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 제안들 7
앙리 보스코 지음, 최애리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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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26번 시내버스 타면 대방동 돈 보스코 회관 앞을 지난다. 돈 보스코는 19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사제로, 뒷골목 빈민가 청소년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죽은 지 46년 만에 시성諡聖되었다. 이 돈 보스코의 친척 가운데 한 명이 프랑스 사람으로 공부 잘 해 이탈리아어 교수를 지내면서 소설을 쓴 앙리 보스코다.
  앙리 보스코는 1937년에 <반바지 당나귀>를 열린 결말을 갖는 소설로 쓰고,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 곧이어 후속작 <이아생트>를 시작해 3년 후인 1940년 발표한다. 그래도 미진했던지 1946년에 3부작을 완성하는 <이아생트의 정원>을 출간한다. 이래서 <이아생트>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으면 <반바지 당나귀>의 내용을 미리 알아두어야 편하다.

 

  <반바지 당나귀>의 장면은 저 산골 마을 오스피탈레에서도 몇 시간 산을 오르면 마법사 시프리앵이 만들어 살고 있는 멋진 정원과 과수원이다. 마법사는 당나귀에 반바지를 입혀 오직 당나귀만 마을로 보내 물건을 사 오고, 농사지은 것들을 내다 팔기도 한다. 오래전에 읽은 작품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서, 마을의 성령에 바쳐진 초라한 성당, 막달라 경당에서 복사로 있었던가, 심부름 다녔나, 아니면 그냥 동네 소년일 뿐이었나 까무룩한데, 소년 콩스탕탱 글로리오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고자 했던 마법사 시프리앵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다. 좌절한 시프리앵은 콩스탕탱의 집에 얹혀살던 소녀 이아생트를 유괴해 사라지고 만다. 이게 끝이다. 그러나 다는 아니다. 작품은 시프리앵이 가꾸던 정원과, 여우를 제외한 모든 짐승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시프리앵의 능력, 사과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사는 뱀의 출현 등 많은 상징이 등장하는 환상 풍의 소설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반바지 당나귀> 3년 후에 출간한 <이아생트>를 전작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서사 위주의 책이라 생각하면 <이아생트>는 못 읽는다. 3백 쪽 분량의 장편 소설이지만 읽는 속도가 여간해서 붙지 않는다. 재미없는 책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107쪽에 와서야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의 멀고 먼 기억 속에서 자신을 키워준 시골의 순박한 할아버지와 지혜로운 할머니를 떠올리고, 집 앞에 무표정한 눈을 하고 다닌 이아생트라는 어린아이가, 어느날 떠났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하면서, 처음으로 ‘이아생트Hyacinthe’를 소개한다.
  그러면 처음부터 107쪽에 이르기까지는? ‘나’가 도착한 곳은 성 가브리엘 고원이다. 완전히 적막한 고장. 황량한 벌판. 언뜻 미셸 트루니에의 <마왕>에서 거구의 아벨 티포주가 소년들을 납치하기 위해 하늘같은 검은 말을 타고 배회하던 동프로이센의 황야가 떠올랐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황량한 고원에 성모에게 성령으로 잉태했음을 알린 대천사 성 가브리엘의 이름을 붙였을까. 내 의견으로는 백 쪽이 넘어야 등장할 이아생트와 콩스탕탱이 마법사 시프리앵이 만들고자 한 낙원, 에덴으로의 실바칸에서 도망한 곳이 이곳, 황량한 벌판이라, 작가가 아담-하와-뱀의 완전히 반대 위치에 있는 황야의 예수-성모-가브리엘을 선택했으리라는 것이다.

 

  성 가브리엘 고원은 16 평방킬로미터(484만평)의 광활한 황야로 고원의 북동쪽 가장자리엔 습지가 펼쳐져 있다. 이 넓은 대지의 사막 속에 단 두 채의 집이 있을 뿐. 이 가운데 라 코망드리, 기사관騎士館, 기사knights들의 숙소라 이름 지은 집에 ‘나’가 세 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이 몽롱한 몽상의 작품을 시작한다.
  그러면 고원의 다른 한 집은 어떨까. 그 집은 규모가 라 코망드리와 비교해 작아서 마치 소작 농가처럼 보이는데, 이름을 라 주네스트, 금작화라고 불렀다. 야트막한 담벼락과 경사진 지붕만 땅에서 솟아나 있는 집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근 십 미터가량 되는 암벽 위에 지은 집이다. 그것보다 ‘나’와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등불이 켜져 있다는 점이다. 근 5백만 평의 거친 황야의 밤에 오직 하나의 지표가 될 불빛. 이것을 볼 때마다 ‘나’는 마치 인류의 마지막 영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집주인과 늙은 하인 내외가 워낙 비사교적이라 ‘나’의 거의 유일하게 남은 취미인 산책 중에도 라 주네스트 쪽으로는 발걸음을 삼갈 정도.
  생각해보시라. 넓고 넓은 거친 황야. 조명이 없어 무한히 보이는 별의 홍수와 돋보이는 별자리들. 이 어둠의 대해에 단 하나, 구리 등잔에 석유 등불이 이 광활한 벌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지침이 된다는 것. 기어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누구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감안 한다는 것. 라 주네스트. 그들을 그토록 오래 견디게 한 것은 한 인간의 고통뿐이었으리라는 ‘나’의 사색, 침잠, 상상, 이런 것들을 다 합쳐 몽상은 점점 깊어만 간다.

 

  그렇다. 이 소설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자면 “몽상”이다. 작품의 앞자리에 삼분의 일 분량을 성 가브리엘 고원과, 밤이 새도록 등불을 밝히는 라 주네스트와, 라 주네스트 옆에서부터 펼쳐지는 늪지대를 대상으로 아름답지만 장황하게 펼쳐지는 몽상의 파노라마를 견딜 수 있는 독자는 행복할 것이고, 견디지 못하는 독자는 책을 덮을 것이다. 그리고도 앞으로 이 몽환은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적어도 문장을 다시 읽어야 하는 고난을 계속할 수 있는 끈질긴 독자라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잘난 척이지만, 난 견뎠고, 즐겼고, 만족했다. 대신 읽는 시간은 다른 작품에 비해 배는 들었던 거 같다.
  읽는 내내 생각났던 보스코와 동시대 프랑스의 미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그는 모네의 수련 그림이나 칠리다의 비구상 조형물을 보면서 독자가 질릴 때까지 미학적 몽상을 풀어내는 사람이다. 이런 미학적 몽상을 각오하지 않는 독자라면 책을 열고 백 쪽에 이르기 전에 덮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라.
  크리스마스, 12월 25일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황야에서 ‘나’의 집 현관을 두드리며 (전부 해 310쪽의 작품에서) 140쪽에 등장하는 이아생트. 앞뒤 다 잘라버리고 얘기하자면, <반바지 당나귀>에서 이아생트를 데리고 사라진 마법사 시프리앵은 일단의 집시 무리를 규합해 6월 24일 성 요한 축일과 성탄일을 맞추어 성 가브리엘 고원의 늪지에서 이를 기념하여 회합을 갖는다. 올해는 하필 ‘나’가 라 코망드리에서 살고 있을 때 이아생트가 마법사의 손길에서 벗어나 무리로부터 탈출을 감행한 것.
  그리고 밝혀지는 등불의 집 라 주네스트 집주인의 정체. 바로 콩스탕탱 글로리오, 오래전 시프리앵이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던 바로 그 아이였던 것. 이렇게 황량하기 그지없는 성 가브리엘 고원에서 다시 만난 옛 시절의 인물들. 만남이 필연적으로 마련해두는 이별. 화자 ‘나’는 이의 해소를 위하여 걸어서 여섯 날이 걸리는 먼 옛 시절의 장소 오스피탈레 마을, 막달라 경당, 그리고 잊어버린 낙원일 뻔했던 실바칸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독자들은 주의하시라. 쉽지 않은 소설이다. 천천히, 느린 속도로 읽으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싶은 풍경, 꿈꾸고 있는 몽상을 함께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내 돈 내고 산 책을 읽으며 스스로 어려운 과정을 사서 거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는 일이 그렇다. 그러나 다 읽기만 한다면 절대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 그러기 위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오니, 아무쪼록 <반바지 당나귀>를 먼저 읽으시옵기를.


 

 내가 읽은 책.

 

요즘 민음사 세계문학에서 팔고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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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0-07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눈길을 확 잡아끄는데요?

Falstaff 2021-10-07 09:0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 유일한 불빛에 관해 무지하게 장황한 미학이 펼쳐진답니다.

얄라알라 2021-10-07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스타고 어디를 지나든 그냥 눈에 나무나 차만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Falstaff님의 시선에서는 돈 보스코라는 먼나라 먼 시대인물의 친척까지 들어오는 군요. 이야!!! 같은 대방동 버스를 타도 말이죠^^

문학 읽는데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Falstaff님 서재만 들어오면 새록새록!

Falstaff 2021-10-07 12:51   좋아요 3 | URL
근데 저는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아직 26번 버스가 다니나요? 아주 오래 전이라서 에휴.....
ㅋㅋㅋ 무슨 분발 씩 하십니까. 그깟 소설책 한 권 읽는 것으로요. 그냥 즐기는게 장땡입니다. 제 철학입지요. ^^

얄라알라 2021-10-07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분발˝ 요 단어 엄청 FM적으로 들리네요^^ Falstaff님 철학에 동의합니다. 저도 어려서는 오로지 문학작품만 읽었는데 제대로 이해 못하고 읽은 책이 90% 같아요^^;; 다시 천천히 친해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