫓아갔는데, 때마침 번개가 치더니 뚜밥이 픽 쓰러졌고, 이어서 검둥이도 픽 쓰러지더라는 것이다. (서보 머그더의 <도어>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나무를 때린 번개가 이들을 태워버렸다는 얘기.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 커다란 트럭이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가 때마침 그 자리에서 도로 쪽으로 쓰러진 검둥이를 깔아버렸다며, 어린 흑인 원주민의 죽음은 별개로, 검둥이들이 자기 개 뚜밥을 잡아먹었을 거라 불평을 늘어놓는다.
 좋다. 일단 독자의 의무로 초장에 소개되는 칼의 주장을 믿기로 하자. 그러나 문제가 있으니, 죽은 지 하루 안에 매장을 해야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이슬람을 믿는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풍습(친기즈 아이트마토프, <백년보다 긴 하루> 참조) 또는 콜테스의 전매특허인 반문명적, 원시적 주술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린 흑인의 시신을 찾으러 정체가 모호한 흑인 알부리가 나타나 시신을 돌려달라고 공사장의 현장소장인 ‘오른’에게 요구한다. 아프리카 토착어인 우어로프 어를 쓰지만 프랑스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알부리는 말 그대로 정체가 모호하다. 어떻게 보면 ‘개들’, 복수형이니까 진짜 개 뚜밥을 포함한 개 선호지역의 인간들, 쉬운 얘기로 희곡에 등장하는 모든 백인들과 대척점에 선 토종 원주민일 수도 있고, 그들의 토속신앙적 토템의 의인화일 수도 있다. 알부리는 시신을 되찾지 못하면 밤마다 주검의 어머니가 현장을 배회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 경고하고, 사건 또는 사고라고 주장하는 이미 벌어진 일을 무마할 책임이 있는 현장소장 오른은 사고의 대가로 150달러를 제시하며 중재자 알부리에겐 2백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즉, 나무 그림자에 숨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 신비한 중재자에게 중계료 명목으로 50달러를 주겠다는 것.
 사건, 또는 사고를 원만하게 처리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시신이 어디 있는지는 알았는데 이젠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칼이 처음엔 쓰레기장 꼭대기에 갖다 버렸고, 마음에 들지 않아 연못에 빠뜨렸다. 거기는 너무 얕아 가라앉지 않아서 다시 건져 하수도에 빠뜨리고 말았다. 근데 하수도도, 이게 지하에서 흐르는 물이라, 시신을 찾으러 가보니 시체는 벌써 밀려드는 분뇨에 밀려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보이지 않고 쇠똥만 잔뜩 묻힌 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다른 사건은 환갑을 맞은 현장소장 오른이 휴가 동안 파리에 가서 젊은 아가씨 레온을 아내로 삼기로 했고, 색시를 피부색 흰 여자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아프리카 공사 현장에까지 데려온 것. 현장엔 피가 펄펄 끓는 청년 엔지니어 칼이 굵은 작대기를 짚고 서 있었으며,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레온이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 그들 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하는 현지인 알부리를 만나게 된다. 독자는 ‘젊은 여성’ 레온이 등장할 때부터 ‘젊은’ 칼과의 사이에 불똥 튀기는 연애사건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그건 정확하게 김칫국이고, 오히려 알부리의 부족원이 되고 싶어 하는 레온의 행위에 경악을 하게 된다. 물론 어떤 행위인지는 안 알려드린다.
 여기에 하나 더. 이건 작품을 다 읽고나서 해설을 봐야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레온과 알부리의 대화 장면이었다. 읽는 중에 약간의 의심이 들긴 했다. 레온이 알부리에게 독일어로 말을 하는 반면, 알부리는 레온이 사용하는 독일어를 다 해독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은 레온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프리카 토속어인 우어로프 어를 쓴다는 점. 레온은 프랑스에서 낳고, 자라고 여태까지 파리에서 살다 이제 막 아프리카에 도착한 여성. 이이가 독어를 쓴다는 것까지만 놀랐었다. 근데 해설을 읽어보니 레온은 차츰 알부리의 우어로프 어를 이해하는데, 이는 레온의 전생이 알부리와 관련이 있으며, 알부리는 괴테의 시 <마왕>에서 주인공 격인 악마의 이미지라고 한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희곡을 읽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다. 이런 작품은 책 뒤에 실린 해설까지 통독을 해야 제 맛을 알게 된다. 물론 작품해석이 항상 옳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제대로 짚어준다면 그게 표준적 독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읽었다. 잘 읽은 김에 오늘은 맛난 음식에 쐬주 한 병 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12-28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읽으셨구나! 전 이거 앞 부분 읽다가 쉽게 읽을 작품이 아닌 거 같아서 일단 내려놨어요. ㅎㅎㅎ 쐬주를 부르는 작품이군요?! 저도 곧 다시 도전하겠습니다요~

Falstaff 2021-12-28 10:45   좋아요 2 | URL
옙. 근데 저도 이거, 정말 쉽지 않았어요.
먼저 한 번, 무슨 얘기 하는지도 모르면서 읽고, 그래도 도무지 모르겠어서, 역자 해석 보고, 다시 한 번 읽으니 그때서야 재미있더라고요. ㅋㅋㅋㅋ

참, 인생이라니. 이 정성 가지고 공부를 했더라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