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란느 교수 ㅣ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2
아르튀르 아다모프 지음, 임수현 옮김 / 연극과인간 / 2003년 4월
평점 :
20세기 프랑스 연극계의 기수로 치는 세 명의 인물이 있으니, 우연하게도 모두 외국 출신 프랑스 거주자로, 첫째가 루마니아 사람으로 프랑스에 흘러들어온 외젠 이오네스코요, 둘째가 아일랜드에서 배 타고 온 사뮈엘 베케트이며, 셋째가 아르메니아계 러시아 출신인 아르튀르 아다모프라고 한다. 이오네스코는 1970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의 영광을 얻었고, 베케트는 그 1년 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아다모프는 두 명의 성공을 목격한 후 1970년, 중증 알코올 의존증에 따른 정신질환으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다.
이 세 명의 극작가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것이 부조리극이다. 또는 누보 떼아뜨르, 반연극, 초현실주의 등. 이들의 대표작이라면 나란히 <대머리 여가수>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지만, 아쉽게도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작품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아다모프는 비록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다. 극작 경력은 1950년, 그의 나이 마흔두 살에 <침입>과 <파로디>를 초연하면서 시작했다. <타란느 교수>는 1953년 쉰한 살 때 초연을 한, 그의 중요 작품 리스트 가운데 한 편이다. 극작가로 데뷔한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초기작은 주로 부조리극으로 분류한다고 하는데, 이 <타란느 교수>는 부조리극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열등감이랄까,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대한 (막연한) 공포 비슷한 감정을 비유한 것처럼도 읽힌다.
<타란느 교수>는 당연히 타란느 교수를 위한 무대다. 장면은 단 두 개. 하나는 경찰서. 다른 하나는 호텔의 사무실.
경찰서에 잡혀 온 타란느 교수의 죄명은 음란공연죄. 추운 겨울날, 물가를 산책하던 타란느 교수가 갑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고 물가 근처에서 놀고 있던 소년 여러 명이 신고를 했다. 타란느 교수는 자신이 대학에서 강의하는 유명인사임을 강조하면서 자기가 어떤 인물인데 그따위 짓을 했겠느냐, 한겨울에 몸살로 앓고 싶어 환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도 찬바람 부는 물가에서 옷을 벗을 수 있겠느냐고 주장하며, 교수라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독자는 타란느 교수를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철없는 장난꾸러기들의 단체 고발도 믿을 수 없다. 여기에 신문기자와 신사 네 명이 등장했음에도 아무도 타란느 교수를 알아보는 인물이 없다. 마지막에 등장한 귀부인이 마침내, 여기서 교수님을 뵙는군요, 반갑게 아는 척을 하지만, 자세히 보더니 ‘메나르 교수’인 줄 잘못 알았다고 하는 거다.
형사부장은 그저 약간의 벌금만 내면 아무 흔적 없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니까 조서에 서명만 하고 가라 하지만 자존심 센 타란느 교수가 어떻게 한 번 주장한 사실, 옷을 벗은 적이 결단코 없다는 걸 번복해 서명을 하고 벌금을 내겠는가 말이지. 그러다가 슬쩍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두리번거리는 교수 역시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첫 번째 장면이 끝난다. 빼어난 연극비평가인 것처럼 보이는 역자 임수현은 해설에서 타란느 교수의 옷을 벗는 행위를 ”아다모프의 은밀한 강박관념들─죄의식, 수치심, 불안, 공포,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아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는, 작가에겐 일종의 거울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 장면인 호텔의 사무실에서는 처음엔 앞 장면의 연장인 듯 두 명의 경찰이 와서 교수에게 계속 벌금 낼 것을 요구한다. 장소를 바꾸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 동생 쟌느가 애초에 타란느 교수를 초빙하려 했던 벨기에 대학 학장이 보낸 편지를 무표정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읽으면서 이에 교수가 반응하는 것이 극의 절정을 이룬다. 앞에서 거명했던 두 명의 부조리 거장들, 외젠 이오네스코와 사뮈엘 베케트가 성공적인 삶과 지위를 이어가는 가운데 끝내 비극적인 종말을 맞아야 했던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차이점이 조금은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좀 쓸쓸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