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레시아스의 유방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8
기욤 아폴리네르 지음, 장혜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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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아폴리네르.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이이가 쓴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시집 《알코올》 정도가 유명하다. 시의 번역은 반역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던 나는 왜 유명한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유명한 《알코올》을 알고는 있었으나, 믿고 있는 바(시의 번역은 반역)를 깨지 못해 구입을 포기했었다. 이러던 차에 눈에 띈 것이 바로 <티레시아스의 유방>. 이 작품은 십 몇 년 전에 프랑시스 풀랑의 오페라 작품, 필립스에서 낸 한 장짜리 음반으로 들어본 적이 있다. 그때 아주 힘들었던 기억. 풀랑이라 하더라도 일인극 <사람의 목소리>는 수월하게 들어서 무턱대고 도전했다가 아이고, 새치 생겼다.

오자와 세이지,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


  먼저 기욤 아폴리네르의 한 살이를 좀 보자. 이이는 폴란드에서 망명한 어머니와 이탈리아 장교 아버지 사이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가족 모두 기욤이 열아홉 살 때인 1899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고, 1901년에 독일 귀족의 가정교사를 했다고 하니, 당시 가정교사라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겨우 입에 풀칠하며 학교나 보내줄 수 있는 중류 집안 출신이었던 듯하다. 하여튼 밀레니엄과 벨 에포크 호시절을 만나 시, 비평, 에세이 등을 발표하는 문필가로 활약하다 지난주에 소개한 <위뷔 왕>의 작가 알프레드 자리, 막스 쟈콥 등의 작가, 피카소, 브라크, 블라멩크, 마티스, 루소 등의 화가 등과 어울려 당시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전위 예술에 참견하게 된다. <티레시아스의 유방>도 이 약소한 질풍노도의 초기였던 1903년에 초고를 쓰고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에 서막과 수정을 거쳐 초연한 작품이다.
  세월은 아폴리네르 역시 비켜가지 않아서 이이는 세계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했다가 1916년에 포탄 파편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수준은 아니고) 제대한다. 이때 극을 완성해서 공연까지 한 것. 이후 1918년에 부상 치료 때문에 허약해진 체력이 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길로 생을 다했으니 그나마 작품의 초연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바빠도 희곡을 읽기 전에 티레시아스, 그러니까 테이레시아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먼저 알고 있는 편이 좋다. 지금부터 위키 백과에 나오는 것을 대폭 각색해 소개한다. 테이레시아스는 양치기 에베레스와 님프 카리클로의 아들로 테베에서 태어났다.
  이 아이가 자라 몇 살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빠가 양치기니까 아마도 양을 돌보기 위해 펠로폰네소스의 킬레네 산에 갔다가 뱀 한 쌍이 교미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뱀이 왜 정력제라고 불리는지 아는가? 교미하는데 근 70시간을 쓴다. 징그럽지? 그건 테이레시아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함부로 휘두른 회초리에 하필이면 암컷이 맞아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그랬더니 배꼽 아래에 여태까지 거꾸로 매달렸던 신체부위가 몸속으로 쑥 들어가더니 그 자리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동시에 유방이 돌출되어 여자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테이레시아스는 7년 동안 여성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산다.
  세월은 쏜 살처럼 빨라 어느덧 7년이 흐르고 다시 킬레네 산에 갈 일이 있어 갔다가 또다시 한 쌍의 뱀이 나타나 훤한 대낮에 테이레시아스 앞에서 교미를 하고 있었다. 7년 전의 실수가 생각난 여사님은 이번엔, 뱀들을 보면서, 그래, 사랑 한 번 맺기가 얼마나 힘든데 쯧쯧 계속 애써라, 하고 미물을 살려두었다. 그랬더니 모세의 기적이 다시 덮이고 몸속으로 들어갔던 게 쑥 나오면서 아이를 길러낸 유방이 쪼그라들더니 다시 남자가 되어버렸다.
  이때 이야기가 되느라고, 저 올림포스에서 제우스와 헤라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남녀가 자리 깔고 운우의 정을 나눌 때 누가 더 희열을 맛볼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서로 침을 튀고 있다가, 여신 중의 여신 헤라가 여자와 남자 입장에서 해볼 거 다 해본 테이레시아스가 생각나 그를 불러다 물어보았다.
  “이봐, 넌 알 거 아니냐. 둘 중에 누가 더 좋디?”
  그래 테이레시아스가 답을 하기를,
  “인간에게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모두 열 개가 있사온데, 이 중에 아홉 개는 여자의 몸에, 딱 한 개가 남자의 몸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자가 남자보다 최대로 아홉 배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이 말을 듣고 심통 맞고 괜히 열 받기 잘하는 헤라가 테이레시아스의 눈알을 파버리는 형벌을 내린다. 근데 왜 화가 났을까? 여자가 남자보다 아홉 배 더 즐거워한다는데. 하여튼 괜히 의문의 1패를 당한 느낌이 든 제우스. 그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테이레시아스에게 당시엔 가장 훌륭한 축복 가운데 하나였던 예언의 능력을 주고, 다른 인간보다 일곱 배 더 오래 살 수 있는 특권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졸지에 제우스를 모신 신당의 주연급 박수가 된 테이레시아스가 하루는 오이디푸스 앞에 나타나 누가 오이디푸스의 선왕인 라이우스를 죽였는지 알려주는 일은, 다들 아시지?

  테이레시아스의 유방은 이런 모습이다.

요한 울리히 크라우스의 판화, 1690

 

  그럼 극은 어떻게 전개되느냐. 이게 문제인데, 저 위에서 십 몇 년 전에 풀랑이 음악극으로 만든 같은 작품을 듣다가 머리에 쥐가 나서 새치까지 생겼다고 했다. 이번에는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원작을 읽다가 몽매에, 주화입마에 빠져버렸다. 아폴리네르가 서문에서 주장하기를, 이 작품은 20세기 들어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인구증가를 지구 멸망의 근원으로 보고, 어서 어서 피임 없는 사랑을 해 가을밭에서 무 뽑듯이 쑥쑥 아이들 많이 낳으라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하고, 해설을 쓴 역자 장혜영도 “이야기의 주제는 한마디로 인구증가를 위한 출산 장려이다.”라고 선언을 하는데 어떤 생각으로 극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내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 앙드레 브르통이다. 아시다시피 초현실주의 문학의 대표선수. 그런데 기욤 아폴리네르의 <티레시아스의 유방>도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희곡 속에서도 온갖 알 수 없는 대화와 선언과 샤우팅과 코러스가 등장하고, 비록 초연에는 물자와 인력이 부족해 생략했지만 음악까지 곁들여진다. 사람이 안에 들어간 종이 인형극으로 공연한 것 같기도 한, 이해하기엔 매우 수상한 희곡.
  아, 암호해석의 어려움을 피해 시에서 희곡으로 도피했거늘, 희곡에서마저 또다시 암호해독기를 빌려와야 하나? 참 세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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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0 0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이 쓰신 마지막 두 줄 읽기 전에 이 리뷰 읽다가 속으로 ‘어머 뭐야 초난해한 시에서 탈출했는데 이건 한술 더 뜨네?‘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왜 헤라는 승질이 났을까요? 9대 1이면 좋을 텐데, 100대 1이 아니라서 그랬나...? 하여간 승질머리하곤 ㅋㅋㅋㅋ

Falstaff 2021-07-20 10:0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그러게요. 다 인생입죠. ㅋㅋㅋㅋㅋ 다행인 건 우리나라 희곡은 많이 편하다는 겁니다. 물론 아직까지 제가 읽은 것들만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만.

헤라가 내기에 남자가 더 좋아한다는데 만 원 걸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헤라 없었으면 그리스 신화가 아주 빈곤해졌을 겁니다. ㅋㅋㅋㅋ 근데 궁금하긴 궁금해요. 만 열세 살 이후 평생토록. 여자는 얼마나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좋을까, 하는 거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7-20 10:08   좋아요 2 | URL
다음 생에는 올랜도 폴스타프로 거듭나십시오- ㅋㅋㅋㅋ

Falstaff 2021-07-20 10:12   좋아요 2 | URL
걍 이렇게 살다가 가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전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물고기 자리는 윤회의 마지막이라고 하더군요. 음메 좋아라!!!!

mini74 2021-07-2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목이. 기욤 하면 저는 마리 로랑생과 미리보다리 말곤 ㅠㅠ 이런 책을 쓰기도 했군요 ㅎㅎ 테이레시아스가 나오는군요 *^^*

Falstaff 2021-07-21 07:3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럼 저보다 많이 아시는 건데요. 저도 이 책이 처음 읽어보는 아폴리네르랍니다. ^^;;