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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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설터. 본명이 제임스 아널드 호로위츠. 이름만 가지고도 러시아에서 이민 온 가족의 일원이란 걸 알 수 있다. 제임스 호로위츠는 뉴욕 맨해튼에서 자라, 호레이스 만 학교를 졸업한 후, 스탠퍼드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저울질 하다 17세 1개월의 나이에 미국식 못말리는 애국심에 충일한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아버지가 졸업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이때가 2차 세계대전 중이라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1952년에 전투기 비행사로 자원한 호로위츠는 미그기 몇 대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쌓기도 했는데, 이때 한국 땅에서 보고 들은 걸 바탕으로 장편소설 <사냥꾼: The Hunters>을 출간하기에 이르고 이때 필명으로 제임스 소금쟁이, 영어로 제임스 솔터Salter를 사용한다. 이후 솔터, 우리나라 발음으로 ‘설터’가 자신을 호칭하는데 더 익숙해지자 아예 호로위츠 집안의 호적을 파버리고 맨해튼 설터 씨의 시조가 돼버렸다. 그래 두 아내와의 사이에 얻은 다섯 자식들, 앨런, 니나, 클로드와 제임스(쌍둥이), 테오 모두 설터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왜 이름에 집착했느냐 하면, 작중 주인공의 이름이 블라디미르 벌랜드, 애칭으로 비리 벌랜드인데, 선대에 정확한 지명은 주인공도 모르지만 하여튼 러시아 남부지방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란 걸 몇 번이나 밝히기 때문이다. 비리처럼 러시아나 동부 유럽 출신으로, 비록 이민 3세인 비리는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디시 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을 흔히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라 한다. 이들에게는 다른 인종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음악을 연주하는 천부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제패한 고리대금 기술이다. 물론 순서로 치자면 고리대금 기술로 충분한 현금과 금 등 주로 유동자산을 확보하여 여유가 생긴 후에 음악을 연주하고 즐겼을 것이다.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 비리 벌랜드의 아내 네드라가 주장하기를, 돈이 없는 유대인은 이빨 없는 개와 같단다. 여기서 돈 없는 유대인, 이빨 없는 개는 당연히 자기 남편 비리를 일컫는 말.
  비리 벌랜드의 직업은 건축가다. 영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피터 애크로이드, <혹스무어> 참조)을 숭배하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수준. 그러니까 아내한테 돈 없는 유대인 취급을 받는다. 자신은 런던과 파리 등을 견학해보았지만 아내는 아직 미국 땅에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네드라 벌랜드는 소위 전업주부. 뉴욕 시외의 강변에 넓은 땅에 커다란 집을 짓고, 마구간과 작은 나무 숲, 정원을 가꾸며 산다. 말은 자신이 집안일을 모두 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가사일을 하면서도 두 딸 프랑카와 다이앤을 티 하나 안 묻히고 키우며, 오전에 뉴욕으로 장보러 나가서 레스토랑에 들러 점심 먹고 돌아와 요리를 하고 초청한 커플(들)과 함께 조촐한 저녁 파티 또는 만찬을 하는 걸 규칙으로 할 정도라면 말은 안 해도 도우미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근데 미국 영화에서 흔하게 보는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벌랜드 여사님께서는, 이 여사님이 비록 시골 세일즈맨 홀아비의 외동따님이긴 하더라도, 스스로도 결혼을 잘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가 바랐던 결혼 또는 배우자는 입고,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기타 행위를 위해서도 구애받지 않게 해줄 정도로 부유한 삶을 보장해야 했던 것. 비리 벌랜드가 가난한 유대인이라는 건 단지 네드라 벌랜드의 눈에 그렇다는 것이지 당신이나 내가 생각하는 가난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머리에 콱 찍고 책을 읽기 바란다. 네드라가 바라던 포드가나 카네기가의 후손은 아닐지언정 부르주아 바로 아래의 중산층이란 것을.


  확실한 건, 돈 많은 사람들이나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행복을 바란다는 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행복이다. 이들이 행위 하는 건 이미 숱하게 많은 TV 드라마, 막장 드라마 말고, 보통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장면들인데, 그렇다고 책이 쉽게 읽히는 건 아니다. 둘째 딸 다이앤이 다섯 살에 <가벼운 나날>이 시작해 두 딸의 엄마가 될 때까지 시간이 후르륵 지나 속도감도 있는 작품인데도 그렇다.
  비리와 네드라는 두 딸을 키우며, 행복하게 지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부부가 사랑하는 건 당연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침실에 놓인 두 개의 침대에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되는 과정을 겪는다. 고인 저수지도 가끔 비워줘야 하는지라, 비리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새로 고용한 아름다운 비서 카야 다우트로와 하고 한 날 낮거리를 벌인다. 그러다가 카야에게 새롭고 막강한 남자가 생기자 실연당해 크고 큰 슬픔에 젖는 비리. 네드라는 네드라대로 벌써부터 비리가 자주 집에 초대하고는 했던 친구 지반과 뼈와 살이 타는 휘청거리는 오후를 보내고, 지반 하나 가지고는 만족을 하지 못해 새롭게 하나를 더 장만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들의 외도는, 실제로는 그렇기가 참 힘든데 용하기도 하지, 끝까지 서로에게 들키지 않는 천생 연기자들 수준이다.
  비리는 네드라만 인정하지 않는 그럭저럭 성공한 건축가. 네드라는 유한 여성. 이들에게 모자란 것이 무엇일까. 가정은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수준 이상이고, 둘 다 바람을 피우고 있을지언정 서로 사랑하는 마음까지는 변하지 않은 부부, 건전한 의식수준과 교양. 비리는 네드라의 오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드디어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 그렇게 숭배했던 17~18세기의 거장 크리스토퍼 렌이 지은 교회 건물을 감상하고, 박물관 구경을 하며 런던에 매료되어버린다. 이때 벌써 네드라의 나이가 마흔. 부부는 그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쪽으로 노력해왔으며, 행복의 형태 역시 결혼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 동의하고 여행의 마지막 밤에 아내 네드라는 “오늘 나는 당신을 몹시 사랑해. 내 가슴을 다해서 당신을 포옹해.”라고, 남편 비리가 잠에 빠진 동안 새로운 남자 앙드레에게 편지를 쓴다. 네드라는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빠진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자유.


  십여 년 전에 “우리 이혼하면 행복할까?”란 카피가 유명했다. 네드라는 여전히 비리를 사랑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달 후에 이혼해버리고 유동자산의 절반을 지닌 채 집을 나간다. 물론 집을 비롯한 부동산도 소유의 절반은 네드라의 것이고, 두 딸이 비록 다 크긴 했으나 얼마 남지 않은 양육의 책임은 비리가 지기로 한 것 같다. 자세한 설명은 없더라도. 어쨌든 네드라는 지금도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인근의 아파트를 구하고 새롭게 연극에 관심을 둔다. 반면에 비리는 이혼의 충격으로 새롭게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스트레스에 푹 빠져 도무지 헤어나올 줄 모른다. 비리의 돈벌이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없어 독자들이 알 방법은 없지만 그것도 잘 해봤자 현상유지 아니겠나 싶을 정도의 의욕상실 상태다. 네드라는 연극에 관심을 가져 배워보려 했으나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고, 개성있는 연극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때는 1970년대 초반. 네드라는 직업이 없는 이혼녀. 천성이 사치스러운 40대 초반. 내 눈엔 앞길이 캄캄하다. 유동자산이란 건 말마따나 일단 쓰고 뒤 돌아서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여태 살아온 수준이 있어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옆의 비싼 아파트를 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월세를 꼬박꼬박 물어가는 것도 힘들 텐데, 연극을 배워보겠다고 하고, 연애도 해야겠고, 연애 상대는 걸뱅이 비슷한 연극배우. 네드라도 참 딱하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조금 더 큰 책임도 져야 한다는 걸 오랜 세월을 두고 꼬박꼬박 잊은 듯. 그리하여 몇 년 후, 네드라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젊은 여자와 새살림을 시작한 비리에게 편지를 해 만 달러‘만’ 빌려달라고, 나중에 꼭 갚겠다고 얘기했다가, 어린 이탈리아 여인에게 거절을 당하고 말지. 나 같으면 굶어 죽더라도, 전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편지는 혀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안 보내겠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가벼운 나날>은 이런 서사를 중심으로 읽으면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사는 모습, 그 쓸쓸함을 좇아가는 작가의 시선을 보는 것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데 필요할 듯하다. 누구나 다 옳고 그른 삶을 산다. 한 사람이나 한 식구들의 사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보다 가정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무수하고 무수한 가벼운 날들이 모여 만든 삶을 느껴보는 것이 백 번 좋다.
  작가의 시선이 내 수준엔 동감하기 힘든 상류 수준이라 유감이긴 하다. 네드라 눈엔 이빨 없는 개 같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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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1-10-18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첨 인사드립니다. 여러분들 페이퍼에서 소문 듣고 살짜기 서재구경하러 왔습니다. 친구 수락 감사합니다^^ 수년전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설터 중 한 권이네요. Falstaff님 덕분에 읽은 느낌이에요ㅎㅎ; 예전에 직장동료들과 얘기하다가 부자의 기준이 너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 나네요. 제가 어떤 이에 대해 와 부자사람이었구나 감탄했다가 그게 뭐가 부자냐며 비웃음 당한-_-;;;;

Falstaff 2021-10-18 20:1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뭐 별 거 있나요. 그저 그냥 사는 얘기 위주로 할 뿐인데요.
반갑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마시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